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드는 돈 되는 이야기] 위폐범은 잘못 만들어야 산다?
23년 만에 돈이 바뀌었다.
지난 2일 5000원 신권이 처음 유통됐고 1000원 신권도 도안이 공개됐다.
미국 지폐가 1928년 이후 지금까지 거의 바뀌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그리 오래 기다린 건 아니다.
새해 모든 가정에 “돈 많이 굴러 들어오라고”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한 다발 묶었다.
새 화폐의 소심한 변신
▲ 내년 초 발행될 1000원 신권 | |
5000원 신권은 새로 추가된 위조방지장치만 8가지(기존장치 5개)로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앞뒤에 5개씩 숨은 미세문자(‘5000 WON’ ‘BANK OF KOREA’)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디자인은 소심하게 변했다. 율곡 이이 선생은 그대로, 뒷면에 펼쳐졌던 오죽헌(율곡선생의 출생지)은 앞으로 왔다. 뒷면엔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수박과 맨드라미)’가 새로 삽입됐다. 한국은행 발권국 박운섭 차장은 “여성·독립지사·과학자 등 다양한 인사를 넣자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부분적으로 반영해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그림을 넣었다”고 했다. 내년 초 발행될 1000원권은 성균관 내 명륜당을 넣어 ‘교육’을 강조하고 함께 나올 1만원권에는 세종대왕이 발명한 ‘혼천의’를 넣어 ‘과학’과 연결시킬 것이라고 한다.
▲ 위부터 순서대로 ①현대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그려진 스위스 10프랑. ②샛노란 해바라기가 그려진 네덜란드 50길더. 유로화 등장 이후 사용금지. ③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폐 중 단위가 가장 큰 루마니아 50만레우. ④남아공 화폐의 주인공은 표범·사자·코뿔소 등 동물이다. 물소가 그려진 100랜드. | |
화폐 자체가 예술품
신권에 대해 “은행놀이 장난감같다” “퇴계선생이 졸려 보인다” 등 말들이 많다. 한국조폐공사에서 폐쇄적으로 디자인을 끝내 여론의 검증을 받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화폐도 예술품’이라고 평가 받는 디자인 강국 스위스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장 갖고 싶은 화폐로 꼽힌다. 색이 묘하게 섞여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난 네덜란드 화폐도 인기다. 남아공 화폐엔 표범·코끼리·물소 같은 짐승이 사람을 제치고 들어가 있다. 1.5t에 이르는 세계 화폐를 수집해온 배원준(제일은행 과장)씨는 “외국인에겐 돈도 하나의 상품인데 이번 신권은‘모으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기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100억짜리 화폐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단위가 큰 화폐는 얼마일까? 화폐수집가 배원준씨는 “루마니아의 ‘50만레우’가 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폐 중엔 가장 큰 숫자”라고 말했다. 역대 최고단위였던 화폐는 0이 10개 들어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100억짜리 디나르. 화폐개혁 이후 현재는 유통되지 않는다. 몸값(화폐가치)이 가장 높은 지폐는 싱가포르의 ‘1만달러’(약600만원)다. 서태석 외환은행 부장은 “미국·서유럽 등 선진국은 경제성장할 때 화폐 발행을 통제해 화폐가치를 높였지만 아시아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고액화폐를 계속 만들어 단위가 커졌다”고 말했다. 환율은 쿠웨이트가 1디나르에 3200~3300원으로 가장 높다.
잘못 만들어야 좋다?
조폐공사도 실수를 한다. 화폐 규격에 맞지 않는 좀 ‘모자란 돈’을 찍어낼 때가 있다. 비스듬히 비추면 나타나는 그림인 ‘음화’가 없거나, 발행번호 하나가 안 찍혔거나, 직인이 빠졌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돈이 시중에 유통되면 오히려 값이 비싸진다. 정부가 국가적인 망신을 줄이기 위해 고액에 사들여 회수하기 때문이다. 경매인들은 그래서 흠이 있는 5000원짜리 지폐를 수백만원에 사들이기도 한다. ‘잘못 만들어야 좋다’는 법칙은 지폐 위조범에게도 통한다. 똑같이 위조할수록 형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 위폐감별 전문가인 서태석 외환은행 부장은 “위조범들은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어도 처벌을 대비해 ‘얼굴’ ‘입자’ ‘마크’ 등 부분적인 특징을 일부러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