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카페 : 인맥을 만드는 CEO파티 / 징기스칸님
경영자가 갖춰야 할 또 하나의 덕목 ‘하인 리더십’
“Virtue is own reward!”
 

 

어떤 리더든지 휘하에 쓸 만한 수하(手下)들을 거느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용장(庸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고 하지 않던가.


“나를 따르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용장의 리더십은 과연 무엇일까.
신세대를 바라보라.‘잔소리꾼 구세대’로 전락하기 싫다면 그들의 사고를 읽어라.

지식 산업을 ‘주름 잡는’ 지식 기업. 정보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그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본지도 이미 여러 번 지식 기업 및 지식 자산들이
이끄는 국면의 변화들을 소개한 바 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선 지식 사회에 각광받을 만한 능력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
 ‘신지식인’이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하기도 했다. 신지식인의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know what),
어떻게 하는 것이 세계 최고인지(know how),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know where),
누구에게 맡기면 가장 잘할 수 있는지(know who)를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때문에 신지식인의 자격 요건에는 학력 등 소위 ‘간판’이 필요 없다.
빌 게이츠도 신지식인이지만, 파출부나 막노동판의 일당 근로자,
농부 등 몸으로 때우는 직업인들 및 월급 받는 회사원들도 신지식인이 될 수 있다.

앨빈 토플러의 예측은 이제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보화 사회라는 ‘제3의 물결’ 속에서 패러다임의
대변혁(Paradigm Shift)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신지식인은 과거의 지식 계급(The Intellectual Class)을 대치하며 새로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아울러 많은 이들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성취 목표로 자리잡았다.

신지식인의 특징은 과연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신의 일과 환경, 여건 등을 개선하고 개발하며 혁신해내는 이라면
신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비단 ‘완성형’뿐만 아니라 ‘진행형’도 신지식인에 포함된다.
 
이 글 말미의 박스에 신지식인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나열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모든 특성들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바로 이번호에 얘기하고자 하는
‘하인 리더십(Servant - Leadership)’이다.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인 리더십’이란 개념은 ‘청교도 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생겼다.
우리는 그 말이 본디 기독교에서 일컬어졌던 용어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두 단어 사이에 하이픈이 붙으면 ‘경영자의 리더십’이 된다)이라는 말을 기독교에서는 ‘종(종복[使徒]의 의미일 것이다)으로서의
리더십’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원래 이 말은 ‘섬기는 자의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었던 예수의 리더십’을 뜻하는 말이다.
예수는 마가복음(마르코복음) 10장 43~45절을 통해 그의 지도자 철학을 밝혔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속세의 권력 쟁탈은 필연적으로 적과 중상모략을 부른다. 명예욕에 사로잡힌 이들이
서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날뛰기 때문이다.

하인 리더십은 ‘숭고한 인생 철학’이다.
예수의 12제자는 대부분 세속적 출세의 기회를 벼르고 있었다.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마가복음 9:34)”라고 전해진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 9:35)”였다.

우리 나라의 ‘유교적 기독교’를 개탄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하인 리더십은 단골 메뉴다. 선교사들 가운데
 “목사 섬길 줄 모르는 선교지 사람들에게 한 수 가르쳐줘야겠다”는
말을 내뱉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양심적인 기독교인’들은
 “한국에서 목사란 어느덧 ‘섬김을 받는 직분’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며
핏대를 올린다.

‘부정과 세속적 음모에 찌든 일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일갈할 때에도
하인 리더십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교회 지도자는 ‘(덕망과 인격을 갖춘)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참뜻 구현’을 부르짖는 이들의 공통된 얘기다.

다소 장황한 얘기였지만 사실 결론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기독교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취지를 잊지 말자는 것.
 
“먼저 하인이 되어라!”

경영학적 측면의 하인 리더십이 최근 지식인들의 화두에 종종 오르내리고 있다.
기자는 지난 한 달 동안 세 명의 취재원으로부터 이 단어를 들었다.
모 최고 경영자 조찬 모임에서는
‘경영학에서의 하인 리더십(Servant-Leadership and Business)’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실용적 의미의 ‘하인 리더십’ 또한
본질적으로는 앞서 살펴본 기독교에서의 하인 리더십과 다를 바 없다.

자, 기독교에서의 하인 리더십을 마지막으로 한번 되새겨보자.
‘복음의 전파’와 ‘사랑의 실천’ 등 기본적인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다 보면 하인 리더십에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제 시야를 좀더 ‘현실적인’ 방향으로 돌려본다.
자본주의사회의 대표적 계층은 ‘장사꾼’이다. 장사꾼 최대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윤의 극대화일 것이다. 이때의 이윤 극대화란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장사는 신용이 생명이고 신용은 곧 고객 만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객 만족을 극대화시킬 경우 이는 곧 장기적 측면에서의 이윤 극대화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고객 만족은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가.
고객과의 관계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영화 <배트맨과 로빈>의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를 떠올려보자.
주인의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최대한 만족시키면서
한점 흐트러짐 없이 품위를 유지하는 꼬장꼬장함, 고상한 인격,
한없이 따사로운 마음…. 충직한 하인이야말로 대 고객 관계의 귀감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다. 하인 리더십은 이런 발상에서 출발한다.

