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죽음을 앞둔 서른여덟 작가가 전하는 인생의 의미
니나 리그스 지음, 신솔잎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만일 내가 앞으로 3개월 내지 6개월, 또는 1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4년 전 오빠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 갖게 된 질문이다. 물론 오래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땐 마냥 슬프기만 했고, 그때 나는 창창한 나이었으니 그런 질문은 별로 가당치가 않았다. 그러나 오빠의 죽음은 나에게 보다 실제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나 보다 한 세대를 앞선 분이지만 오빠는 나와 동세대 사람이다. 아버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오빠가 죽은 나이 보다 2년을 더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아무래도 세상을 덤으로 살고 있지 싶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100세를 살지는 않는다. 나의 오빠가 그랬고, 이 책의 저자가 그랬다. 38세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죽었다. 저자는 죽기 전까지 생의 마지막 풍경을 글로 남겼다.

 

삶이라는 게 그렇긴 하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산 것 같은데 어느 날 병원을 가고, 거기서 치유 불가능한 병명을 판정 받고, 그때부터 자신의 마지막 생의 나날을 손으로 꼽는다. 누구는 판정을 받은 날로부터 병석에 눕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지만, 생을 긍정적으로 산 사람은 죽을 때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제목 그대로 비록 죽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삶이고 죽음조차도 내 것이니까.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죽음도 긍정한다. 그런 사람들은 특히 서양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암으로 죽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심장사나 사고사 같이 갑자기 죽는 것 보단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있고, 남아 있는 가족이니 친지들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건 맞는 말이다. 다 같은 죽음이라고 해도 오빠는 본인에게나 가족들에게나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줬다. 만일 오빠가 갑자기 죽었다면 그 정신적 충격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6개월 전만해도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환자 신세가 되고,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걸 지켜본다는 건 괴로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겪는 과정이고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그때가 떠올라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나도 언제든 오빠 같을 수 있고, 이 책의 저자 같을 수 있다.

 

사춘기 시절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왜 그렇게 힘들 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시절의 어리석은 생각이긴 하지만 틀린 생각은 아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건 말이다.

 

죽음을 목도하고, 이런 책을 읽고, 2년에 한 번씩 암 검진 받으라는 통지서를 받을 때마다 그리고 몸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신세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죽음을 이해시키려고 썼던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볼 때 그랬다. 저자는 죽음을 앞두고 지난 인생을 반추하며 남은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갔던 그 마지막 삶을 그렸을 뿐이다.

 

난 아직까지는 건강한 편이긴 하다. 물론 그 건강이란 게 아픈데 없이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나쁘지 않은 정도를 의미할 뿐이다. 사람은 25세를 이후로 노화에 접어든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써 온 내 팔 다리 근육을 생각하면 그냥저냥 양호한 편이라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바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이 책의 저자처럼 또는 나의 오빠처럼 암 같은 예후가 안 좋은 병의 진단을 받아도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냐고 화내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반대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안했으면 좋겠다.

 

물론 분명 많이 울 것 같긴 하다. 그렇더라도 내 가족과 친지들 앞에선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급적 기운이 떨어지기 전에 빨리 주변을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을 처분하고, 안 입는 옷이나 물품들도 팔거나 버려야 한다. 나는 살아 있는 가족에게 이 일을 맡길 수가 없다. 그건 또 얼마나 마음 아프고 미안한 일이 되겠는가, 가급적 내 블로그에 나의 부고를 알릴 수 있도록 미리 글을 써 두고, 비밀번호를 가족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힘 닿는 대로 나 죽으면 읽어 보라고 편지 한 통씩 남겨줄 것이다. 이것만 해도 바쁘겠지.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책을 읽고 뭔가를 계속 쓰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냥 앉은 자리에서 깜빡 잠이 든 것처럼 죽는 사람 말이다. 난 내가 숨이 넘어 간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다.

 

오래도록 기도하며 산 사람들이 하는 마지막 기도가 있다. 그것은 임종의 기도다. 가급적 자신의 마지막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또한 남아 있는 가족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서 하는 기도다. 자신이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위해 대신해 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오빠의 죽음 이후로 가끔 나 자신을 위해 이 기도를 한다.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2, 30년 뒤부터 해도 되지 않을까?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100세를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언제 사고를 당하고 죽을지 몰라 보험도 드는 세상인데 그걸 못하겠는가?

 

나이 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자꾸 들어난다. 수시로 이별 연습을 해야 하고, 안 다니던 병원도 가야하며, 잔칫집에도 가야하지만 초상집에도 가야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도 앞으로 살 것만을 생각하고 이런 책을 안 쓰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도 젊은 나인데 말이다. 하지만 썼다.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 앞으로 저 세상에서 맞을 또 다른 삶을 위해.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저자는 독자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좀 호불호가 있을 것도 같다. 생각 보다 공감하는 바가 적어 아쉽고 조금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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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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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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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07: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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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9: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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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7 2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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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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