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54)

이 연재의 경우 주로 알라딘의 신간 소개를 참고하기 때문에 간혹 빠트리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을 일간지 북리뷰에서 보게 되면 반가우면서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부득불 새로운 소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최근에 그런 책들이 몇 권 되기 때문이다. 피터 게이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책의 부제는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본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로 돼 있는데, 원제가 '슈니츨러의 세기(Schntzler's Century)(2002)이다. 피터 게이는 역사학자로서 현재는 예일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는 분이라는 데, 우리에겐 <계몽주의의 기원>(원제는 '계몽주의: 한 가지 해석 The Enlightenment: An Interpretation')라는 방대한 책으로 소개된 양반이다. 계몽주의에 관한 저서도 갖고 있지만 서지를 보면 바이마르 시대가 '주전공'인 듯하다. 프로이트에 관해서도 800쪽이 넘는 전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도서관에서 보던 책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관해서라면 미국에서도 최고 권위자일 듯하다. 그러니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에 대해 이 만한 규모(430쪽 가량)의 책을 쓰는 건 뭐 식은 죽먹기일 수도.

소개에 따르면 책은 "1815년부터 1914년에 이르는 19세기 중간계급의 '전기'다. 지은이가 길잡이로 삼은 인물은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극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아르투어 슈니츨러. 슈니츨러는 14세부터 5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지은이는 슈니츨러의 일기를 펼치면서 슈니츨러 자신과 그가 그려낸 인간 군상, 곧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를 쓴다." 특이한 것은 저자가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을 역사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 "이 책에서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대표적인 요소들이 - 섹슈얼리티, 불안 - 서구 부르주아의 내면을 이해하는 열쇠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역사학의 프로이트'인 피터 게이는 '문학의 프로이트'인 슈니츨러의 눈으로 19세기를 조명함으로써 정신분석학과 역사학의 만남을 꾀하고 있다."

원로 학자의 성 '게이(Gay)'는 이래 저래 검색하기 불편한(!) 이름인데, 그가 프로이트에 빠져들게 된 게 비단 성(性) 때문이 아니더라도 혹 그런 성(姓)과 관련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에 개인적으론 관심을 갖게 되는 저자이며 더 많은 그의 책들이 번역되기를 기대한다(주로 두꺼운 책들을 쓴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한편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전기를 감당하게 된 슈니츨러는 우리에게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 원작자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가이다. 프로이트로부터는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는데, 52년 동안 일기를 쓸 정도면 '숨기고 싶은' 그러나 '기록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기도 많았을 것이다(물론 대부분은 이상 성심리나 콤플렉스에 관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큐브릭이 현대적으로 각색한 <꿈의 노벨레>부터도 성에 관한 오해와 판타지를 다루고 있지 않은가?

 

 

 

 

슈니츨러의 다른 책들은 읽어본 바 없는데, <특별한 사랑이야기> (문화사랑, 1998), 희곡 <사랑의 유희>(성대출판부, 1999), 소설 <마지막 도박>(세계사, 1999), 단편집 <죽은 자는 말이 없다>(문예출판사, 2000), <사랑의 묘약>(문예출판사, 2004) 등이 번역/소개돼 있다. 최근에 '도박'과 관련한 논문도 쓴 김에 <마지막 도박> 정도는 읽어봐야겠다(이 책의 소개에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작가가 쓴 장편소설'로 돼 있다! 정선에 가실 분들은 미리 필독하시길.). <사랑의 묘약>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개정판이다(호프만의 <악마의 묘약>을 패러디한 제목인 듯한데, 원제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두번째 책은 데이비드 버스의 <마음의 기원>(나노미디어). 이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는 저자는 현재 텍사스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는데, 우리에겐 <욕망의 진화>(백년도서, 1995),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청림출판, 2003)로 알려져 있다. 나는 둘다 갖고 있고 전자를 읽었다. 버스는 도킨스 같은 스타 과학자들의 필력을 자랑하진 않는다. 원제가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 the new science of the mind)'인 이 책도 언젠가 도서관에서 원서를 본 적이 있는데(1999년에 초판, 작년에 2판이 나왔다) 딱 대학교재 같은 구성과 내용으로 돼 있다(. 그러니 '진화심리학 입문' 정도의 책인데, '마음의 기원'이란 역서명은 좀더 많은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방책인 듯싶다.  