궁극적인 목표에 일관적으로 다가가고 싶은가?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싶은가?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하인’이 되어라.
 
추종자들 없이는 리더도 없다

하인 리더십 연구의 대표적 인물을 꼽으라면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 1904 ~ 1990)를 들 수 있겠다.
1970년 그는 ‘Servant-Leadership’의 개념을 처음 소개한 <The Servant As Leader>라는 에세이를 발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처음 하인 리더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AT&T에서 교육 개발 운영직에서
은퇴한 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강의를 나가면서부터였다.
 
떠들썩한 1960년대를 보내면서 왜 수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의 제도 및 공공기관,
특히 대학에 그토록 강렬히 항거했는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조사를 마친 그는 ‘문제는 제도와 기관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학교는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을 제대로 이끌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얘기하는 ‘섬기는 지도자(Servant-Leader)’란 스스로의 노력과 비전 제시 능력,
하인으로서의 윤리를 모두 갖추고 있는 새로운 리더 상이다.
그는 섬기는 지도자가 사회를 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린리프는
 “진정한 지도자란 추종자들이 선택하는 것
(True leaders are chosen by their followers)”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섬기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awareness), 선견지명(foresight), 경청(listening)을,
버려야 할 악습으로는
강압-속임수-말재간(coercive-anipulative-ersuasive power)을 지목했다.

그린리프 센터의 현 CEO인 래리 스피어즈(Larry Spears)는 그린리프의 글을 취합,
하인 리더십의 덕목을 10가지로 나열하고 있다.
경청(Listening),
개념화(Conceptualization),
공감(Empathy),
선견지명(Foresight),
치유(Healing),
책임감(Stewardship),
인식(Awareness),
커뮤니티 구축(Building Community),
설득(Persuasion), 신장의 보증(Commitment to the Growth of People)이 그것이다.

그린리프의 저서 < Servant - Leadership(New York: Paulist Press, 1977) >은
지금껏 리더십 연구의 교재로 각 대학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 위치한 ‘그린리프 센터(Greenleaf Center)’는
범세계적인 지부망을 통해 하인 리더십의 보급 및 교육에 힘쓰는 비영리 단체다.

고객이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기업은 품질, 코스트, 스피드, 차별화 등의 향상 추구를 끊임없이 거듭해야 한다.
당연히 해당 사업에 대한 이해, 전반적 성공을 거두기 위한
나름의 계산, 필요한 사항에 대한 결정권, 전반적인 운영 능력 등을
확보하고 있어야 조직력과 체질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능력은 오로지 조직의 리더나 실질적 매니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하인 리더십을 이해하는 이라면
시장에서 조직의 탄탄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런 힘이
모두에게 고루 분배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가장 실질적이고 바람직한 하인 리더십의 실천 방법은 ‘대화’다.
대화는 조직 내 각 성원의 머리와 가슴, 두 손을 한데 모아준다.
 대화는 협력의 기반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모든 조직을 구성 및 유지하는 데에는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이 따르는 법이다.
 
이런 끝없는 일들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해
단순히 일련의 상황 및 사람들을 처리하는 방법론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런 구체적 방법도 숙지할 필요는 있지만 그 외에
성실한 ‘의견 수렴(listening)’, 협조와 팀워크, 적절한 반향 등도 필수적인 덕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 본인의 가치, 강점과 약점 등 총체적인 자신의 모습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혹독한 자기 수련과 더불어
 ‘부드러운’ 대인 관계를 겸비한다면 파워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하인 리더십의 기본은 곧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리더십인 셈이다.

하인 리더십은 개인적인 성숙을 통한 리더십의 향상을 추구한다.
아울러 상하 구분 없이 원만한 인간 관계를 강조한다.
때문에 우리의 모든 일상 생활, 즉 직장, 가정, 내적 충만에 도움이 된다.
 
‘밑바닥’에 있다면 더 나빠질 게 뭐 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하인 리더십을 전반적으로 훑어보았다.
그린리프의 생각이 너무 ‘부드럽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지금껏 들어왔던 ‘전통적인’ 조직 장악의 지혜와는 조금 방향이 다른 면도 있다.
하지만 하인 리더십은 매우 실용주의적인 사고다.
그린리프는 “경영이란 일련의 일들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한
고찰(Management is the study of how things get done)”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로지 대접을 ‘받기만’ 하는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과연 소위 ‘특권층’들은 ‘하인이 되기를 자청한 이들’에 비해
더욱 건강해지고, 현명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자율적으로 살 수 있을까?
 
반면 사회에서 가장 특권과 거리가 멀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뭔가 이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상황이 더 나빠질 리는 없지 않겠는가.”
 
 
자료-The Robert K. Greenleaf Center for Servant-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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