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품은 사랑의 피어린 절규를…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에게 ‘사랑’은 금기어다. 지하에서 펴내는 시집에는 이런 피어린 절규가 담기지 않을 수 없다. “손을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우리 함께 초원에 숨어요/ 사랑하거나 칼 아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사랑을 나누다 들키면 죽음이다. 사랑은 칼을 품는다. 이슬람 율법은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동시에 비정하다. 그녀들은 란다이(landay)라고 불리는 시를 읊는다. 란다이는 “비명이나 칼로 찌르는 것처럼” 짧고 율동적이란 뜻이다. 여자들은 묻는 말에 대답하거나 요리를 칭찬하는 말에 답례를 표하기는 하지만, 외방인 앞에서 절대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법은 없다. 비명 같은 삶이란….
우리가 지구 한 켠을 생각하면서 여기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오로지 객관적이고 싶어서다. 일종의 균형 잡힌 몰입을 위해서다. 이 책의 저자는 노르웨이 출신 여성 종군기자(35세)다. 2001년에 9·11 테러가 있고, 그해 10월 미국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테러 비호세력으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공습을 때린다. 2002년 봄 사이에르스타드는 카불에서 책장수로 살아가는 술탄 칸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무른다. 이 책은 그때 목격한 것들을 소설로 쓴 것이다.
이 소설은 정치적 격변과 국가적 재건, 그리고 근본주의 이슬람 문화 밑에서 학대 받는 여성 문제, 빈곤 문제를 소설 형식으로 묘사한다. 폐허가 된 카불에 방 4칸짜리 아파트에서 술탄 칸은 홀어머니와 두 아내, 그리고 다섯 아이, 동생들, 사촌들 두어 명을 데리고 산다. 십여 명의 가족이다. 가혹한 시련은 현재 진행형 삶이다. 일하고, 돈을 모으고, 저잣거리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혼례 준비와 혼례 치르기를 하고, 경찰서와 감옥을 왕래하며 갈등하고, 기쁨하고, 슬퍼한다.

▲ 카불의 어느 찻집 벽에 쓰여 있다는‘미고자라드!’(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어린 계집애의 얼굴 같은 밝은 희망이 찾아올 것이다. | |
국민의 4분의 3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책장수의 가족이란 원래가 드문 경우다. 주인공 술탄 칸은 30여 년간 서적 판매업에 종사했다. 무엇보다 문학과 책을 사랑한다. 공산주의자, 무자헤딘, 탈레반 같은 여러 정권의 하수인들은 차례로 쳐들어와서 책을 불태운다. 자신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곤 했다. 그러나 책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는다. 책을 숨기고, 감옥을 살아나오고, 서점을 다시 세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출판하려고 하고, 부르카를 감옥이라 규정하며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술탄 칸은 집안에서는 가장 억압적인 또 다른 가부장일 뿐이다. 전통의 고수와 근대화 사이에 끊임없이 혼란을 겪어온 그들의 역사는 멀지 않은 과거에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마치 증기탕에서 부르카를 뒤집어 쓴 느낌이다. 부르카가 얼마나 머리를 죄고 두통을 일으키는지, 얼마나 밀폐된 공간인지, 얼마나 공기가 부족한지, 얼마나 금방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는지, 앞을 막은 나일론 천이 얼마나 촘촘한지, 그래서 자기 입냄새를 자기가 맡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얘기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 청년이 탈레반 치하에서 친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아프간을 찾는 내용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란 책에 필적한다.(※1996년9월 탈레반은 연날리기를 금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