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덧없는 욕망

다니
김용규 김성규 지식소설|지안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이 소설은 순응을 모르는 인간에 대한 경멸이다. 공멸(共滅)로 치닫고 있는데도 자각을 하지 못하는 직립(直立) 족속에 대한 추도사다. 집단 학살(제노사이드)의 본질을 이처럼 진지하고 흥미롭게 전개한 소설도 드물다.

젊은 여성 제니퍼 모건 박사는 건기(乾期)가 끝나갈 무렵인 어느 날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빅토리아 호수 근처에 있는 나망가 계곡에 연구 캠프를 차린다. 원래 미국 노만의 영장류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녀는 나망가 계곡의 숲에 있는 침팬지들에게 수화(手話)를 가르치는 연구를 한다. 그곳 동쪽 숲은 서식지 분류번호 BK-103, 서쪽 숲은 BK-108이다. 동쪽 침팬지들은 42마리에 이르는 대집단이고, 서쪽은 18마리뿐인 소집단이다. 제니퍼는 서쪽 숲을 연구 대상으로 정한다.

그런데 나망가 계곡의 소유주인 헨리 웨슬리 경이 동쪽 숲을 개간하기로 결정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동쪽 숲에 살고 있던 침팬지들이 서식지가 줄어들자, 이미 제니퍼의 친구가 돼 있는 서쪽 숲의 침팬지들을 하나씩 살해하는 것이다.

제니퍼는 자신의 침팬지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엄마·딸 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각별한 관계로 발전한 ‘다니(Dani)’라는 암컷 침팬지에게 깊은 사랑을 쏟는다. 수화를 배우는 침팬지들 중에서 ‘다니’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다. ‘다니’는 심지어 “젝, 젝, 젝”이라는 발음으로 제니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다니’가 제니퍼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 제니퍼가 ‘다니’를 닮아간다.


▲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한 침팬지/조선일보 DB
웨슬리 경은 완강하다. 숲을 개간하는 것은 난민 수용시설을 짓기 위한 것이라면서, 침팬지들 사이의 약육강식은 자연 법칙이라고 버틴다. “진화라는 이 숭고한 신(神)의 사역을 위해 죽음은 소중하고도 필요한 것이오.”(127쪽)

제니퍼는 절망한다. “만물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비폭력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언제나 죽음의 위험에 노출된다. 제니퍼가 어릴 때부터 배운 인디언 추장의 가르침이다. 결국 제니퍼는 웨슬리가 고용한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념과 사랑의 일치를 경험하면서 진정한 연인 사이로 발전한 유엔환경계획(UNEP) 소속 산림감시원 요하네스 라이제를 안전한 장소로 옮겨 놓고 난 다음 현지에 홀로 남아 제니퍼가 맞닥뜨린 운명이다. 장엄한 죽음이다.

소설 곳곳에 글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침팬지에 관한 과학적 진실들, 그리고 근·현대사에서 지구를 휩쓸었던 대규모 학살에 대한 진상과 그 원리에 대한 성찰, 전공 서적을 방불케 하는 상세한 주석(註釋), 실존 과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을 풀어낸 흥미로운 실험과 그 결과들….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김용규씨,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김성규씨처럼 한국인 작가 두 사람이 중국계 미국인을 주인공 삼아, 아프리카를 무대로, 생태 원리와 집단 학살을 소재로 한 지식 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문학 사건이다.

이 책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고급스런 동물소설이다. 생태문학이 이처럼 커다란 울림을 준다는 데 경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침팬지 ‘다니’가 제니퍼의 이름을 부를 때 독자들은 빅토리아 호수의 황혼처럼, ‘옆에서 바라볼 수만 있을 뿐 누구든 손을 대는 순간 부서지고 말 것 같은 어떤 것’(73쪽)에 대한 아름다운 서술과, 그것이 내뿜는 소설 문학의 진지한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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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5-0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전작 알도 시리즈는 지식소설이긴 한데...청소년 지식소설 이더군요. 실망했었는데.....이번엔 어떨찌, 기대반냉담반

stella.K 2005-05-0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쓴 기자 내 취향하고는 잘 맞지 않아 저도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신중해야겠군요. 알도 시리즈 청소년용이면 얼추 저의 정신연령과 맞을 법도 한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