물론 '좀더 많은 독자들'께서 바로 이 600쪽이 넘는 책을 집어들기는 어려울 테고, 딜런 에반스의 <진화심리학>(김영사, 2001) 정도로 먼저 몸을 푸시는 게 좋겠다. 그런 후에 최재천 교수 등이 쓴 <살인의 진화심리학>(서울대출판부, 2003)은 진화심리학 '연습' 정도로 훑어보고 그래도 내키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을 경우에 비로소 버스를 읽어나가는 게 제대로 된 코스 같다. 그 코스에서 옆길로 새는 독자들을 위해선 신간 <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바다출판사)가 준비돼 있다(이런 제목들은 다 누가 짓는 것인지?). '낚싯대로 건져 올린 인간, 진화 그리고 심리학 이야기'란 부제를 갖고 있는데, 낚시광인 저자가 "물에서 뭍으로 진화를 거쳐 '낚시하는 인간'으로 진화해온 인류와 낚시꾼의 경험담을 전해준다"고. 물론 거기에 걸려들 독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구호: "헤이, 우리는 삼천포로 간다!"

버스의 또다른 책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의 원제는 '위험한 열정(The Dangerous Passion)'(2000)인데, 많은 '노력한' 역서명이지만 원제가 더 유인책(미끼)으로는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판매율이 아주 저조하다). 책은 <언어본능>의 저자 스티븐 핀커도 추천하고 있는 만큼 '엉터리'는 아니다. '성적 질투와 살해', '배우자 살해에 대한 진화적 설명', '배우자 살해를 당하기 쉬운 여성들' 등 자극적인 내용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일독해볼 만한 책. 사실 <살인의 진화심리학>도 '배우자 살해'에 관한 연구인데, 이게 초창기 진화심리학의 '인기 있는' 주제였다.  배우자 살해라면, 물론 대개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인데('나는 도끼 부인과 결혼했다' 케이스가 아니라면) 좋다고 쫒아나딜 때는 언제고 죽이는 건 또 뭔가?(죽도록 사랑해서 죽이는가?) 

그런 게 문득 궁금한 독자라면 <남자는 원래 그래?>(리좀)을 손에 들만 하다. 저자 모리오카 마사히로 교수는 <무통혁명>(모멘토, 2005)의 저자이기도 한데, 신간은 남성의 성심리와 '불감증'을 다루고 있다(오늘자 한겨레가 자세한 리뷰를 싣고 있다. 참조하시길). 변태적이거나 도착적인, 하지만 일반적인(!) 남성심리에 대해서라면 일본인 저자의 통찰을 참조해볼 하다. 일본이 그 방면으로는 상당히 앞서가고 있는 나라니까 말이다(여고생 팬티를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세번째 책은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한길사)이다. 원제는 'Sovereign Virtue'(2000). '주권의 미덕'이란 뜻인가? 개략적인 소개를 옮겨오면 이렇다: "현대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롤스 이후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서 자유주의가 평등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평등권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드워킨은 지금까지의 현대 정치철학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대다수 정치사상의 입장들을 평등에 대한 하나의 견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고, 고대의 그리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철학의 문제를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의 문제로 다루고자 한다. 드워킨의 정치철학에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철학에서 공동체는 자유와 평등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정치적 이상으로 인정된다. 그는 공동체와 자유와 평등을 동일한 하나의 정치적 비전의 상호보완적인 측면들로 본다."

