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파라’‘엔젤카페’… 구보씨와 산책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조이담·박태원 지음 | 바람구두 | 288쪽 | 1만원
서울토박이 박태원(1909~1986)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것은 1934년 8월. 스물여섯 살의 구보씨가 오전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경성 시내를 돌아다닌 형식의 이 소설은 1930년대 경성의 속살을 소개한 명작으로 손꼽힌다. 서울대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한 조이담(38)씨는 서울토박이였던 월북작가 박태원의 이 소설을 통해 20세기 전반 식민지 경성의 도시문화를 독특한 방식으로 안내한다.
두 부분으로 나뉜 이 책의 1부 ‘경성만보객―신 박태원전’은 1919년부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나오기 직전인 1934년까지 경성을 무대로 조이담씨가 쓴 실명소설. 1919년 열 살의 나이에 경성사범대학 부속보통학교에 입학한 박태원은 청계천변 다옥정 집에서 광교를 건너 종로 네거리와 공평동 길을 거쳐 학교까지 통학했다. 그의 성장 과정을 담은 소설에는 경성의전 출신으로 3·1운동에 앞장섰고 나중에는 조선공산당 핵심인물이 된 한위건과 그의 아내인 의사 이요덕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등장한다. 이서구가 잡지 ‘삼천리’(1935년 11월호)에서 ‘호박색 윤이 흐르는 흰 살결, 붉으레 타오르는 입술, 정열적인 눈’으로 묘사, 경성 최고의 미인으로 쳤던 이가 바로 이요덕이다. 여기에 이광수와 윤치호, 윤심덕, 이상 등 당대의 유명인사와 한위건과 앙숙이었던 ‘아리랑’의 김산까지 출연한다. 명월관과 태화관을 운영했던 안순환이 1920년 12월 세 번째로 개업한 장안 최고의 요릿집 식도원과 경성 멋쟁이들이 출입하던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정원 등 경성의 명소가 소개된다.

▲ 구보씨의 집부근에 있는 광교로 올라가는 광통관 길. | |
2부‘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박태원 원작 소설의 등장인물과 사건은 물론 구보씨의 산책 경로와 장소, 건물에 대한 주석을 상세하게 달았다. 소설보다 각주의 분량이 더 넘치는 파격적 형식.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더블린을, 발터 벤야민과 함께 파리를 거닐 듯, 경성 만보객 구보씨를 통해 70년 전 경성의 구석구석을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구보씨 댁 ‘다옥정 7번지’의 박태원 방은 “들창을 통해 청계천 빨래터에서 아낙들이 빨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다리를 건너 찾아온 이상과 같은 친구들이 바깥에서 그를 불러낼 수 있는 곳에 있었다”고 썼다. 박태원 집터의 3분의 2는 현재 재개발된 청계천에, 3분의 1은 남측 산책로 및 도로에 걸쳐 있다고 소개한다.
박태원이 이상과 자주 찾았다는 소공동의 ‘낙랑파라’는 한국인이 운영한 최초의 커피 다방으로 알려져 있다. 동경미술대학 도안과를 나온 주인 이순석이 1층에선 다방을 운영하고, 2층은 아틀리에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선 문학의 밤이나 전람회 행사가 자주 열렸다. 저자는 박태원이 ‘낙랑파라’를 나와 이상이 운영했던 종로의 ‘제비다방’까지 가는 1.3㎞ 노선까지 지도에 담아낸다. 책 말미 박태원과 이상이 ‘낙랑파라’에서 남대문로를 통해 종로의 ‘엔젤카페’에 이르는 산책길 정경을 당시의 엽서와 사진, 지도를 통해 재현하는 대목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