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대한민국 ‘라이프 트렌드’는?


지난 1년, 당신의 생활은 무엇이 지배했고 어떻게 달라졌는가. 학계에선 올해의 사자성어로 ‘上火下澤’(상화하택·위에는 불 아래는 못)을 꼽았지만, 우리네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2005년 거리에서, 시장에서, 또 주방에서 살에 부대끼고 혀에 감겼던 ‘우리’의 생활 트렌드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일보 생활팀이 ‘청(淸)·흑(黑)·귀(歸)·선(善)’이라는 4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2005년은 중국산 장어와 양식 민물고기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고 기생충알 김치 파동이 불거지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해보다 높아진 한 해였다. 많은 주부들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김장용 절임배추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집안 청소 분야에서도 혁명적인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물걸레질을 대체해 주는 스팀청소기를 4가구당 1가구꼴(26.7%·한국갤럽 9월 조사)로 보유하게 된 것. 특히 전체 스팀청소기 시장의 46.3%를 장악한 한경희 스팀청소기는 지난 해 150억원에서 올해 1000억원(공장도가 기준)으로 매출이 껑충 뛰면서 ‘대한민국 대표 청소기’로 부상했다.

새집증후군, 아토피 피부염은 실내공기에 대한 경계를 고조시켰다. 환경벽지, 환경바닥재, 공기정화 식물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었으며, 12월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된 이후 실내 정원 가꾸기가 확산되는 추세다.

올 초 뉴욕·밀라노 등 세계적인 컬렉션에서 불기 시작한 블랙 열풍은 검정색 원피스, 러시안풍 검정 벨벳 재킷 등으로 구체화돼 올 가을·겨울 한국 패션업계를 휩쓸었다. 헤어스타일도 브라운이나 금발 염색이 자취를 감추었고, 안경도 검정색 뿔테가 대세를 이뤘다. 화려한 프린트로 상징되던 ‘메트로섹슈얼’이 저물고 편안하고 실용적인 ‘위버 섹슈얼’이 뜨면서, 남성 패션에도 미니멀한 블랙 패션이 유행했다.

한동안 풍미했던 실버 컬러의 휴대전화도 올해 일제히 블랙으로 돌아섰다. 삼성전자의 ‘블루블랙폰’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모토로라의 검은색 ‘레이저폰’과 맞붙었으며, LG전자는 ‘싸이언 블랙 라벨’ 시리즈의 첫 탄 ‘초콜릿폰’으로 뒤늦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5월 출시된 LG전자의 검정색 트롬 세탁기를 비롯해, ‘백색가전’으로 불리던 가전 분야에도 고급스러운 블랙컬러가 대두했다. 식품분야에선 건강에 좋다는 검은콩·검은깨·다시마 등의 블랙푸드가 여전히 인기를 누렸다.

히피 패션이 돌아 왔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자유분방한 히피 패션은 우마 서먼이 입었던 ‘티어드 스커트(일명 캉캉 스커트)’를 앞세워 올여름 동대문을 장악했고, 굵은 패브릭 머리띠, 긴 상의 등과 함께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굵직굵직한 원석 목걸이, 큼직한 가죽가방 등도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몰아내고 한동안 득세했다.

2004년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사그라졌던 만두업계도 올해 식탁 컴백에 성공했다. 지난해 100억원 이상의 손해를 본 ‘취영루’는 매출을 약 90% 회복했다. ‘업그레이드 만두’가 회복세를 주도했다. 샤오롱바오로 유명한 상하이식 만두 전문점 ‘딘타이펑’은 7월 명동에 상륙한 이후 지금까지 4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미스터 차우’·‘공을기’ 등에서도 샤오롱바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모델 홍진경이 지난 16일 론칭한 ‘더 만두’ 8종세트는 홈쇼핑 방영 후 1만세트가 팔려나갔다.

뷰티업계에선 늙기를 거부하고(안티에이징), 탱탱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욕망이 눈에 띈 한 해였다. ‘DHC 코엔자임 Q10크림’으로 시작해, 화장품 및 식음료업계에까지 피부 탄력을 강화하고 노화를 막아 준다는 다양한 코엔자임Q10 제품군이 출현했다.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파키스탄 강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던 2005년, ‘자선’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패션이자 트렌드가 됐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것이 ‘자선 팔찌’. 미국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이 암환자 재단 기금마련을 위해 만든 1달러짜리 ‘리브 스트롱(Live Strong)’ 자선팔찌는 국내 연예인들이 앞장서 착용하면서 시중에서 4000~1만원에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벤치마킹한 국내 사랑의전화 복지재단의 ‘비 프렌드(B’ Friend)’ 팔찌, 지구촌 빈곤퇴치 시민네트워크의 ‘엔드 포버티(End Poverty)’ 팔찌도 여름내 젊은이들의 팔목을 휘감았다.

부모님 발 닦아 드리기, 은사님 찾아 뵙기 등의 실천을 통해 ‘베푸는 삶이 곧 나 자신을 위한 삶’임을 설득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청담동에 둥지를 튼 ‘아현 메디테이션 컬처’를 비롯해 명상·요가 카페, 명상 서적들이 제기하는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올 한해 도시 젊은이들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자연기자 achim@chosun.com
이덕진 여성조선기자 dukjiny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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