사실 작년, 그러니까 '당신의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들 중에는 <법의 제국>(아카넷)이라는 두툼한 법철학서도 있어서 다소 놀랐더랬는데('드워킨'이란 이름은 인문서를 읽다 보면 곧잘 등장한다), 이번에 '쐐기'를 박는 책이 출간된 것. 며칠 전 주문했던 <법의 제국>은 오늘 받았는데, '법'과 관련한 논문을 준비중에 있기 때문에 일단 구매를 했고 언제 통독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드워킨의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법철학의 문제들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책은 역시나 작년에 출간된 데리다의 <법의 힘>(문학과지성사)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책들이 나와 있는데, 내 생각에 역시나 표준적인 것은 스티븐 뮬홀(멀할)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 2001)이다. 그 책의 한 장이 드워킨에 할애돼 있다.

 

 

 

 

네번째 책은 '소련'에 관한 책이다. 미국인 저자들이 쓴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이후).  원제는 '계급이론과 역사'이고, 부제가 '소련에서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이다. 2002년에 나온 책이니까 비교적 신간이며 빨리 소개된 편인데, 거기엔 역자가 저자들에게 배운 제자라는 속사정도 들어 있다. 한국어판 서문이 2003년 9월에 씌어지고 옮긴이의 말도 작년 1월에 작성된 걸로 돼 있는데, 책이 지금에야 나온 건 무슨 사정 때문인지? 하여간에 비록 소련 '경제'를 다룬 책이지만 넓은 의미에선 '전공서적'에 속하기 때문에 나로선 반갑다. 스티븐 레스닉과 리처드 울프, 두 공저자는 맑스주의 계급투쟁이론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는 '앰허스트학파'의 리더들이라고 하는데, 그 방면으론 눈이 어두워 어느 정도 지명도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여러 권의 공저를 냈지만, 한국어로는 처음 소개되는 듯하므로 나의 무지가 흠은 아니겠다.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해 보이는데, 저자들은 소련의 경제를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규정하고 분석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러한 시각을 빌려 남북한도 비교해볼 수 있으리라고 시사하는데, 가령 남북한에서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대립적인 체제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각각에서 작동하는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생산수단의 집단소유와 국가계획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농장과 공장에서 공상주의는 결코 성취되지 않았다. 대신, 북한에는 국가자본주의가 존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북한사회에 여전히 가능한 대안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라면, "남한과 북한 사회 모두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한 판단을 입증/반증할 만한 데이터를 나는 갖고 있지 않지만 내가 동의할 만한 견해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와 김일성은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으며, (손호철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강정구나 조갑제나'이다. 오늘자 한겨레 북리뷰에 실린 도정일 교수의 칼럼에서도 '상식적인' (그러나 현재 간과/무시되고 있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는 북두칠성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자도 관용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게 그 체제의 짐이고(*혹은 딜레마이고) 영광 아니더냐? 그 짐을 질 자신이 없거든 일찌감치 걷어치워라. 너희가 북한과 같아지고 싶어서 안달이냐?"

어떤 나라는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하고 경축 분위기인데, 또 어떤 나라는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거의 '국난'을 당한 듯 시끌벅적이다. 만경대 정신을 떠받들겠다는 지식인이 (우리식 분류로) 좌익이고 친북인사라는 건 부인하지 말자.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지난 월요일자 한 신문의 칼럼에서 한 헌법학자는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라는 제하에 "사상과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들어 국가적 범죄도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사상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는데, 과거 유신헌법 기초에 관여했었다는 그의 전력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는 걸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원로들이 며칠전에는 구국운동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그 구호가 대한민국 만세였는지, 말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런 취지로 만경대주의자들을 다 잡아넣는다고 치자. 한데, 바로 그런 것이야말로 '북한식'이며 '북한식 인권의식' 아닌가? 현 국가보안법이 이렇듯 '북한과 같아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이들을 처분할 수 없다면, 그건 뭐하는 법인가? 거꾸로 만경대주의자에 대한 관용을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강변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또 무슨 자격으로 진보주의자인가? 북한보다 나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인데, '강정구 사건'과 관련하여 이보다 '보수적인' 태도가 또 있을까?(실상 남한이 북한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못한' 체제라는 것이 폭로되어야 혁명/통일 대업 달성에 유리한 것 아닌가? 그러니 더 많은 이들이 국보법으로 잡혀가야 정세가 더 호전되는 것 아닌가?) 내막은 또 짜고 치는 수작들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상식적으론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인 듯한다... 

