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맹]"이래도 당신의 선택을 확신하나요?"


자기가 고르지 않은 사진 받고도 90%이상이 바뀐 것 바로 못알아채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정보 뇌에서 일부만 인식하기 때문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

바나나를 달랬는데 사과를 받았다면?

모두들 ‘잘못됐다. 바나나를 달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바나나 대신 사과를 받고도 잘못됐는지 알 지 못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더구나 왜 사과를 원했는지 설명까지 하며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는 결과도 덧붙여진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대로 결과를 얻지 못해도 이를 인식 못하는 상태를 ‘선택맹(選擇盲, choice blindness)’으로 부른다.

스웨덴 룬트대 라르스 할 교수와 미 뉴욕대 안드레아스 올슨 교수 연구팀은 120명을 대상으로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더 매력 있다고 느끼는 사진을 선택하도록 했다. 연구팀은 한 명당 15번에 걸쳐 선택한 사진을 건네주고 확인하게 했다. 핵심은 실험 중 3번은 선택하지 않은 사진을 건네줬다는 점이다.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사진이 바뀐 것을 금방 알아챈 사람은 10%도 안됐다는 점. 연구팀이 ‘건네준 사진이 선택한 사진과 맞는지 다시 확인해보라’고 했을 때도 그 수가 20%를 넘지 않았다. 연구팀은 사진을 바꿔치기한 다음 왜 이 사진을 골랐는지를 설명하게 했다. 이 경우 85%가 “얼굴이 빛난다. 귀걸이가 너무 맘에 든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연구팀은 ‘사이언스’ 7일자 발표논문에서 “인간은 늘 의사결정을 하지만 그 과정이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며 “선택맹은 인간의 선택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주관적 관념을 연구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선택맹은 심리학의 ‘변화맹(變化盲, change blindness)’, 즉 인간이 주변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의 한 예다. 미 일리노이대 대니얼 시몬스 교수와 밴더빌트대 대니얼 레빈 교수는 대학 캠퍼스에서 피실험자에게 낯선 사람이 길을 묻게 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나무판을 든 사람들이 지나가게 했다. 그 사이 길을 묻던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피실험자의 절반은 그 전과 키·목소리·옷차림이 달라진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또 시몬스 교수와 하버드대의 크리스토퍼 채브리스 교수팀은 학생들에게 농구경기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며 패스를 몇 번씩 했는지를 세게 했다. 연구팀은 경기 도중 고릴라 복장을 한 여성이 선수들 사이에 들어가 가슴을 치고 카메라를 쳐다보며 9초 동안 머무르게 했다.


그런데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고릴라를 전혀 못봤다고 답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김민식 교수는 “변화맹은 인간이 받아들인 모든 정보를 다 인지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에 대해 특정한 정보를 기준으로 인지하게 된다.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정보 중 일부만 뇌에서 인지하는 이른바 ‘선택적 주의’ 현상이다. 김 교수는 “범죄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법정진술이 늘 옳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목격자도 자신이 주의를 기울인 정보는 자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정보는 뇌에서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진술을 할 수 있다는 것. 선현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모두 믿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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