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생각한 것을 이 영화에서 맞닥뜨려지는 기분이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랑을 할까, 왜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잘 생기거나 예뻐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라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상대의 뭔가의 특징과 기능이 자신과 연관성이 있을 때 사랑은 증폭되지 않을까? 그런데 또 드는 생각은 그런 이유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 다시 말하면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온해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에게서 그것이 없다면 사랑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영혼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우긴다면, 그건 한창 달아오른 불같은 열정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확실히 불온한 존재다. 가끔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니까. 가장 흔한 예는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구한말 우리나라 가요사와 결합하여 나름 장대한 서사시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특별히 우리나라 가요에 있어서 잊힌 창법 정가를 복원했다. 아마도 이 정가는 이 영화에서 처음 접해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 기교가 얼핏 중국의 경극에 나오는 창법을 연상시킨다. 아니면 일본의 게이샤들이 불렀을 법한 창법이 혼합됐으려나? 아무튼 거기서 발전해 트로트가 탄생되기도 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배경은 가수 이난영이 한껏 자신의 존재를 드높이고 있을 때다. 그녀를 좋아해 따라하려는 당시의 가수지망생들과 조선 권번 출신 기생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랑도 시대를 잘 타고 나야하는 것일까? 점점 시들어져 가는 정가를 완벽히 구사하는 소율(한효주 분)과 당시 새로운 창법에 희망이 되는 연희(천우희 분)는 잘 나가는 권번의 둘도 없는 동무다. 이난영의 작곡자로 유명한 김윤우는 원래 소율을 사랑했다. 기교로 보나 기량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다. 그러나 말했다시피 정가는 지는 창법이고, 연희는 정가를 버리고 새로운 창법에 탁월한 기량을 뽐내며 그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다고 윤우는 연희의 노래에 매혹돼 결국 소율을 배신하고 만다.

 

윤우에게 배신당한 소율이 당시 일본 경무국장의 애첩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윤우와 연희에게 휘두르는데, 한을 품은 여인의 서릿발이 제법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 올린다. 이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연희는 소율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진 윤우를 찾으러 다친 몸으로 비오는 밤 소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다. 그때 소율이 빗속에서 외친다. 나에겐 아무도 없다고. 우정도 사랑도 다 네가 가져갔다고. 그러자 연희는 반박한다.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너 자신이라고.

 

보는 나는 그 지점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너를 그렇게 만든 건 너라닛! 그처럼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친구의 애인을 뺏어 놓고. 물론 그건 온전히 연희의 책임은 아닐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죽일 놈은 윤우인지도 모른다. 사랑할 땐 언제고 뭐 사랑할 사람이 없어 내 친구를 사랑하냐고,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하니까 재밌냐고, 내가 소율이라면 따져 묻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윤우와 연희가 조선을 떠나 이태리로 떠나려고 한 것을 알고, 그나마 일말의 동정심을 베풀려고 했으나 그 마음을 접은 채 연희를 더 어려운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그 비 오는 밤 일본 헌병의 총탄 세례를 받게 한다. 나중에 윤우 역시 석방되지만 연희의 뒤를 따른다.

 

이 영화는 굉장한 비극적 서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남자의 사랑의 배신이 한 여인을 얼마만한 불행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예의 없이 한 여인의 마음에 불쑥 들어와 놓고, 떠날 때 역시 예의 없이 떠났다. 소율이 원래 그렇게 냉혹한 여인이 아니었다. 떠날 때 미안하다. 그동안 행복했노라고 진심어린 말 한마디 했더라도 그렇게까지 불행을 자초했을까? 그게 나 아닌 내 친구였더라도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

 

그러나 사랑은 확실히 마법 같은 거다. 특히 소율과 윤우가 한창 좋았을 사랑은. 마법의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깨게 되어있다. 영원한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란 큰 과정 속에 사랑과 이별도 거쳐야만 할 과정은 아닌지? 우리 인간은 원래 사랑도 서툴지만 이별은 더 서툴다. 그래서 이별을 해 놓고 다시 사랑은 못할 것이라고 엄살을 떨기도 한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사랑을 했는지를 알면, 어떤 식으로 이별을 하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윤우의 사랑은 그렇게 차원이 높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소율도 연희도 누구하나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다. 사랑한 것이라면 그 두 여인의 재주를 사랑했을 뿐이다. 거기에 조선의 마음어쩌고 뇌까리는 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화 종반에 소율이 반쯤 미쳐서 윤우가 작곡한, 사랑, 거짓말이란 노래를 읊조리는 것은 진실이 되어버린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덕목을 많이 갖춘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던 우리나라의 잊힌 창법 정가를 복원했고, 당대의 음반계를 엿볼 수가 있으며, 무엇보다 여인의 심리를 충실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오늘 날 이기적이고 시크 함으로 무장한 도회적 여성상과는 대조적으로, 소박하고 부끄러움으로 애인에게 어필하고자 했던 여인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정말 20세기 초반의 모던한 여성들은 그랬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사랑과 우정 그로인한 냉혹과 배신 소율 역을 맡은 한효주는 별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냈다. 하루아침에 친구와 애인을 읽고 쓸쓸히 나이 들어간 소율의 캐릭터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노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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