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막힐 때 Break!
알렉스 코넬 엮음, 유영훈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처음엔 이 책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이 어찌보면 (지나치게)심플하고 모던한 느낌이다. 부담없이 가볍게 읽기엔 좋은 책 같은데, 난 또 이런 책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라 그다지 마음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읽어 볼 생각이 드는 건, 꼭 크리에이터들의 슬럼프 극복 방법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좀 엉뚱하게도)이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크리에이터들을 알고 싶어서 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결론은 '이 책 좀 괜찮다' 싶다. 

  솔직히 크리에이터들에 대해 독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몇 가지 아이템들이 있긴 하다. 어떻게 그런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쳤는가? 또는 어떻게 정상에 올라 설 수 있었는가? 그 정상에 오르기까지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었는가? 등등. 그런데 이 슬럼프 극복 방법은 앞의 기타 질문들에 살짝 묻어 가던가 빠지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 책의 작가는 이게 좀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예 이것을 화두로 삼을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

  독자로서 크리에이터들의 극복 방법을 아는 건 좀 흥미롭긴 하다.

무엇보다 그들도 인간이란 동질성을 느끼 게 해 준다. 그들은 항상 똑똑해서 하늘 꼭대기에서 전지전능한 작품만 내는 것 같지. 하지만 그들도 반드시 슬럼프가 있다는 것. 그런데 여기까지만 확인되면 이 동질성이 어느 만큼은 유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하면 어떤 독자는 김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들은 극복했으니까. 적어도 극복하려고 노력하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크리에이터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건 이 차이다. 그들은 계속 뚫고 나가는데 어떤 사람은 거기서 머물던가 아예 딴 것을 알아 본다는 것의 차이.

  이 책을 읽으니 나도 나름 크리에이터 한 일을 해 왔고, 이 책이 '창의장벽'이라고 말하는 슬럼프를 나는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를 새삼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렇다 하게 전수할만한 극복 방법은 없어 보인다.

​  무엇보다 내가 볼 때 창의력을 요하는 직업은 별로 정상적여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주로 글쓰기를 해 왔는데,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미치도록 쓰고 싶다와 그 미치겠는 일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양단을 늘 오갔던 것 같다.  

​  초기엔 나름 나를 혹독하게 다뤘던 적도 있다. 솔직히 이 '혹독'이란 말은 나와는 그다지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담대하지 못하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겉은 강한 척 하지만 속은 무척 여린 스타일이다. 그러니 뭐든 실수는 거의 용납하지 못한다. 또한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나 자신을 올인하고, 그럴 수 없다면 아예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나도 욕심인지, 나의 한계가 어디까진지 알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젊은 날 한때 무조건 창작학원에 등록했다. 첫날 선생님은 워크숍 작품으로 자신의 글을 한 작품 이상 제출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짧은 (자전)소설을 썼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A4 용지 10매 정도 되는 소설을 거의 두 달 가까이 붙들었던 것 같고, 그 알량한 소설을 쓰면서도 어찌나 스트레스였던지 당시 동생으로부터 물려 받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걸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일하다 스트레스 받아 투신하는 사람 마음이 어떤 지 그때 알 것 같았다.

  또 한 번은, 대본을 쓰고 있을 때였는데 연출가가 이거 고쳐라, 저거 고쳐라 하도 주문이 많길래 그거 들어 주다가 대본을 7번인가 8번을 고치고 결국 병이 나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 물론 내가 병원에 간게 꼭 그 이유는 아니고 그 전부터 뭔가의 결함이 있었는데 그게 하필 그때 터져버린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그 이유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때 나는 두 경험을 통해 절대로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어떤 크리에이터는 책상에 계속 머리를 찧어서라도 정면돌파 하라고 하는데 그건 확실히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며, 그러다간 과부하에 걸려 언제 또 병원에 실려 갈지 모를 일이다. 대신 요즘엔 '마감으로 자승자박 한다'던 그래픽 디자이너인 벤 베리의 방법을 선호한다.