어쨌든, 예전에 <소련국가자본주의>(책갈피, 1993)란 책이 나왔었는데, 신간과는 기조가 유사할 듯싶다. 소련 경제에 대해서는 권위자라고 하는 알렉 노브의 <소련경제사>(창비, 1998)도 참고할 만한 책.

 

 

 

 

마지막 책은 얼마전 101세로 세상을 떠난 중국의 대작가 파금의 <파금수상록>(학고방). 우리에겐 그의 대표작 <집(家)> 등이 소개돼 있는데, 한때 노벨문학상 단골후보이기도 했던 '큰집' 작가에 대한 예우로서는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언론에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바진'이라고 표기했던데, 아마도 중국어로는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다(대역본 <바진 소설선>이 출간돼 있다). 등소평(덩샤오핑)과는 동갑내기로서 서로 막역했다고 하는데, 젊은 시절 무정부주의에 심취했던 듯 파금(바진)이라는그의 필명은 그가 존경하던 러시아의 무정 부주의자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한자음에서 각각 첫 음절과 마지 막 음절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식으론 '바킨'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데, 우리로선 이 '바킨' 같은 작가를 기대할 수 없는데, 우리말로 된 '바쿠닌' 책이 한권도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E. H. 카가 쓴 평전 <미하일 바쿠닌>(종로서적, 1989)이 좀 돌아다녔지만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그나마 크로포트킨은 사정이 좀 나아서 그의 <자서전>(우물이있는집, 2003)과 상호부조론 <만물은 서로 돕는다>(르네상스, 2005)가 나와 있는 정도. 이 걸출한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에 대해서는 할 수 없이 <아나키스트의 초상>(갈무리, 2004) 같은 책들을 참조하는 수밖에 없겠다. 저자인 폴 애브리치는 아나키즘 전문가로서 그의 책으론 <러시아 아나키스트, 1905>(1989), <러시아 아나키스트, 1917>(예문, 1989) 등이 더 번역된 적이 있다. 지금은 다 어데로 갔나? 하긴, 뭐이 아나키스트는 아무나 하나...  

05. 10. 21.  

 

 

 

 

P.S. 언젠가 한번 언급했었는데, 시인-비평가이자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친구이기도 한 이장욱의 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문학수첩)이 출간됐다.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소설가 공지영의 평에 따르면, "만만치 않은 문장력과 사회에 대한 통찰, 소설의 구성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였다. 고심을 많이 했다고 해서 꼭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은 아니지만 그 치열한 대결의식에 점수를 주고 싶었다. 최근에 나온 신인의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자부한다"고.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다음 생(生)으로 미룬 장래 희망이 있었다. 아주 유연한 유격수. 무표정한 프로바둑 기사. 소설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소설가가 되었다. 가능하다면 유연하고 무표정한 그런 소설가가 되도록 하자." 지인(知人)의 책이라고 나도 따로 표정을 짓지는 않겠다...

덧붙여,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진주 태생의 시인 허수경의 네번째 시집이 나왔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 나는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비, 2001)가 다소 불만스러웠으나 새 시집에 대한 기대마저 놓은 건 아니었다. 소개에 따르면, "시인은 시편들을 통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反전쟁에 대한 노래, 이 아이러니를 그냥 난,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먼 이국땅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시인이 오래된 지층 사이에서 혹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넘쳐나는 전쟁 소식을 접하며 마치 발굴하듯 모국어로 옮긴 한 자 한 자의 시어는 '시'가 '역사'를 대할 때 보일 수 있는 한 전범이"라고 하니까 일독해 보시길. 그이의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현대문학)은 지난달에 나온 책이다.

