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울린 '슬픈 재앙의 악보'


프랑스 조곡
이렌 네미로프스키 지음|이상해 옮김|문학세계사|544쪽|1만3000원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2004년 겨울 프랑스 문단의 최대 화제작은 소설 ‘프랑스 조곡(組曲)’(suite francaise)이었다. 바흐의 ‘프랑스 조곡’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지만, 바흐의 달콤한 음악과는 달리 이 소설은 ‘슬픈 재앙의 악보’라는 평을 받았다.

프랑스 문학상 중에서 공쿠르상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르노도상 심사위원들은 ‘프랑스 조곡’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언론은 깜짝 놀랐다. 이 소설을 쓴 유태인 여성 작가 이렌 네미로프스키가 기자 회견장에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03년 키예프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를 비롯해 7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던 그녀는 1930년대 프랑스 문단에서 각광받는 샛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1942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르노도상 심사위원들은 생존 작가에게만 주는 문학상의 관례를 깨고 작가 사후 62년 만에 출간된 ‘프랑스 조곡’을 수상작으로 뽑았던 것이다.

프랑스 문학 전문 번역가 이상해씨가 옮긴 ‘프랑스 조곡’의 작가 네미로프스키는 나치의 유태인 박해가 강화되는 와중에 죽음을 예상한 1941년부터 1년 동안 이 소설을 썼지만, 끝내 탈고하지 못한 채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녀의 남편도 곧이어 수용소에서 죽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두 딸 드니즈(13살)와 엘리자베스(5살)가 살아남아 나치의 지시를 받는 프랑스 헌병의 추격을 피했다. 큰 딸 드니즈는 긴박한 도주 과정에서도 엄마의 원고가 든 가방을 챙겼다.


전쟁이 끝나자 그녀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들이 돌아오는 파리의 동부역에 매일 나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엄마를 찾았다. 그녀는 엄마가 남긴 원고를 읽는 것이 고통스러워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녀는 오랜 세월이 흘러 뒤늦게 엄마의 소설을 출간해 마침내 프랑스 독자들을 울렸다. 유태인의 고통을 외면했던 프랑스의 치부를 또 다시 환기시켰던 것이다.

“붉은 태양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떠올랐다. 대포 한 발이 발사됐다. 가장 높은 곳에는 평소 볼 수 없었던 거대한 검은 새들이 붉은 태양 아래 이슬에 젖은 날개를 펼친 채 날고 있었고....”

‘프랑스 조곡’은 독일군의 파리 점령을 앞둔 시점부터 전쟁의 일상을 회화적 문체로 세밀하게 기록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 군상을 묘사한다. 특히 전쟁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치욕스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물욕을 버리지 않는 부자들, 가족과 함께 피난을 가기 위해 사랑했던 정부(情婦)를 외면하는 남자들, 고아들을 구하려다가 오히려 그들 손에 살해 당하는 성직자, 시어머니 앞에서 며느리를 유혹하는 독일군 장교 등등이 전쟁의 광기를 반영한다.

남성 작가의 전쟁 소설이 역사적 서사에 치중한다면, 여성 작가는 일상과 내면 묘사에 충실하면서 개인화된 전쟁을 잘 그려낸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원래 베토벤의 교항곡과 같은 5부작 대하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중도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직접 겪은 역사적 사건의 전달에 충실하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간 초상을 담은 거대한 벽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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