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잠에서 깬 사자처럼 일어서는 시대를 꿈꾸며
미국민중사 세트 (2권 세트)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잠에서 깬 사자처럼 일어서는 시대를 꿈꾸며
-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읽고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내게 각별하게 기억되는 책이다. 언제나 읽을 것에 목말라했던 시절, 내 삶을 움직인 책 10권을 꼽으라면 조영래의 『전태일평전』,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 풀빛출판사의 『한국민중사』(혹은 송건호 외의 『해방전후사의 인식1』,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황석영의 『객지』, 최인훈의 『광장』, 김수영의 『김수영전집』, 사마천의 『사기』, 나관중의 『삼국지』, 『마르크스 ․ 엥겔스 저작선집』 그리고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등을 꼽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80년대라는 시대를 나름의 고통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하워드 진은 이후 국내에서 출판된 다른 어떤 책보다 우선 일월서각에서 나온 『미국민중저항사』의 저자로 먼저 인식된다. 『미국민중저항사』는 광주항쟁이 있던 1980년 미국에서 초판이 발간되었고, 1986년 조선혜의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출판되었다. 그 무렵 이 책은 위에서 언급된 책들과 함께 열쇠를 채운 독서실 책상 서랍 속에 있거나, 내가 스스로 “지상의 끝(漠場)”이라 이름 지은 연립지하의 어두운 골방에서 늘 함께 했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건국대 입구의 사회과학 전문 “인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구했던 것 같다. 그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몇 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면서 86년판 『미국민중저항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한동안 내게서 잊혀졌거나 구할 수 없었던 이 책이 다시 내 품으로 들어온 것은 지난 2002년 무렵의 일이었다. 2001년에 2쇄가 인쇄되었던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이 책을 구한 기쁨에 썼던 글이 있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굿윌헌팅>에 보면 천재적인 능력을 갖췄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대학 구내 청소부로 일하는 맷 데이먼(윌 헌팅)이 친구 벤 애플렉(척키 설리번)과 함께 하버드대학 인근의 술집으로 놀러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의 친구에게 모욕을 주는 하버드대학 역사학부 학생을 면전에서 망신 주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윌 헌팅이 인용하며 명문대 역사학부 학생을 망신 준 것이 바로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이다. <미국민중저항사>, 원제는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로 알라딘에서는 하워드 진 개인 약력 소개에서 '미국 민중의 역사'라고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도서출판 당대에서 출간된 『오만한 제국』에는 하워드 진, 그 자신의 삶의 내력을 엿볼 수 있는 구절들이 꽤 있다. 미국 사회 내부에서보다 한국을 비롯해 오늘날 미국의 패권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고통 받는 사회에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그의 면모 덕분에 우리는 그에 대한 꽤 여러 종의 책들을 접할 수 있다. 대학교수이자 역사학자로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그가 어째서 강단의 지식인으로서 보다 운동가로 더 널리 인식되고 알려지게 된 것일까? 아마도 그의 삶에서 이유를 찾자면 뉴욕 빈민가에서 노동자계급의 자식으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로 일했던 경험, 폭격기 승무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했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지식인으로서 사회 참여의 길을 열어준 것은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 병사들을 위해 제정된 ‘원호법(援護法)’으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미국과 미국의 체제, 민주주의의 혜택을 여러모로 많이 받은 사람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워드 진은 조국으로서 미국을 사랑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반성을 제공했다. 그 자신이 그와 같은 인식과 반성을 바탕으로 그들과 늘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사람들마다 20세기를 규정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에게 20세기는 ‘문명과 야만의 시대’였고, 어떤 이에게는 ‘마르크스주의’, ‘소비에트 러시아’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20세기는 ‘자본주의’, ‘세계최강대국 미국’, ‘물신주의’, ‘대중’의 세기였다. 이와 같은 말들은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든 모두 지난 20세기를 나타내는 중요한 인식 코드들이다. 로마, 몽골, 영국을 비롯해 역사상 그 어떤 제국도 오늘날 미국이 누리는 것과 같은 세계적인 패권을 누리지 못했다. 그와 같은 제국의 탄생에 기초를 닦고, 확고히 인식시킨 것이 지난 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다. 