이제 '감자의 시간'이다. 빨리 귀가해야겠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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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밑바닥에서 겪은 학살의 증언

전쟁과 기억·마을 공동체의 생애사
김경학 등 지음|한울아카데미|308쪽|2만2000원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 1950년 9월 서울 수복 후 한 남자가 북한 '동조자'를 때리고 있다. 한국전 종군기자인 AP통신의 맥스 데스포씨가 제공한 사진이다
6·25 전쟁 중의 영광군 백수읍의 한 마을. 대낮에 당산 나무아래서 ‘인민 재판’이 벌어졌다. 우익에 가담했던 박씨의 큰 집 일족이 숙청당한 후, 박씨 가족 차례가 된 것이다. 다행히 죄가 없으니 살려주자는 쪽으로 흘렀다. 박씨 가족은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일가족을 모두 죽여야 보복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서 다시 끌려가 학살당했다.

1952년 공보처에서 작성한 좌익에 의한 민간인 피살자 명단에 따르면, 전체 희생자 6만 명 중 전남이 약 4만 3500명이고, 그 중 절반에 가까운 2만 1225명이 영광에서 나왔다. 영광 지역의 학살은 1950년 9월 중순에서 11월 사이에 집중됐다. 인민군들은 7월 23일 영광에 들어왔다가 9·28 서울 수복 후 퇴각했다. 하지만 정작 이 지역은 1951년 2월에야 수복됐을 정도로 군경의 진입은 늦었고, 그 사이에 학살이 자행됐다.

“한 집안의 씨를 말렸다”고 할 정도로 학살은 잔혹했다. 김해 김씨 집성촌으로 60가구가 살던 염산면 장동 마을에선 14가구 80명의 김씨들이 지역 좌익에 의해 학살됐다. 장동과는 달리 이웃의 축장 마을에선 지역 좌익에 의해 희생된 사람은 하나 밖에 없었다. 특히 각성바지 마을인 이 곳을 이끌던 파평 문씨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들은 ‘드러내놓고’ 좌익 편에 서지 않고 ‘중용을 지켰기’ 때문에 살았다고들 했다.

이 책은 6·25 와중에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 좌익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가 유달리 많았던 영광과 강진, 영암 등 전남 지방의 폭력과 학살에 대한 기억을 정리한 것이다. 김경학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를 비롯, 박정석(인류학), 표인주(민속학), 염미경(사회학), 윤정란(역사학) 등 연구자 5명이 이 지역 주민들의 구술을 토대로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체험을 복원해낸다.

증언자들은 대부분 70~80대. 20대 안팎에 6.25 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체험으로 그 시절을 증언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다. 이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 이념뿐 아니라 개인과 집안간의 사소한 원한과 보복에 대한 우려가 학살을 낳았다고 증언한다.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이 대학교수의 입에서까지 거리낌없이 나오는 요즘, 밑바닥에서 폭력과 학살을 체험한 이들의 증언은 한층 소중하다.

무참한 학살극의 와중에서도 ‘기적’같은 관용이 있었다. 영광군 백수면의 한 마을 사람들은 수복 직후 백수면 대한청년단장 자격으로 경찰과 함께 마을에 돌아온 박씨를 두려워했다. 그의 가족과 큰 집·작은 집 식구 27명이 좌익에 의해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요행히 그만 서울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그는 학살에 관련된 마을 사람들을 찾아 보복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구해줬다. 마을 사람들은 2004년 공덕비까지 세웠다.

