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소리부터 내린다
흐린 세월속으로 시간이 매몰된다
매몰되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나지막히 울고있다
잠결에도 들린다
비가 내리면 불면증이 재발한다
오래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이름일수록
종국에는 더욱 선명한 상처로 남게된다
비는 서랍속의 해묵은 일기장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은 아무리 간절한 그리움으로
되돌아 보아도 소급되지 않는다
시간의 맹점이다.
일체의 교신이 두절되고 재회는 무산된다
나는 일기장을 태운다
그러나 일기장을 태워도 그리움까지
소각되지는 않는다.
비는 뼈속을 적신다
뼈저린 그리움 때문에 죽어간 영혼들은 새가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날 새들은 어디에서 날개를 접고
뼈저린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까..
비에 관한 명상 수첩 중에서 이외수
빗물 위에 사랑을 쓰다
이근대
사랑은 가고 나는 쓴다
빗방울이 거세게 내리는 밤중,
눈물 젖은 종이 위에 사랑을 쓴다
사랑을 쓰다가
툭 마음이 연필처럼 부러진다
연필을 깎듯이
마음을 뾰족하게 깎아 이별을 쓴다
이별을 쓰다가
볼펜 먹이 다 되었듯이
마음이 바닥난다
바닥난 마음 밑자리에
빗소리만 가득 고여 있다
창틀에는
빗물이 더덕더덕 엉겨붙어
자꾸만 편지를 어둡게 만들고
연필처럼 툭 부러진 마음은
지우개똥처럼 창밖에 흩어진다
마음을 꾹꾹 눌러
선명하게 쓴 이별,
나는 눈물 젖은 종이 위에
사랑을 쓴다

출처: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