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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ㅣ 문제적 인간 2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지음, 김태희 옮김 / 교양인 / 2006년 1월
평점 :
책이 두꺼워서 전체를 다루지는 못하고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했다.
1. 괴벨스의 성장과정
요제프 괴벨스는 1897년 독일 라이트의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이른바 ‘벨 에포크’(좋은 시대)로 독일 역시 한창 번성하고 있었다. 괴벨스의 아버지 프리츠 괴벨스의 하급 노동자로 시작해서 훗날 공장 지배인에까지 올랐다. 4살 무렵 괴벨스는 골수염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는데 그는 이 일을 유년기에 겪은 “삶의 방향을 결정지은 사건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이 장애는 괴벨스를 평생 따라다닌 열등감의 원천이었다. 괴벨스는 신체장애를 지식 분야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고 학업에 몰두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괴벨스의 부모는 이런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괴벨스가 17살이 되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독일인들은 전쟁을 열렬히 환영했고 괴벨스도 이에 호응해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괴벨스가 동급생들을 대표하여 낭독했던 졸업사는 그가 특히 자신의 내면 깊이 새겼던 그 세대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괴벨스는 청중들에게 격양된 목소리로 독일 민족은 이제 “스스로가 현재의 모습보다 더욱 위대하며, 세계의 정치적.정신적 지도자가 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 후 김나지움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괴벨스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인 다른 학생들과 달리 가난하게 생활해야 했으며, 학비도 가톨릭 단체에서 지원하는 대여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참된 민족공동체’를 믿었기에 1919년 독일의 패배에 큰 충격을 받은 괴벨스는 가톨릭 신앙을 버렸고, 뒤따른 극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세상을 향한 증오를 키워나갔으며, 점차 사회주의 사상으로 기울었다. 대학생활 중 괴벨스는 대부르주아 가문의 딸인 안카 슈탈헬름과 사귀었는데, 그녀와의 좌절된 사랑은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심어주었다. 1921년 괴벨스는 자신의 사회적 결손을 보상받기 위해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원하던 문필가가 아닌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물질주의에 대한 환멸만을 맛보았다. 절망적이었던 1923년에 쓴 소설 <<미하엘>>의 한 구절은 괴벨스가 이미 마음속에 히틀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두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대, 나의 힘차고 강력하며 불타는 믿음이여, 그대, 나의 동반자, 나의 길을 예비하는 자, 나의 벗, 나의 신이여!”
2. 괴벨스와 히틀러의 관계
괴벨스는 히틀러를 만나기도 전에 그에게 자신이 갈망하는 구원의 이념과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했다. 괴벨스는 나치당 출범 초기부터 최후의 순간까지(괴벨스는 히틀러가 자살했을 때 그의 곁을 지켰다) 히틀러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잃지 않았고,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히틀러에게 충성했으며, 언제나 히틀러를 바라보며 일했다. 괴벨스는 정부 참여를 통한 합법화 노선, 돌격대 처리 문제, 선전의 방향 등 크고 작은 정책에 대한 입장이 히틀러와 다른 경우가 많았지만 총통이 명령하면 언제나 군말 없이 복종했다. 20년이 넘는 히틀러와 괴벨스의 관계에서 나치의 마지막 몇 년을 제외하면 항상 히틀러가 일방적으로 괴벨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히틀러는 괴벨스의 선전선동 능력과 자신을 향한 뜨거운 충성심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그를 베를린 관구장, 나치당선전책, 제국의회의원, 제국선전장관 등 요직에 기용하여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히틀러는 계산된 애정으로 괴벨스의 끝없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절적히 채워주면서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히틀러는 괴벨스의 집에 자주 들렀고, 괴벨스의 부인 마그다와도 매우 친한 사이였으며, 자신을 ‘아돌프 아저씨’라고 부르는 괴벨스의 여섯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었다.
3. 나치당 내 권력투쟁
나치 운동은 피비린내 나는 내부 권력투쟁을 동반했고, 그 과정에서 괴벨스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자신의 결핍을 언제나 과잉보상 받으려 했던 괴벨스는 더 많은 권력과 총통의 신임을 얻기 위해 투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히틀러가 의도적으로 ‘분열을 통한 통치’를 추구한 나치당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적수를 밟고 올라서는 수밖에 없었다. 요직에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강한 권력욕을 보였던 괴벨스는 많은 나치당 간부 및 정부 고위 관료들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제국원수 괴링, 친위대장 힘러, 동부 점령지역 장관 로젠베르크, 외무장관 리벤트로프, 니더바이에른 관구장 그레고어 슈트라서 등 쟁쟁한 인사들이 괴벨스의 경쟁자들이었다. 물론 이들이 서로 공격만 일삼은 것은 아니었다. 원수처럼 지내다가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기민하게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권력투쟁은 멈춘 적이 없었다(심지어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멸망이 코앞에 닥친 1945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에도 정적들을 공격했다). 특히 괴벨스는 결과가 나쁘면 항상 그 원인을 다른 이들에게 돌렸는데, 책임회피는 괴벨스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4. 괴벨스의 선전선동
제국선전장관 괴벨스를 다룬 평전을 읽기 전에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었다. 원제가 Geobbels인 책에 ‘대중 선동의 심리학’까지 덧붙였으니 이런 기대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저자는 나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밝혔다.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엄청난 분량이어서 이러한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문제들을 일부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선전기구의 조직 구조나 선전 활동 자체에 대한 문제가 그러하다.” “나는 요제프 괴벨스의 삶...을 자료에 기초하여 서술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저자가 말한 자료 중에서 이 책의 중심뼈대를 이루는 것은 괴벨스가 기록한 일기이다. 괴벨스는 자신의 주요 업무였던 선전선동을 소홀히 기록하지 않았고, 이 책 역시 그러하다. 그렇지만 시간 순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선전선동을 따로 떼어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지 않으며, 주로 괴벨스를 비롯한 나치 지도부의 관점에서만 선동선동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대중 선동의 심리학’에 걸맞은 설명, 즉 노동자, 청소년, 여성 등 대중들이 나치가 펼친 선전선동 활동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미흡하다. 오히려 이 책은 ‘대중 선동의 심리학’을 주도한 괴벨스 자신의 심리 상태를 섬뜩할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당시 독일 국민들이 보인 반응을 알기 위해서는 독자 자신이 그 시대 속으로 몸을 담그고 상상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는 괴벨스의 일기, 연설문, 선전문 등을 읽으면서(열광하는 대중 속에서 괴벨스의 연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더라면 반응이 몇 십 배로 강해졌을 것이다) 감정이 꿈틀대는 것(유쾌한 감정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혀둔다)을 여러 번 느꼈다.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괴벨스의 레토릭에는 감정을 건드리고 의지를 북돋우는 측면이 있음을 확인했다.
