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 살면서 괴로운 나라, 죽을 때 비참한 나라
윤영호 지음 / 엘도라도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좀 극단적이란 생각을 했다.
한국도 이제 살만해졌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적어도 예전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 살만해졌다는 것은 또 무엇을 근간으로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는 따져 볼 일이다. 예전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면 적어도 요즘엔 굶어 죽는 사람은 없으니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잘 먹고, 잘 살기도 해야겠지만 잘 죽기도 해야한다. 
바로 이 책은 우리나라가 그동안 얼마나 잘 죽게 되었는가에 대한 보고서로 읽힌다. 
물론 책을 읽어보면 웰다잉, 즉 잘 죽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은 다소 멀어보인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온 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

한국도 동양에 속한 나리고, 동양은 특히 서양에 비해 죽음에 대한 사관이 긍정적이지가 못하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연명치료에 의존하는 일이 많고, 의식적으로 죽음을 밀어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다고 해서 죽음이 우리 곁은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죽음이 우리를 잠식해 버린다.
청년 때 노후를 대비해야 하고, 부자일 때 가난하게 될지도 모를 때를 대비해서 재산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우린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 죽음을 대비해야 한다. 이것을 대비하지 못해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우린 얼마나 많이 보는가?
가족 중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실의에 빠져 우울증에 시달리고, 같이 따라 죽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언제까지 죽음에 대해 쉬쉬하고, 밀어만 둘 것인가? 이제는 죽음에 대해 말할 때다. 

슬픔도 익숙해지면 견딜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가족이나 친척 중 전장이나 피난길에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될까? 그땐 죽는 일이 다반사여서 산 사람의 눈에선 눈물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죽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인가? 
더구나 책에 씌여진 대로, 예전엔 집에서 죽음을 맞은 경우가 많아 자녀들은 물론이고, 손자들도 죽음을 보게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린 손자가 죽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고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아이들은 삶만을 생각하지 죽음은 생각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내 나이 26살이 될 때까지 죽음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그 나이되도록 죽음을 목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름 안도와 뭔지 모를 감사함을 가지고 살았다. 누군가의 임종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일까를 생각하면 이 익숙치 않은 것을 할 수만 있다면 길게 유예받고 싶었다. 하지만 내 나이 26살 때 맞닥트려야만 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슬프기도 하지만 충격적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버지를 잃어버린 수가 있을까? 더구나 나는 신앙을 가졌음에도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낫게 되기만을 기도했지, 아버지의 남은 삶의 나나을 위해 또는 고통을 위해 기도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런 방비없이 맞은 아버지의 죽음은 생각했던 것 보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22년만인 작년에 오빠의 죽음을 마주해야만 했다. 물론 그 사이 죽음의 소식을 듣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은 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충격은 좀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전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였음에도 오빠의 죽음 역시 내겐 익숙한 것 아니지만 임종을 대하는 건 아버지 때와는 좀 달라졌던 건 사실이다.

우선, 당연히 오빠의 쾌유를 빌었겠지만 혹시 죽게 되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만큼은 평안하기를 빌었고, 죽을 때 너무 고통스럽지 않기를 빌었다. 그랬더니 그나마 아버지 때 보단 조금은 담담하게 오빠를 보내 줄 수가 있었다. 
또한 오빠가 임종을 맞기까지 아버지와 달랐던 건 임종 장소였다. 아버지는 당시 입원하고 계셨던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지만, 오빠는 강릉에 있는 갈바리 의원이란 곳에서 임종을 맞았다. 갈바리 의원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호스피스 전문 병원이다. 
사실 이곳이 1965년에 개원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꽤 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오빠의 임종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우리가 몰랐거나 안 알려진 것이다.
만일 22년 전에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그쪽으로 모셨을까?
아니다. 그래도 못 모셨을 것이다. 당시 엄마 때문에 아버지가 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친가 특히 고모들과 할머니가 서슬이 시퍼래서 무조건 그곳으로 가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다. 죽음을 부정한다고 해서 죽을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만큼 또 그 시절은 죽음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호스피스 전문 병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갈바리 병원도 얼마만에 찾아 낸 곳이던가. 그동안 오빠가 입원해 있었던 병원에서는 오빠가 어서 퇴원해 주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그 병원은 3차 진료기관이니 오빠 같은 환자는 장기로 입원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였다. 이해 못할 것은 없지만, 당시로는 섭섭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다리품 팔아 알아봤지만 오빠 같은 중환자가 가 있을만한 곳은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병원에서 오빠한테 할 짓 못할 짓 다해놓고 이제 희망이 없으니 더 이상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런 큰 병원에서 호스피스 시설이 없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환자를 강제 퇴원시키려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 버텨볼 때까지 버텨 볼려고 했다. 까짓 거, 우리가 우리 돈 내고 환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데 자기네들이 무슨 권리로 퇴원하라 마라냐고 하면서 말이다.
거기엔 이해상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병원측에선, 원래 병원이 균이 많은 곳이니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가 위험할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도 오래 있는 건 안 좋다는 것이다. 그건 또 맞는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갈바리 의원은 거의 악전고투 끝에 발견한 곳이고 오빠를 그곳으로 내려보낼 때까지도 그곳이 호스피스 병원이란 걸 말하지도 못했다. 그때까지도 오빠가 자신이 왜 호스피스 병원을 가야하는 것이냐고 반발하거나 충격을 받으면 어쩌나 겁이나서 말을 못했던 것이다. 그냥 암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이라고 했다.

