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빛나는 그림자를 찾아서
'도스또예프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삶에 대한 왈가왈부는 글쓰기의 영원한 주제다. 예술가를 다룬 전기(傳記)는 삶과 작품을 겹쳐 떠들 수 있기 때문에 그 재미가 증폭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스스로 빛나는 것을 주저하며 눈부신 작품 뒤에 그림자로만 남기를 희망하지만, 세상의 눈과 혀는 집요하게 그 어둠을 파고든다.
먼저, 발바닥에 의존하여 뒤지기.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예술가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보면, 하루에 열여섯 시간 이상 작업하는 발자크에게 한 번 놀라고, 발자크가 남긴 글을 교정본 하나하나까지 샅샅이 훑는 츠바이크의 끈기와 자료소화력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리고, 기억에 의존하여 돌아보기. 일정 기간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한 이들의 회고를 통하여 창작의 산실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어둠 속에서 홀로 돌을 깎는 로댕의 모습은 릴케가 그의 개인비서였기에 묘사할 수 있었고, 죽어가는 모리의 유머와 통찰을 화요일마다 담는 일도 미치 앨봄이 그의 제자였기에 가능했다.
▲ 김탁환·소설가 | |
예술가의 아내라고 해서 비서나 제자보다 회고의 밀도가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또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가가 더욱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스또예프스키의 아내 안나의 회고는 대가의 자잘한 일상과 치열한 창작활동을 동시에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속기사인 안나는 도스또예프스키가 구술한 소설 〈도박꾼〉을 옮겨 치고 정서하며 사랑을 싹틔웠고, 청혼을 받아들인 후 같은 방식으로 〈죄와 벌〉을 마무리했다. 말년 대작을 읽은 최초의 독자이면서 이야기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함께 분석하고 논한 비평가이기도 했다.
기억에 의존한 글쓰기는 두 가지 약점을 지닌다. 하나는 기억의 부정확함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안나도 신문이나 편지로 흐릿한 기억의 순간들을 확인한다. 또 하나는 기억하는 대상에 대한 지나친 애정이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 자신이 만들어가고 있는 문장의 주어에 대한 집착이 어우러져 일방적인 편들기와 비판의 부재를 낳는다. 안나 역시 남편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마음을 흔드는 장면이 많다. 남편이 ‘사람의 소리라 할 수 없는 울부짖음’을 토할 때마다 몸서리치도록 무서웠다고 회고하는 대목에서, 나는 안나만의 특별한 운명을 본다. 육체적 고통과 창작의 고통을 토로하는 소설가 곁에 그림자처럼 머무는 것이 어디 쉬운가. 그녀는 홀로 지샌 번민과 상처의 밤에 남편의 소설만이 위로이자 구원이었다고 주장한다. 허나 내게는 이 두툼한 회고록이야말로, 몸서리치도록 무서웠던 순간에도 당당히 나아가 떨고 있는 소설가를 부둥켜안은 그림자의 빛나는 후일담이자, 삶으로 빚을 수 있는 단 한 권의 뜨거움으로 다가온다.
김탁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