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스타 작가들'의 한국현대사

퇴근길에 사든 문화일보에서 이번주에 나온 김영하의 신작소설과 지난주에 나온 김인숙의 신작소설 리뷰를 읽었다. '위기의 한국소설'을 구원해줄 '스타작가들'? 내막을 조금 따라가본다. 개별 소설에 대한 리뷰 기사 두 편도 같이 옮겨다 놓는다.  

문화일보(06. 08. 10) ‘위기의 한국소설’ 구원투수?

-김영하(38·), 김인숙(43)씨.각종 문학상을 받으며 문학계 내부에서 인정을 받고, 또 대중에 게도 널리 알려진 이른바 스타작가들이다(*다섯 살의 나이 차이를 갖고 있지만 63년생 작가군의 한 명으로 '80년대 작가'인 김인숙과 '90년대 대표작가' 김영하는 문학적으로 한 세대의 격차를 갖는다. 그 차이가 두 작품에도 각인돼 있지 않을까 싶다). 386세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한국 현대사의 풍경 속 에 개인의 쓸쓸하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진 장편 소설을 잇달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9일 출간된 김영하씨의 <빛의 제국>(문학동네 발행)은 남파간 첩을 주인공으로 분단상황에 쫓기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그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다. 앞서 나온 김인숙씨의 <봉지>(문학사 상사)는 한 시골소녀가 민주화과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성장하 는 이야기다. 당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으나 사회, 역사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개인의 실존적 흔들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탄탄한 서사구조와 더불어 힘있는 문체로 독자를 흡인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문학계는 각기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두 작가의 신작 장편이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국내소설판에 독자를 끌어오는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빛의 제국’의 풍경 = 제목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따 왔다. 하늘은 청명한데 땅은 어두운 그림의 풍경이 소설 전체에 배경으로 깔린다. 20여년간이나 남쪽에 적응해 살고 있던 김기영은 어느날 24시간 후 귀환하라는 평양의 명령을 받고 고민에 휩싸인다. 1963년 평양 태생인 그는 67년생으로 둔갑, 연세대에 입학해 학생운동권에서 활동하다가 졸업 후 영화수입업자로 일해왔다. 운동권 후배와 결혼해 딸을 둔 기영은 95년에 그를 남파한 북쪽 담당자가 실각함으로써 ‘잊어진 스파이’가 됐다.

-“처음엔 주인공 기영의 시점으로만 글을 썼다가 없애버리고, 주요 인물마다의 시점으로 다시 썼어요. 8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를 입체적으로 그려가는 데 필요해서였지요.” 작가의 의도대로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가족사가 현대사의 골짜 기를 이룬다. 이 골짜기에서 어떻게든 살아 온 인물들의 모습은 비극적이면서 희극적이다.

-대학시절엔 임수경을 질투하며 평양에 가고 싶어 안달했던 기영의 아내 장마리는 스무 살이나 어린 대학생들과 섹스놀이를 즐기고(*얼마만큼 리얼리티가 있는 설정일까?), 기영의 뒤를 주도면밀하게 뒤쫓아온 남쪽 정보기관원 박철수는 실향민인 할아버지와 코미디언인 아버지의 삶을 애틋하게 반추한다. 이들의 모순된 모습에 당혹해하면서도 끝내 애정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작가의 밀도 있는 묘사력 때문이다.

◆‘봉지’의 과거와 미래 = 1970, 80년대를 건넌 청춘들에 대한 회상록이다(*김인숙의 데뷔작이 <79-80 겨울에서 봄 사이>였던가?). 제목은 주인공 봉희가 어린 시절에 패싸움을 하는 오빠를 부르러 싸움판에 들어갔다가 자전거 체인에 맞아 이마가 비닐봉지처럼 찢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을 옮긴 것. 봉지는 예쁘지도 않고 공부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사에 당당해서 친구인 순미, 영주, 가현의 부러움을 산다.

-봉지는 어느날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진영을 보고 사랑을 품게 되지만, 독재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고 있던 진영에게 시골 소녀의 풋사랑은 대수롭지 않은 일. 봉지는 서울의 한 간호전문 대에 입학, 진영의 학교로 그를 찾아가지만 여전히 두 사람 사이는 거리가 있다. 봉지는 어느날 당국의 수배에 쫓기는 진영을 숨겨줬다가 어딘가로 연행돼 고문을 받는다.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과거로 여행하는 일은 봉지에게 추억을 되찾는 일이라기보다는 지우기에 가깝다. ‘찢어진 봉지’와 같은 삶을 어느 누군들 껴안고 미래로 가고 싶을까.