이 시기 미국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유럽 제국의 패권이 더 이상 유럽 스스로의 세력 균형조차 감당할 수 없으리만치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식시켰고, 전체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류를 구원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은 단지 군사적, 경제적인 패권만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제3세계 민중의 일상(日常)과 이상(理想)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오늘날 글로벌리즘, 세계화, WTO, FTA, MD, 자유무역이든 그것이 무엇으로 표기되던 전지구화의 움직임, 그 자체를 “아메리카나이제이션(Americanization)”과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미국은 그 자체로 20세기가 쌓아올린 독특한 문명체계로서 체제의 내 ․ 외부를 분간할 수 없는 밀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반미가 곧 친미가 되는 우스꽝스러운 현상으로 드러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든다. 하나는 미국에도 하워드 진이나 노암 촘스키 같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버티고 있다는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2000년 미국 대선,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의 민중들 역시 군수자본과 다국적 금융자본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워드 진과 함께 1960년대 반전민권운동의 일선에 싸웠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네오콘들이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레이시온, 맥도넬더글러스, 보잉에서 일하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이제는 누구보다 기득권 세력화되어, 미국 이외의 지역은 물론 미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까지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되어 더 이상 연대하기 보다는 그 체제 자체에 안주하고 있음을 보아야한다. 맥월드의 풍요에 중독된 사람들은 빈곤한 자들의 지하드에 관심이 없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도 기술되어 있듯 미국은 오랜 세월 민중의 저항을 교묘히 분쇄하고, 타협하며 오늘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하워드 진의 꿋꿋한 외침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고립된 양심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일월서각의 책은 1970년대까지 수록되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도 1980년대~2000년대의 급변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판은 2000년까지 수록하고 있지만, 하워드 진의 담담하지만 노기 띤 목소리는 여전하다. 앞서 이 글을 쓰기 전, 어느 분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문화대혁명이 우리 윗세대에게 참 궁금한 문제였다면, 저의 세대에게는 톈안문(천안문) 사태가 커다란 궁금증이었습니다. ‘인민이 혁명을 배반하면 탱크로 밀어버려도 괜찮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고민 자체가 그릇된 것이었음에도 당시에는 선뜻 인민을 배반하는 사회주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미처 상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상상 자체가 불경이었으니까요. 우습죠? 80년 광주를 경험하며 운동을 시작했다는 어떤 이가 자신은 정말 많은 고민 끝에 하는 말이라며 ‘자본주의에 포섭된 인민의 배반을 막지 못한다면 어떻게 혁명노선을 견지할 수 있는가? 그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말했었지요. 그 앞에서 차마 뭐라 말하지 못하고 뒤돌아서던 시절의 씁쓸한 기억이 새삼스럽네요.”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다시 읽는 21세기 초엽의 어느 날, 아직 새벽 두시가 되기엔 다소 이른 새벽 한 시 십이분. 김지하의 「새벽 두시」라는 시를 찾아 읽는다.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 책을 읽을 수도 없다 /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새벽 두시다 / 어중간한 시간 / 이 시대다” 가만있을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시대를 살면서 하워드 진이 이 책 말미에 적어둔 셸리의 시 “잠에서 깬 사자처럼 일어서라 / 저들이 도저히 격하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를 모아! / 잠든 사이 떨어졌던 이슬방울을 털어내듯 / 너희 몸에 묶인 족쇄를 떨쳐내라-- / 너희는 다수이고, 저들은 소수이다!”를 당당하게 소리쳐 외치고 싶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미국과 추진하는 FTA협상이나,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문제에 대해 다 알면서 침묵하는 까닭. 그것이 어쩌면 이제는 우리도 우리보다 힘없는 다른 나라를 등쳐먹고 살 만해졌다는, 이라크 아르빌에, 레바논에 점령지원군, 평화유지군을 보내고, UN 사무총장 선거에 나서며 미국이라는 패권체제의 한 귀퉁이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는 비열한 자신감의 표현일지 모른다는 생각, 그것이 우리들의 졸렬한 생존감각일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이 글을 써내려갈 자신이 없어졌다. 어쩌면 그것이 슬라보이 지젝이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닌이 실패했다는 것, 그러나 그 안에 여전히 유토피아적 불꽃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가 실패한 것, 그가 잃어버린 기회들을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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