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는 해를 삼켜 열매 맺는다
스코르타의 태양
로랑 고데 지음|김민정 옮김|문학세계사|319쪽|9400원
눈이 부신 소설이다. 2004년 공쿠르 문학상 수상작이란 후광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을 펼치자 마자 ‘뙤약볕에 땅이 쩍쩍 갈라지는 듯 했다’고 시작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돌덩이들이 고열에 시달리면서 신음하는 풍경 묘사가 눈을 자극한다. ‘때는 오후 2시, 땅은 화형에 처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울처럼 꼼짝도 않고 태양만 눈부시게 비춰내고 있는 바다’가 갑자기 망막을 가득 채운다. 그 바다는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해다.
이 소설의 무대는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에서 장화 뒷꿈치에 해당하는 폴리아 지방이다. 언덕길을 따라 다닥 다닥 붙어있는 하얀집들, 바닷가로 통하는 구불구불한 돌계단, 성당 정면을 향해 밀려드는 파도로 장식된 몬테푸치오가 주무대다. 187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친 스코르타 가문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스코르타 가문의 시조는 ‘시체와 노처녀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라고 한다. 강도질로 악명을 떨쳤던 한 사내가 15년 동안 옥살이를 한 뒤 고향에 돌아와 진정으로 연모했던 처녀를 찾아간다. 꿈에 그리던대로 그녀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돌세례를 받는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가 껴안았던 처녀가 원래 사랑했던 여자와 똑같이 생긴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운명에 침을 뱉으며 눈을 감는다. 그런데 그가 죽기 두 시간 전 사랑을 나눈 처녀의 뱃 속에는 이미 그가 뿌린 씨가 들어있었다. 그래서 ‘시체와 노처녀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가 등장하지만, 산모는 곧 세상을 뜬다.
그 아이는 자라서 ‘로코 스코르타 마스칼조네’란 악당이 된다. 로코는 그 아비보다 더 무서운 강도가 돼 돈을 긁어 모은다. 벙어리 여인과 결혼해 두 아들과 딸도 낳는다. 그는 어느날 신부를 찾아가 온 재산을 성당에 헌납하면서 자식들에게 한 푼도 남겨주지 않은 채 세상을 뜬다. 로코의 자식들은 그런 운명을 저주처럼 받아들이면서, 그 무게를 견디며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이 이 소설의 진짜 시작이다.
이 소설의 서술 양식은 중층 구조를 지니고 있다. 로코의 딸 카르멜라가 뒷날 임종을 맞아 신부에게 가족의 비밀을 1인칭 시점으로 고백하는 것과, 그 가족사를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서술하면서 이탈리아 현대사까지 중첩시키는 것이 교차된다. 원래 희곡을 썼던 작가 로랑 고데<사진>는 추리 형식까지 가미해서 가독성을 높인다. 시적 묘사와 극적 사건이 조화를 이룬 이 소설의 전언은 명쾌하다. 몬테푸치오의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새 열매를 맺는 올리브 나무처럼 인간은 운명의 시련 속에서도 가족을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 그래서 ‘인간도 올리브처럼 영원하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