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본다면 난 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것도 없는 시간 쪼개서 보는 것이라(누가 보면 내가 엄청 바쁜 줄 알겠다. 하루는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는지...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론 간혹 예능이나 교양을 보긴 하지만 정말 그야말로 '어쩌다 예능', '어쩌다 교양'이다. 

 

K본부에서 하는 <인간극장>은 또 얼마나 오래된 교양 프로그램인가? 아침 시간 늘상 하는 거니까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건 정말 간혹 꽂혀서 보는 것이 있다. 나에겐 이번 주 방송이 그랬다. 한때 잘 나가던 교수였는데 5년 전쯤 간암 판정을 받았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리라. 그러다 우연히 길에 버려진 유기견을 발견하고 그 개의 처지가 자기 같고, 자기가 그 개 같은 감정이입이 생기고 그래서 그 개를 데려다 키우면서 간암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그 이후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야말로 유기견, 길고양이에게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극장' / 사진=KBS 온에어 방송화면 캡처(http://stoo.asiae.co.kr/news/naver_view.htm?idxno=2018032308142656853)

 

난 이런 내용이 좋다. 물론 우리집도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그런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뭐 하나가 계기가 되서 지금까지 살아 온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삶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 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는가. 스펙 쌓고, 경력 쌓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살다가 늙어가고. 그렇게 짜여진 듯한 삶 가운데서 뭐 하나가 툭 섬광 같이 나타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면 얼마나 스릴있고, 놀랍고, 짜릿하겠는가? 우린 그렇게 짜여지고 정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짜여지고 정해진 가운데 나를 변화시켜 놓을만한 한 순간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일찌감히 생을 포기하고 사는 건 얼마나 손해 보는 일인가?

 

지금의 세대를 가리켜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세대라고 한다. 그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정해진 틀에서 보면 말이다. 하지만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무한히 새로운 삶이 펼쳐지기도 할 텐데 왜 개천에서 용이 나오길 기대한단 말인가? 

 

어쨌든 우린 그런 순간을 두고 삶이 선물이 되는 순간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저 사진 속 주인공은 확실히 그랬다. 삶이 자신을 배반하고 저주한 것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순간이 왔다고 해서 그 이후의 삶이 탄탄대로고 완전무결한 행복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더 많이 힘들고 고난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60마리나 되는 유기견, 유기묘를 매일 같이 돌보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인지. 누구에겐 돌보다 나가 떨어질 상황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암은 고쳤는지 모르지만 과로로인해 없던 병도 생길 판이고, 또 그러니만큼 암이 언제 도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 풍전등화와 같은 삶. 매일 매일 작은 불꽃을 피워 올려야 하는 상태. 우린 그런 속에서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그녀의 삶은 몹시 가깝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낱 개와 고양이들에게 바쳐진 삶이라니. 어디 여행을 갈 수나 있나, 사람을 맘놓고 만날 수나 있나? 하다못해 자기 딸 대학원 졸업식에 그 먼 거제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는 하룻밤은 고사하고 밥 한끼도 못 먹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한숨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건 남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이다. 그의 삶이 그것으로 즐겁고 만족한다면 우린 그것으로 그의 삶을 축복하고 격려해줘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의 DNA는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만을 위해 산다는 건 피곤하고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녀는 버려진 개와 고양이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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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3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23 18: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뭔가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요.ㅠ

저희집이 반려견을 키우고 있어서
이번 주 방송분은 유난히 관심있게 보게 되더군요.
개중엔 정말 흠없고 예쁜 녀석들도 많던데
원주인은 어떻게 이런 녀석들을 버릴 생각을 했을까?
보는 내내 짠하더라구요.
누가 좀 자원봉사해 주는 사람 없을까 안타깝기도 하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