이 책에도 바로 이와 비슷한 점을 다루고 있다. 이젠 각 대학병원에서도 호스피스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장례식장은 그렇게 크게 지어놓고, 죽으면 오라고 해 놓고(이것도 알고 보면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왜 임종대기 환자에 대해선 나몰라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나마 오빠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아 그곳에서 임종을 맞았지만 그것도 대기자가 많아 까닥하면 가보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곳은 강릉에 있다. 서울에서 강릉. 건강한 사람이라면 거뜬히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환자가 가기는 역시 쉽지 않은 곳이다. 그때 뭐 때문인지 구급차 이용도 용이하지가 않아 대신 승차감이 좋은 차를 빌렸다. 더구나 오빠가 그곳을 갈 때는 적지 않은 비도 내렸다. 정말 자칫하면 그곳에 가기도 전에 객사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왜 이렇게 죽을 곳 찾아 가기가 이토록 힘들어야 하는 것인가?
입원했던 병원이 호스피스 시설도 함께 운영했다면 그런 힘든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이 호스피스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병원과 친하지 않으니 몰랐던 것이다.   

또한 환자에게 죽음을 말할 것이냐지, 아니냐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평소 건강하고, 제 3자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환자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 것이다. 담당 의사는 그런 보호자의 입장을 생각해 자신이 말해주겠노라고 해서 믿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왜냐하면, 나중에 무슨 대화를 하다가 오빠가 그때까지도 자신이 그냥 위험하고, 중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몇 개월 후면 죽을 거란 걸 몰랐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도 의사는 어느 때가 되면 환자 본인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환자에게 차마 확실한 얘기를 못하는 것이다. 이건 확실히 직무유기란 생각이 들었다. 오빠 같은 환자를 한 두 번 다뤄 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다면 매번 이런 식일 것 아닌가? 책에 의하면, 선진국에선 의사가 이 부분을 밝히도록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이 문제가 첨예한 건, 환자가 알아서 더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의사가 알리고 싶어도 보호자가 못하도록 막는 경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환자가 알았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나빠지는 경우는 있어도 대체로 결과는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래야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빠도 마지막엔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이것을 쉽게 받아 들이지 못한 채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우리 살아있는 사람이 충분한 위로와 안정을 주지 못한 건 지금도 두고 두고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나 가족만 원망할 수는 없다. 의사는 생명을 담당하고 있으니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삶도 자신의 것이듯, 죽음도 자신의 것이다. 그러니 (물론 용기가 필요하겠지만)내 생명이 얼마나 남은 거냐고 물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상담(컨설팅) 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그러기 위해선 평소 죽음에 대해 삶 만큼이나 자주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빠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오빠의 죽음은 아버지 때와는 또 달랐다. 아버지 때는 무조건 슬프기만 하고, 인생이 그저 허무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선지 굉장히 현실적이 됐다. 
나 역시 오빠처럼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의사나 가족들이 어려워 할 것을 생각해 내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은 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물론 연명치료 같은 건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라도 더 살아 보겠다고 몸에 바늘 꽂고, 호흡기 꽂고 그렇게 내 몸을 혹사시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벗어버릴 몸이지만 가급적 갈 때까지 깨끗하게 있다 벗어버리고 가고 싶다.  
무엇보다 의사은 환자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처음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들어 적극적인 치료를 권한다. 미리부터 단정 짓기도 뭐하지 않는가? 처음부터 비관적으로 몰고 가는 것도 부담스럽고. 또한 이런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느 정도 병원에 이익도 내야겠으니 유도를 하는 것이다
보호자 역시 안타까운 마음과 의학에 대해 아는 바도 없으니 의사가 권하는 것은 무조건 다 해 달라고 한다.   
그러니 환자 본인과 보호자가 어떻게 할 건지를 결정하고 주도적이 되야 이런 모든 것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죽음에 맞서 싸우는 것도 용기지만, 죽지 않겠다고 바둥거리는 것도 얼마나 불편한지 알지 않는가? 이건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다. 그래서 이러한 책이 필요한 줄도 모르겠다.