좌익 쪽에도 학살을 막은 사람이 있었다. 염산면 유격대 부(副)대장으로 활동했던 김○△씨. 마을 사람들은 그를 불필요한 학살을 막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거물 좌익이었던 그는 체포됐으나, 마을 사람들이 정부에 감형을 요청했다. 20년간 복역한 끝에 고향에 돌아온 그는 조용히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이런 미담(美談)은 예외적이었다. 자신과 가족을 살리기 위해, 또는 보복이 두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고, 침묵했다. 지주에 속하거나, 우익으로 몰려 가족의 안위가 위태롭게 될 경우에는 오히려 좌익에 가담해 앞장서기도 했다.

책은 학술 논문집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읽어낼 수 있다. 그 엄혹한 시절을 몸으로 살았던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전쟁의 상흔과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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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2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안은영혼을잠식하여진청에그림자를드리우고단꿈에마음은침식되어깨지않을긴잠에든다

내게도이름이있었단들이미잊은지오래인노래부서진멜로디만입가에남아울고있네

검푸른저숲속에도새들은날아들고아-아-아-아-아-아-깨지않을긴잠에든다

붉게멍울진맘에는일상도꿈도투명하여 아-아-아-아-아-아-깨지않을긴잠에든다
 
 
김윤아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제 들리나요? ^-^

stella.K 2005-10-22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야, 그래도 안돼네. 하지만 난 너 때문에 불안하지도 영혼이 잠식 당하지도 않을거야. 흐흑~!
 
 전출처 : 마태우스 > 알라딘이 어렵답니다

 

 

 

 

이 글이 많은 분께 상처가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모든 이에게 상처주는 글을 굳이 올려야 해서요. 글이란 칼과 같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무섭습니다. 베인 사람은 상처받습니다. 하지만 즐찾이 줄 걸 감안해도 전 이 글이 쓰고 싶어요.


하고픈 말은 알라딘이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살리자는 얘깁니다. 다시 말하면 알라딘에서 책 좀 사주자는 얘기예요. 물론 살 계획이 없는 분에게까지 드리는 말은 아닙니다. 책을 살 계획이 있는 분은 이왕이면 알라딘에서 책을 사달라는 거예요.


어제, 출판계의 큰손을 만났어요. 그분의 말에 의하면 예스와 교보가 1등을 다투고, 인터파크는 3등, 알라딘은 4등이라네요. 3등도 생존이 위태로운 시대라는 거, 여러분도 잘 아시죠? 할인금액과 적립금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예스가 알라딘보다 매출이 세배나 많다는 것은, 박리다매를 모토로 삼는 인터넷서점의 특성상 예스에 비해 알라딘의 이익이 거의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른 인터넷 서점에 비해 알라딘은 대금 결제를 일주일 이상 늦는 일이 많았다고 하고, 그래서 작년 한해동안 알라딘이 예스에 합병된다는 소문이 출판계에서는 무성했답니다.


작년부터 알라딘은 한권 주문시에도 배송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 정책으로 인해 알라딘은 다시금 적자로 돌아섰지요. 책 한권이 1만원이라고 해봅시다. 서점에서 책을 65%의 가격에 공급하면, 1천원 할인에 적립금 2천원, 거기에 배송료 3천원을 더하면 과연 뭐가 남겠습니까. 인터파크야 자체 배송 시스템이 있고, 책 이외에 많은 물건을 파는 그들로서는 직원들을 좀 더 혹사시키는 것 외에 손해가 없겠지만, 알라딘에게 1권 배송은 손해 그 자체입니다. 역시 자체배송 시스템을 갖춘, 그래서 배송이 무지하게 빠른 교보 역시 2만원 이하 주문시에는 배송료를 물린다는 사실을 상기해 봅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1권 무료배송의 원칙이 철회되긴 어렵습니다. 혜택을 줄이는 방안은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고, 고객을 떨어져 나가게 하는 이유가 되니까요.


