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엄격하게 트레이닝을 시킨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성향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진심 어린 칭찬이, 때로는 말 없는 응원이 더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명사들의 어머니 이야기를 살펴본 결과, 가장 좋은 교육은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준 어머니 ♡

- GE CEO 잭 웰치



어난 직관력으로 시장가치가 1백20억 달러에 불과했던 GE를 4천5백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세계에서 가장 관료적이고 복잡한 GE를 가장 단순하고 민첩한 조직으로 변신시킨 잭 웰치. CEO의 롤 모델이라 불릴 만큼 비즈니스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어머니는 나의 거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잭 웰치는 어머니가 물려준 가장 큰 선물은 ‘자신감’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잭 웰치는 말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가 말 더듬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줬다. “그건 네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야. 어느 누구의 혀도 네 똑똑한 머리를 따라갈 수는 없을 거야”라고 말했던 것. 그래서 그는 수년 동안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머리가 입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 관한 일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어린 시절 운동선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그 당시 자신이 제일 키가 작았던 것이다. 농구팀 가드를 맡았었지만 그는 다른 선수 키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던 것. 그 당시 자신의 키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건 정말 어처구니없지만 어머니는 그 정도로 잭 웰치에게 엄청난 자신감과 원하는 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러곤 어머니는 항상 “넌 그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의 기본적인 경영 신념들-이기기 위해 열심히 경쟁하는 것, 현실을 직시하는 것, 목표를 보다 높게 설정하는 것,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 등-또한 어머니에게 배웠다. 그의 어머니는 어떠한 상황이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을 속이지 마라.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단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은 사업상의 문젯거리가 기적적으로 해결될 거라며 안이하게 스스로를 위로하려 할 때마다 그를 정신 차리게 하고 바로잡는 힘이 되었다.




♡ 창의력을 끊임없이 키워준 어머니 ♡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린 시절,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왕따’로 지냈지만 태생적으로 엉뚱하고 장난기가 심한 아이였다. 공부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때로는 정말 황당한 질문으로 선생님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결국 담임선생님은 그의 어머니에게 “스필버그는 도저히 학교에서 공부할 수가 없으니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공부를 시키든지, 특수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자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엉뚱하고 산만한 것이 다른 아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기를 꺾지 말아주세요. 엉뚱한 질문을 할 땐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여쭤보렴’이라고만 해주세요. 그리고 그 애의 질문을 전화로 제게 알려주시면 제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답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 그만큼 항상 아이 편에서 아이의 톡톡 튀는 발상을 그대로 키워주려고 애쓴 어머니였다.

또 항상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는데, 스필버그 남매가 심하게 싸우고 있으면 둘을 불러놓고 항상 양쪽의 주장을(아이들의 말을 끊지 않고) 다 들었다고 한다. 둘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알겠다. 그럼 지금부터 싸움을 시작해라.”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싸움을 허락했더니 오히려 아이들은 스스로의 행동이 부끄러웠는지 싸우지 않았다. 태도가 남다르다고 무조건 윽박지르지 않고 조목조목 설명해주며 잘잘못을 가려주고 많은 정보를 알려준 어머니 덕에 그는 가장 창의력 뛰어난 세계적 감독이 된 셈이다.




♡ 단 한 번도 “1등 해라”고 말하지 않은 어머니 ♡
- 소프라노 조수미



릴 적부터 무용과 성악, 가야금, 피아노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자질을 보인 조수미는 딸의 음악적 재능을 파악했던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1972년 CBS가 주최한 연말 노래자랑에 출전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녀가 공식 무대에 처음 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대회에서 최고상을 타지 못하고 장려상을 수상했는데, 훗날 그녀의 어머니는 “그날 오히려 장려상을 받았던 것이 자극이 되었고 음악적으로 더 분발해 오늘의 수미가 있을 수 있었다”며 회상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수상 여부에 대해 욕심이 없었다.