-이 작품은 작가 김씨가 1983년 등단 이후 줄기차게 성찰해 온 시대적 고민을 좀 더 개인사 쪽으로 내면화한 느낌을 준다. 중년에 이른 봉지의 독백은 참혹한 세월에 무릎 꿇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과거에 담담하게 악수를 건넨다. ‘지나온 생을 견딘 힘만으 로도 남은 생은 괜찮은 법이다.’(장재선 기자)

서울신문(06. 08. 11) 남북 분단 그린 장편 ‘빛의 제국’ 펴낸 김영하

-소설가 김영하(38)가 장편 <빛의 제국>(문학동네)을 냈다.2004년 한해에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독식하며 문단의 스타로 떠올랐던 그가 <검은 꽃> 이후 3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이다. 흡혈귀, 자살안내인 같은 비일상적인 설정에서 멕시코 이민사의 거대 서사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전복적인 글쓰기로 자신만의 문학적 입지를 탄탄히 구축해온 작가는 이번에도 내용과 형식 모두 기존 소설과 차별되는 실험적 작품을 내놓았다.


 

 

 

-<빛의 제국>은 남파 간첩으로 20년을 살아오다 갑작스럽게 북으로의 귀환 명령을 받은 40대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김기영은 엘리트 출신 공작원을 남한 대학의 신입생으로 입학시켜 학생운동을 주도하려는 당의 계획에 따라 스물두살이던 1984년 서울로 남파된다. 대학 졸업 후 영화수입업을 하며 임무를 수행하던 김기영은 1995년 북측의 책임자가 실각하면서 잊혀진 스파이가 되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왔다. 소설은 김기영이 귀환 명령을 받은 그날 오전 7시부터 다음날 같은 시간까지 단 하루 동안 김기영과 그의 아내 마리, 딸 현미에게 일어난 일상을 긴박하게 엮어나간다.

-생의 절반은 북한에서, 나머지 절반은 남한에서 지낸 한 남자의 삶에서 남북 분단의 현실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조명하는 소설의 구조는 최인훈의 <광장>과 닮아 있다.“처음부터 <광장>을 염두에 뒀다.”는 작가는 “1980년대 이후 달라진 남북의 변화상을 통해 ‘광장’이 지닌 시대적 한계들을 돌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말하자면 김영하 버전의 <광장>, 소위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광장>쯤 되겠다). 노동당원인 김기영이 대학 운동권서클에서 주체사상을 학습하는 비극적 아이러니는 <빛의 제국>이 <광장>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스파이가 주인공이지만 30·40대 남성들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도 읽힌다(*나도 때론 내가 고정간첩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작가는 “과거를 잊고 평범한 일상을 지내다 하루아침에 소환명령을 받는 주인공은 언제든 세상으로부터 해고를 당할 수 있는 이 시대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어느 한순간 중심을 잃어버린 채 한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추락하는 것이다.

-<빛의 제국>은 계간 ‘문학동네’에 지난해 가을호까지 4차례 연재하다 중단했던 소설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만 제외하고 시점이나 구성을 완전히 바꿔 새로 썼다. 지난 겨울부터 칩거하면서 몸무게가 10㎏이나 빠질 정도로 작품에 열중했다.“착상이나 진행방향 등에 자신이 있었고, 쓰여져야 할 책이라는 확신도 컸다.”는 그는 “지금까지 작가로서 쌓아온 모든 역량을 총체적으로 쏟아부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작가 김영하의 모든 것이 담긴 야심작이라는 얘기다.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소설은 속도감 있고, 재밌게 잘 읽힌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희미해진다. 작가는 “다시 쓰여진 <광장>처럼 보이나 뒤로 갈수록 그 의미가 사라지도록 했다. 독자가 책을 읽은 뒤 안개 숲속을 즐겁게 헤맸다는 느낌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가장 잘 팔리는 한국 작가인 그의 신작은 벌써 해외 에이전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영문 시놉시스만 보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먼저 출간 제의를 해올 정도. 작가는 10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빛의 제국> 해외 출간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이순녀 기자)