물론 가격을 꼼꼼히 따져서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면 그곳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인 소비자겠지요. 전 그래서 예스에서 플라티눔 회원이라고 자랑하는 분들, 알라딘에서 책을 고르고 예스에서 산다는 분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예스에서 플라티눔인 분들이라면 몇백원의 가격차이에 먹고사는 게 왔다갔다할 것 같지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일테고, 제가 주창하는 충성도 이론이 그 두 번째 이유입니다. 알라딘 분들 모두를 인터뷰하진 못했지만, 서재질을 하는 분들에게 여쭤 본 결과 90% 이상이 알라딘의 장점으로 서재질을 꼽았습니다. 서재질, 저도 열심히 하지만 정말 이만큼 좋은 사람들과 상호소통을 맺는다는 건 분명 행복한 겁니다. 사진을 무한정 올릴 수 있다는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들이 좋다, 이것은 예스에 블로그가 생겼음에도 알라디너 분들이 그쯕으로 이동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다른 서점과 가격을 비교할 때, 서재질 효과도 제발 가격에 넣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1% 땡스투 마일리지를 계산하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 예스가 알라딘보다 모든 책의 가격이 200원씩 싸다고 가정해 봅시다. 서재질을 하는 많은 분들이 예스에서 책을 삽니다. 알라딘은 결국 망하고, 예스에 합병됩니다. 지금 우리는 별의 별 문제를 지기님께 퍼부어대지만, 옷 만드는 것만 알고 살아온 예스의 주인이 서재활동에 그전만큼 관심을 기울여 줄 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자, 서재가 없어진 마당에 그래도 계속 알라딘에 있을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을까요? 그렇게 따져볼 때 알라딘에서 책을 살 때 받는 몇백원의 불이익은 충분히 감수할만한 일이 아니겠어요? 예스에서 플라티눔 회원이라고 자랑하던 분들게 제가 서운함을 느끼는 건 바로 이 대목입니다.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될만한 일을 왜 그들은 자랑하는 걸까요. 저야 별 상관이 없지만, 서재 관리에 열심인 분들이 그 글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물론 그분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겁니다. 책 배송이 느리다든지, 배송된 책의 상태가 나쁘다던지. 하지만 우리가 알라딘 서재질에서 얻는 즐거움을 그것과 비교한다면,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직원 분들의 답변이 잘못되었다고 우리가 그분들을 질타했을 때, 알라딘 측에서는 생존의 문제로 고민을 했을 거란 걸 생각하면 말입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퇴출되는 건 자본주의 시장에선 당연한 거겠지만, 우리에게 알라딘은 한 기업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나요? 몇백원의 이익 때문에 다른 서점에 주문을 한다면 없는 돈에 서버를 늘려주고, 서재질에 대한 숱한 질문들에 답변해 주는 지금을 아마도 나중에는 그리워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전 두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한권 배송이 적자의 첨병이란 걸 최소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보다 많은 이에게 혜택을 드리자는 이벤트는 책 대신 상품권으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상품권이라면 만원일 필요가 굳이 없습니다. 5천원짜리를 하더라도 상품권으로 한다면 알라딘 측에서는 배송 비용이 절약되고, 현금이 곧바로 입금되니 경제 위기를 탈출하는 데도 좋습니다. 둘째, 최소한 서재질을 하는 분들은 알라딘에 대해 충성심을 좀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삼성에 다니면서 가전제품은 모두 대우로만 장만하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듯, 알라딘 서재질을 하면서 책은 예스에서만 사는 것 역시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마이리뷰를 비롯한 책에 대한 정보는 알라딘이 훨씬 우월하지 않나요? 전 서재를 통해 만난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과의 우정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건 저나 여러분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겠지요. 알라딘이 문을 닫으면, out of mind, out of sight란 말처럼 굳건하게만 보이는 우리의 우정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우정의 댓가로 지불하는 몇백원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겠지요? 제 글에 상처받았던 모든 분께 죄송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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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 2008-11-0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러면 오프라인서점을 어케 묵고사는교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은미



양 희은




Bevinda - Ja Esta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위해 빛나던 모든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출처: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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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 외 수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 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

 

 

 

 

 

 

 

 

 

Music Box Dancer - Frank Mills

 

출처: 山 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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