요즘 엄마들이 아이에게 가장 흔히 하는 말이 “1등해야 돼”라지만, 조수미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1등하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다. 대회를 앞두고 가장 떨리고 부담스러운 사람은 당사자일 텐데 엄마마저 쓸데없는 마음의 짐을 지워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오히려 대회 날 아침이면 항상 “어젯밤 꿈이 참 좋았다. 다 잘될 거야”라며 긴장을 풀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을 건넸다. 항상 엄격하고 강하게만 단련시키는 게 최고의 방법은 아니다. 감성적인 아이라면 오히려 부담감을 없애주고 사기를 북돋아주어야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 아흔에도 책 읽는 어머니 ♡
- 국회의원 이계진



의 기억 속 어머니는 식구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 버선과 양말을 다 꿰매고는 반짇고리에 묻어뒀던 소설책을 꺼내어 감정을 섞어 밤늦도록 두런두런 읽던 모습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였기에 책 살 여유가 안 되면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더라도 책을 놓지 않았고, 달걀 몇 줄 팔고 돌아오는 장터에서 거금을 내어 소설책을 사오곤 했다. 상대적으로 많이 배운 그의 아버지는 책을 멀리하고 오히려 일에만 열심이었으나 학교를 못 나왔던 어머니는 언제나 책을 갈망했다. 최근 백내장에 낙상 골절까지 당하신 그의 어머니는 아흔이라는 연세에 아직도 책을 읽고 계신다. 어려운 시절, 7남매를 낳아 잘 키워왔고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자신이 꿈꾸는 바를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에 자식들 역시 삶을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사는 법을 배울 수밖에.




♡ 아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어머니 ♡
- 안철수연구소 전 CEO, 안철수



장인들이 벤치마킹하고 싶은 국내 CEO 1위, 닮고 싶은 젊은 리더 1위로 항상 뽑히던 안철수. 지난 3월 말, 그는 “노안이 오기 전에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며 경영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말을 아끼는 편이었으나 우직했던 그의 모습들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몸소 배운 것들이다. 그의 부모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건 남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하라며 가르쳤고, 그것을 직접 실천하며 보여주셨다. 부산에서 의사로 일하셨던 아버지는 많은 봉사활동에 참가하셨고,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그에게 존댓말을 썼다. 고등학교 시절, 급한 일로 택시를 타게 되어 어머니가 택시를 잡아주셨는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기사가 그에게 “형수님이세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라고 대답하자 기사는 깜짝 놀라면서 “학생은 훌륭한 어머니를 뒀으니 나중에 그 은혜 잊지 말고 잘 모시며 사세요”라고 했다. 택시를 태워주며 어머니가 건네던 “다녀오세요” 하는 말에 그가 “예” 하고 답하는 걸 듣고 한 말이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그 역시 남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고, 군에서 대위로 복무할 시절 하위관들에게 반말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을 정도였다고.

그의 어머니는 기초부터 천천히 다지라고 가르쳤다. 안철수는 초등학교 시절 조용히 혼자서 놀고 공부도 중간 정도인, 절대 튀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때 성적이 좀 더 올랐고, 중학교 때보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더 좋았다. 그렇게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가다 고3 때에 이르자 비로소 반에서 1등을 할 수 있었다. 또 조그만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한국 최고의 벤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말씀대로 “기초를 잘 다지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서 인간관계도 잘 쌓았기 때문”이었다.




♡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은 강철 같은 어머니 ♡
- 유니버셜발레단 단장 문훈숙



훈숙 단장의 부모님은 외모도, 성격도 정반대였다. 기골이 장대한 아버지는 사람을 잘 감동시키고 때로는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성격이라면, 몸집이 작은 어머니는 뒤에 숨어 조용히 내조하는 스타일이었다. 3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를 ‘강철로 만들어진 여인’으로 기억한다. 미국에 살 때 어머니는 워싱턴의 한 마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여 버는 돈으로 3남3녀를 공부시키고 생활했다. 어떤 이들은 그녀의 가족이 화려한 생활을 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생활비는 전적으로 어머니가 벌어서 댔다. 한쪽에선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한쪽에선 야채와 과일을 파는 가게를 새벽부터 밤늦도록 혼자서 지키신 어머니. 천식 때문에 늘 숨쉬는 기계를 입과 코에 대고 살면서도 가족에게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으셨단다. 아마 자식들에게 마음의 짐을 주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터. 그렇게 정신력이 강하셨던 분이나 결코 모질고 억센 분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고전무용을 하던 그녀에게 딸의 신체적 특성을 파악하고 발레를 권한 것도 어머니였고, 외국 유학시절 발레를 그만둘까 하는 회의에 빠졌을 때는 다그치기보다 “그래, 빨리 가방 싸서 오너라”라고 할 정도로 항상 딸의 편에 섰던 어머니였다.