책은, 꼭 자신이 죽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만들라고 권한다. 그것은 나도 오빠 죽음 이후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난 내가 죽은 후 남아 있는 사람이 나의 삶의 흔적을 치우게 하고 싶지 않다. 내 주위에 가족이 하나도 없어 전문업체에서 해 주는 거라면 모를까. 빨리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치울까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건 저 책무더기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가장 놓지 못하고, 나의 유일한 소유물이며, 사치품인 책을 가족들이 치우게 하면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편치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오빠의 마지막 모습 중 기억에 남는 건, 오빠가 응급실에서 병상이 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때 잡았다던 엄마의 손이다. 물론 난 그걸 엄마에게서 얘기로만 들었는데, 그건 평소의 오빠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다. 모르긴 해도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거니와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낳아 준 엄마의 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손을 잡지 않는다면 또 언제 엄마의 손을 잡아 볼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 조차 하지 않는다면 떠나는 자신이나 남아 있을 엄마에게 너무 아쉬울 것 같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책에 나온 내용대로 가족과 친지들에게 사랑의 메모를 남겨둘 일이다. 그리고 남아 있을 가족들에게 내가 지금 떠남이 꼭 슬픈 것은 아니라고 말해둬야할 것 같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겐 이별이지만, 난 이제 그동안 헤어져있던 먼저 간 가족들을 만나러 가니 좋다고 말해 주므로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 
그 밖에 나의 버킷 리스트는 뭐가 있을까? 

오래 전, 미국의 어느 저명한 목사님이 자신이 죽기 전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장례식 때 들으라고 하곤 세상을 떠났단다. 가족들은 고인의 말대로 장례식 때 고인의 녹음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평소 유머 감각이 뛰어난 고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장례식장이 웃음 바다가 됐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삶은 이렇게도 완성이 되는 거구나 싶기도 했다. 

내가 왜 지금 죽어야 하는 거냐고 따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도 급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는 건 나름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국가의 책임은 이런 의지가 있는 개인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게 태어나게 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지만, 만족하게 죽을 수 있게 하는 것에도 국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덕목이란 말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만이 선진국의 조건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얼마나 잘 태어나, 얼마나 잘 살게 해 줄 것이며, 얼마나 잘 죽게 해 줄 것이냐가 선진국의 조건인 것이다. 
아마도 태어나는 문제와 죽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최하위인 것마는 분명해 보인다. 영아유기의 문제, 자살의 문제 등이 이토록이나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책의 표현대로 한국은 '살면서 괴로운 나라요, 죽을 때 비참한 나라'임에 틀림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지난 수십 년간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나름의 흔적들이 보여 아주 비관스럽지마는 않다. 아마도 저자가 이 분야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 겸손해서 그런 제목을 쓰지 않았나 한다.
책은 비교적 어떻게 임종을 맞을 것인가에 대해 상세하게 나와 있다. 분명히 길은 있다. 보기엔 화려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맞는 좋은 삶의 마무리의 길은 찾아보면 있다. 너무 국가에만 의존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 정부가 국민을 만족시킨 일이 있었는가?
개인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잘 죽는 방법 중 추천하고 싶은 건 신앙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래도 그것이 그나마 정부가 베풀어 주는 그것 보단 조금은 낫지 싶다. 죽음을 비교한 여러 문건 중에, 신앙이 있는 죽음이 없는 죽음 보다 훨씬 평안하고 안정적이라는 보고는 이미 오래 전에 보도된 바 있다. 
실제로 나의 오빠도 살아 있을 땐 비신앙인체로 살다 죽기 바로 전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평안한 임종을 맞았다.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선 약간 건조하고 딱딱할 수도 있지만 읽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