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 -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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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시끄럽다. 나라가 시끄러우니 주변이 시끄럽다. 주변이 시끄러우니 내 마음도 시끄럽다. 하지만 이도 맞는 얘긴지 모르겠다. 내 마음 하나 바로 세우지 못하면서 주변을 험담하고, 나라가 시끄럽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 하나가 바로서면 내 가정이 바로서고, 내 이웃이 바로서고, 마을이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 서는 것 아니겠는가? 예수님도 말씀 하셨다.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고래로 바른 것을 가르치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그 말을 나 자신이 기꺼이 들으려 했는지 반성해 본다. 교과서 같은 말이라고, 이상은 좋으니 현실성은 없다고 외면하고, 경쟁에 떠밀리고, 싸구려 자본주의에 물들어 살아 보니 좋은가? 

 

왜 우리나라가 얼마 전부터 인문학에 끌리고, 들끊는지 모르겠다. 이게 일시적인지 아니면 오래 갈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이 현상은 환영해 본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는데, 그 선진국의 조건이 경제의 성장에만 있겠는가? 그 나라가 얼마나 사화적으로 건전한가, 복지가 얼마나 잘 되있는가, 국민 의식이 얼마나 성숙한가 등이 고루 반영이 돼야 하는 일이라면 이것의 근간이 되는 교육과 학문이 바로 서야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은 어느만치 뒷받침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한 학문을 바탕으로 한 전인교육은 아직 바로서지 못했다. 이것을 인문학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해서 우리는 그토록 인문학에 목숨거는지도 모르겠다. 또 그러다 보니 미뤄뒀던 우리나라 고전 내지는 한문학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더운 여름 날 이런 책을 읽는다는 건 좀 특별하긴 하다. 물론 일부러 이런 여름에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건 아니다. 어찌하다 보니 초여름에 읽기 시작한 책을 벌써 여름의 3분의 2를 보내버린 싯점에서 마감을 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얼마 전부터 군대내의 폭력 문제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만 갈아치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닐 텐데 매번 사람만 바뀔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니 '차역인자(此亦人子)'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도연명이 자식에게 보낸 짧은 훈계의 편지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네가 날마다 쓸 비용마저 마련키 어렵다 하니 이번에 이 일손을 보내 나무하고 물 긷는 너의 수고로움을 돕게 하마. 그도 사람의 자식이니라. 잘 대우해야 한다(220p). 즉 도연명이 그의 아들을 도와 줄 하인을 보내면서 썼던 말이다.    

 

'그도 사람의 자식이니라. 잘 대우해야 한다' 이 말이 어찌 여기에만 해당이 되겠는가? 상관과 말단 군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고, 직장 상사와 회사원, 노사간에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하다못해 고아일지라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을 군에서 열심히 가르쳤다면 오늘 날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주입식에, 경쟁적으로만 공부해 왔던 그 썪어빠진 열매들을 보는 것은 아닌가 해서 씁쓸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을 돌아보는 강한 반성이 필요할 때다.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만 같은 시한폭탄 같은 감정과 정서를 가지고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잘못을 하고도 오히려 잘못한 것이 없다고 고개를 꼿꼿하게 드는 것을 보면 후안무치를 넘어 짐승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버리게 된다. 내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그 속을 캐고캐면 반드시 그 혼자만의 잘못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안의 잘잘못을 밝히는 정의도 필요하지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을 만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더구나 이것이 군중심리와 만나면 그건 정말 집단적인 악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평소에 자신을 낫추는 자세를 길러 둠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갈 때까지 가보자', '너 죽고, 나 죽자', '싹 다'라는 말을 너무나 잘한다. 뭐 그만큼 뒷끝 없고 화끈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처럼 배려없고, 미련한 말이 또 있을까? 그때 내 눈에 들어 온 말은 궁민즉설(弓滿卽抴)이 눈에 들어왔다. '활을 너무 당기면 부러진다'는 말이란다. 말은 다해야 맛이 아니고, 일은 끝장을 봐서는 안 되며, 봉창에 가득한 바람을 편가르지 말고, 언제나 몸 돌릴 여지는 남겨두란다. 청나라의 석성금이 했던 말이란다(172p)

 

지난 날 나도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이 화를 내고, 상대를 공격해 왔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진다. 이 말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겸손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왜 나는 내가 남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해 왔는지는 그리도 많이 따지고 계산하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바다 밑을 떠도는 미처 다 구조되지 못한 혼령들과,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 비명횡사 했다던 사건의 책임자를 생각하면 내 일이 아닌데도 자꾸 부끄러워지면서, 한국은 거대한 미스터리 공화국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디서 잘못됐는지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긴, 그런 것은 따져서 또 무엇하겠는가? 나부터 조심하고, 수신을 바로하길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옛것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지 않던가?   

 

난 언제부턴가 '조심'이란 단어가 좋졌다. 몸조심 해라.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 조심해서 가라 등등. 써 놓고 보니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남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정민 교수는 마인드 콘트롤, 즉 바깥을 잘 살피라는 뜻으로 조심을 썼다. 안 그러면 마음은 툭 하면 달아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나에게 당부하는 '조심'이다.

 

내가 저 위에 썼던 예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 하나 붙잡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조심은 읽고, 또 읽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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