♡ 언제나 당당하라고 조언한 어머니 ♡
- eBay 사장 맥 휘트먼



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이베이(eBay)의 CEO로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회사 주식을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2005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50인’에 뽑힌 맥 휘트먼. 그녀는 주부지만 모든 일에 열심인 맹렬 여성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강하게 자랐다. 여섯 살 때 4명의 형제들과 함께 캐나다부터 알래스카까지 3개월 동안 캠핑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심한 장난을 치자 어머니는 그녀를 캠핑카 밖으로 쫓아내 알래스카의 고속도로를 뛰게 했을 정도. 좀 심하다 싶지만 이런 어린 시절을 통해 그녀는 인내심과 배짱을 키웠다. 그러나 맥 휘트먼의 어머니가 한없이 무섭기만 한 분은 아니었다. “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 ‘머리가 나빠서’ 또는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일을 못한다고 생각지 마라. 또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아무도 그 일은 한 적이 없어’, ‘여자들은 안 그러던데?’ 이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머니의 이런 조언은 그녀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나 남성 부하직원을 대할 때마다 염두에 두는, 인생 최고의 조언이 되었다. 작은 일화지만 그녀는 eBay 사장이 되기 위해 보스턴의 외과 의사였던 남편에게 사표를 내게 하고 두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사까지 왔다. 대부분 ‘나는 여자니까, 엄마니까’라는 맘으로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일을 먼저 포기하기 일쑤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조언을 떠올리고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이다.




♡ 즐겁게 가정을 ‘경영’했던 어머니 ♡
- 코코란 그룹 CEO 바버라 코코란



국 최고의 부동산 중개회사인 코코란 그룹의 창업자이자 CEO인 그녀는 “사업을 하며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엄마에게 배웠다”고 말할 만큼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판잣집에서 10남매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어머니 덕분에 가난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항상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해 기운을 북돋워줬다. 큰오빠에게는 “넌 타고난 리더야. 모든 형제들이 널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고 말했고, 엄마 일을 거들어주는 언니에게는 “넌 정말 최고의 조수야. 넌 훌륭한 엄마가 될 거야”라고 했다. 동생을 돌봐야 할 그녀에게는 “여기 와서 동생들 3명을 데리고 가렴. 그 애들도 오락이 필요해. 너도 스타가 되려면 사람들 앞에 서는 연습을 해야 되잖니”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뛰어난 재주였다. 10남매 사이의 일을 끊임없이 조율하면서도 말 한마디를 건네더라도 각자의 장점을 칭찬하면서 키우셨던 것. 그런 어머니 덕분에 그녀의 형제들은 그들이 최고인 줄 아는, 절대 기죽지 않는 아이들로 자랐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그녀 어머니의 매력이었다. 10남매를 키우면서도 절대 인상 찌푸리지 않고 웃으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온 집 안을 뛰어다니며 아이들을 일일이 챙겼던 어머니, 그 모습이 각인되어 그녀도 하루를 절대 허투루 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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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5-06-2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이계진을 보니 에구...
예전에 아는 사람이 회사사보에 실을 글을 부탁하러 갔는데... 눈 깔고 어이없다는 듯이 이런 말을 했다는군요. 그래 내가 그런 작은 회사 사보에 실릴 글까지 써줘야 되나?
부탁하러 간 사람이 무척 난감해서 어쩔줄 몰랐다네요.
그말 듣고부터 좀 다르게 보게 되더라구요.

stella.K 2005-06-2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그럴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데 의외군요. 그분 얼마나 마음이 생했을까요?
보기와 다른 사람 참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인기 아나운서 차인태 씨란 분은 입이 걸기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