5. 괴벨스의 심리
괴벨스는 인간과 세상을 향한 증오에서 힘을 길어 올렸다. 그가 1919년에서 1920년으로 넘어갈 무렵 쓴 단편 극본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한 구절을 이를 잘 나타낸다. “그러나 저는 미워할 능력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이 제게 내려주었기에 제게 속하는 것들을 빼앗아가는 자들 모두를 증오합니다... 오, 저는 증오할 줄 알며 이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증오할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1921년 가을 괴벨스는 낭만주의 극작가 빌헬름 슈츠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면서 “끊임없이 세계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힘으로서의 인간 의지가 최우선에 놓여야 함을 주장한”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의지의 힘’을 신봉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 궁핍하게 살아야 했던 괴벨스는 특히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가진 자들이 경제 위기를 이용해 굶주린 자들의 재산을 긁어모으는 것을 보고 물질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너희들은 자본 투자라고 말하지. 그러나 그런 그럴듯한 말 뒤에는 더 많은 돈을 모으려는 짐승 같은 허기만이 있을 뿐이다. ‘짐승 같은’이라고 말했지만 이 표현은 짐승에 대한 모욕이다. 왜냐하면 짐승은 배가 부르면 먹기를 그치기 때문이다.” 괴벨스의 이런 반(反)자본주의적 성향은 훗날 히틀러의 자본주의 노선과 갈등을 빚었다. 괴벨스는 1921년에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을 읽으면서 ‘유대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괴벨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스튜어트 체임벌린이었다. 괴벨스는 훗날 체임벌린을 만나고 나서 그가 ‘선구자’이자 ‘예비자’, 그리고 ‘우리 정신의 아버지’라고 일기에 열광적으로 썼다. 체임벌린은 아리안 종족이 ‘지배 인종’이며 물질주의적 시대정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종족으로 선택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먼저 인종의 ‘순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고귀한 인종이 물질주의라는 유대적 도그마 때문에 영원히 영혼을 잃고 ‘밝음을 추구하는 종족’으로부터 추방”되기 때문이었다. 이제 괴벨스는 세상의 모든 악덕의 책임이 유대인에게 있다고 보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혹은 괴벨스가 나중에 말하는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와 증권거래소’는 공통의 목표를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 모든 민족적 지배를 완벽하게 쓸어내고, 모든 경제를 오직 하나의 지배에, 즉 유대인 증권 자본의 손아귀에 넣는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타락시키고 독일 민족을 억누르는 유대인은 ‘의지의 힘’으로 ‘제거’해야 했다.
6. 기타
체계적인 분석이 없을 뿐이지 이 책에서 다루는 괴벨스의 선전선동은 서평으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방대하다. 물론 이 책의 초점은 저자의 말처럼 ‘괴벨스의 삶’에 맞추어져 있다. 괴벨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치당 간부들의 행적도 엿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긴 부분은 거의 없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친절한 주’ 덕분이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번역과 편집도 잘 되었다.
7. 곁다리
읽으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1938년 괴벨스는 부인 마그다에게 영화배우인 자신의 연인 바로바와 함께 셋이서 결혼생활을 하자고 말했다. 마그다는 폭발했고 참을 수 없는 그 상황을 끝내려고 히틀러에게로 갔다. 히틀러는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마그다를 나치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의 전형으로 생각했고, 그녀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히틀러가 자살 전날에야 결혼했기 때문에 마그다는 독일 제국의 퍼스트레이디나 마찬가지였다. 히틀러는 괴벨스는 당장 불러들여 그에게 의무를 일깨우고 바로바와 당장 헤어지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리고 괴벨스의 정치 이력을 마그다와 결혼을 유지하는 것과 결부시켰다. 즉 만일 마그다가 괴벨스와 결혼을 유지하지 않으려 한다면 괴벨스는 직책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괴벨스는 바로바와 헤어졌고, 한동안 저자세로 마그다를 대해야 했다. 히틀러는 부부 불화의 해결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P.S - 서평단으로 뽑혀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