 그는 이따금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작업을 끝내겠다고 공개 선언을 해버림으로써 인위적으로 다급한 환경을 만들어 내는데, 효과는 만점(69p) 이라고 전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방법은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말만하고 실천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긴 하지만, 사람이 무엇이든 입술의 열매대로 된다지 않는가? 특히 나 같은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서 입술로 선언한 것은 대체로 행하는 편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진행된 일이 몇 건 된다. 사실 지금도 진행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한데 사정상 여의치 않아 답보 상태에 있다. 그래도 민들레 홀씨 퍼트리듯이 일부러 여기 저기 쑤시며 내 계획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의도적으로 떠들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언젠간 이루지 않을까?

  '인위적으로 다급한 환경을 만들라'는 벤 베리의 말은 더더욱이나 새겨 볼 필요가 있는데 크리에이터들 중엔 프리랜서들이 많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특성상 내가 원하면 일을 하고, 원치 않으면 일을 안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죽이는 프로젝트도 다급한 상황이 아니면 머릿속에만 있다 결국 시간 지나면 사장되어버릴 확률이 농후하다. 그러니 일부러라도 다급한 상황을 만들어 결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죽이는 결과든, 그저 그런 결과든 말이다.

  이 책에서 배울 것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과 도전을 잘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나 남에게나 잘 할 수 없으면 차라리 시작도 하지 말자는 얘기를 자주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난 왜 실수하면 안 되는 것일까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실수도 권리라면 권리일 수 있다.

  김병완이 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법칙>에서도 보면 천재들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천재들은 실패라는 단어를 알지도 못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처럼 많은 작품을 중  단 1% 만이 살아남아서 천재라는 타이틀은 안겨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진 작가인 팀 네이비스는 말한다. 창의장벽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수를 많이 하는 거라고. 실수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고 믿는다. 예술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그만큼 나아지는 것이라고. 무엇보다 그는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한다고 했다.(120p) 

  흔히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 하는 건 내가 져야하는 책임을 감당하기 싫어서와 비난을 감내하기 싫어서는 아니겠는가? 하지만 실수는 남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 나는 결코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실패를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전에 '실패' 또는 '실수'라는 단어는 뺄 필요가 있다.                        ​

        

​  창의장벽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해 각 크리에이터들이 하는 말이 조금 조금씩은 비슷하고, 또 조금 조금씩은 다르다. 그런데 이 책은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엉뚱하기도 한데 예를 들면, 데비 밀먼이란 작가는 창의장벽에 부딪히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쓴단다. 1.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2. 질리도록 책을 읽는다(특히 고전을). 3은 건너 뛰고, 4. 더 잔다. 5. 일을 억지로 미룬다. 6번도 건너 뛰고, 7. 운다.고 한다. 부연 설명엔 울고 나서 더 운다(124p~)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요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세탁을 하기도 한단다.

  나는 주로 어떤 방법을 쓰는가? 자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뭘 먹는 등 가급적 그 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려고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 일을 하고 싶어 미치겠는 순간까지 나를 팽팽하게 잡아 뒀다 거짓말 좀 보태서 잡아 먹을 듯이 일한다. 그러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난 아직도 죽지 않았어. 하며 스스로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그래도 슬럼프가 오거나 말거나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꾸준이'의 방법을 따라 갈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창의장벽에 부딪히면 무엇을 하는가? 함께 나눠줬으면 한다.  

  

 ​  솔직히 이 책은 의도된 것이긴 하나, 좀 가볍게 씌여져 있다는 느낌은 피해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창의장벽 또는 슬럼프와 그것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각 크리에이터들의 노하우를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만족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크게 확대 해석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도 아직 현재진행형의 삶을 살고 있고, 큰 의미에서의 위기관리를 위한 책은 아니니까 말이다. 단지 스트레스를 받고, 슬럼프를 겪을 때 어느 장을 펼쳐 읽어도 좋으리만큼 간략하게 써 놓은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자 단점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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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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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