국민일보(06. 08. 07) “찢어진 비닐봉지 같은 성장기”

-소설가 김인숙(43)은 요즘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다. 유학간 딸을 돌보기 위해서지만, 밥짓는 냄새나 오폐수 냄새가 진동하는 베이징의 뒷골목을 걷다보면 흘러간 시간들이 발에 툭툭 채인다. “어쩌다보니 중국에 살게 되었지만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는 반짝이는 목적 의식 같은 거는 없어요. 다만 글 쓰는 사람으로 무대를 옮겨서 살아보는 것이 나쁜 경험은 아닌 거 같아요. 자극도 되고요.”

-그의 새 장편소설 <봉지>(문학사상사)는 베이징의 뒷골목을 걸으면서 써내려간 소설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찢어지거나 채워지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한 여자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의 본명은 김봉희로 별명은 봉지. 17세 여학생때 봉희가 오빠의 싸움을 말리려다 자전거 체인에 이마를 맞아 열두 바늘이나 꿰매야 했던 일을 겪고나서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다.

-“봉지의 머리에는 구멍이 뚫여버렸다. 그녀의 생각,자신이 젖은 창호지에 뚫린 구멍 같다고 여겼던 상상은 그녀의 이마를 향해 날아오던 자전거 체인을 비키지 못한 순간에 현실이 되어 버렸다. 미세한 바늘이 촘촘히 기울 수 있었던 것은 찢어진 살뿐이었다. 구멍은 그대로 남았다.”(33쪽)

-봉희의 이마에 난 구멍은 일종의 성장통을 뜻하는데 소설은 봉희가 14년 전에 쓴 ‘김봉지의 자전소설’을 풀어놓는 형식으로 전개되면서 제재소집 날나리 친구 순미,읍내에서 제일가던 여자 깡패 가현,봉희가 좋아하는 운동권 대학생 진영,봉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동창 수호 등이 등장한다. 왜 이 소설을 썼는지, 로밍 서비스로 중계되는 국제전화를 통해 물었다. “바로 내 세대의 이야기지요. 참 오래전에 지나버린 시대같은데 내 안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들이 있지요. 무엇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오늘의 나를 이루었을까. 내 안의 그 시대, 내 안의 그들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등장인물들은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까지의 사회 혼란과 혼돈을 통과한다. YH사건, 부마항쟁, 12·12쿠데타, 광주사태, 학내 프락치 사건, 통금해제,프로야구 출범…. 봉지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을 때 바깥 세계 역시 거대한 구멍과 균열의 가운데에 있었다. 혼돈의 시대를 통과한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순미는 화려한 삶을 꿈꾸며 술집에 나가는 여대생이 됐고, 23세에 미혼모가 된 가현은 미용사로 성공했으며 간호사로 일하던 봉희는 병원에서 만난 약사와 결혼한다. 진영은 감옥에서 나온 후 유학을 갔다가 소설가가 되었고 수호는 작은 출판사에 취직한다.

-꿈은 작아지고 스러지지만 작가는 “작아지고 스러져가고 어긋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얘기한다. “몸속에 든 것이라고는 텅 빈 바람밖에 없던 비닐 봉지. 그 찢긴 봉지에 무엇이 담길 수 있었을까. 유년의 순진했던 기억들이 찢어진 자리로 흘러나간 후,봉지는 그 찢긴 자리 때문에 다시는 완전히 부풀어 오를 수 없었다. 그러나 존재는 그것의 비어있는 자리로부터 살아 있는 소리를 낸다.”(149쪽)

 

 

 



-소설은 쓸쓸한 삶의 풍경, 여전히 텅빈 봉지일 수밖에 없는 인생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숱한 상처를 지나왔지만 그 상처가 지나간 자리에 영광이 스며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지만 그 안에는 존재에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나름대로 절절했던 ‘완전한 순간’이 들어 있다. 작가는 그 순간들이 삶을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어놓는 삶의 불가해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녀는 다시는 그러한 순간을 갖지 못하리라는 것, 어떤 남자를 만나 어떤 사랑을 하더라도, 그런 순간의 느낌을 다시는 갖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완전한 사랑과는 다른 것, 말하자면 완전한 순간인 것이다.”(314쪽)(정철훈 전문기자)

06.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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