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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상황은 그 시간이 짧기 때문에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
수백미터 까마득한 절벽. 한 여인이 허공에 매달려있다. 그녀의 남자가 손목을 간신히 붙잡고 있지만
서서히 힘이 빠진다. 맞잡은 손이 조금씩 미끄러질 때 그 처절한 무력감.
몇초 후에 닥칠 비참한 현실에 대한 숨막히는 공포.
그래서 수많은 영화와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단말마의 극한 상황으로 설정되곤 한다.
그러나 극한상황이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독자나 관객들은 당황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49개월하고도 스무하루 동안이라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작품속의 등장인물들이 감당해야할 긴장은 이미 극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오히려 궁금해진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를 생활의 동반자로 삼아야 할 때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는 비전향 장기 복역수가 지내온 수십년의 유폐와도 느낌이 다르고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 동안 영문도 모르고 갇혀있던 한 남자의 분노와 자포자기와도 방향이 전혀 다르다.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느낌을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작지 않은 공부가 된다.
안네의 일기는 열세살짜리 소녀 안네의 가족들이 나찌 비밀경찰을 피해
건물 벽장과 지붕에 숨어살던 그 긴 시간의 기록들이다.
한 사춘가 소녀의 성장기록이기도 한 이 작품은
그자체로 다큐멘타리의 생생한 감동을 담고 있다.
안네는 전쟁을 미워한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말한다.
전쟁이란 인간이 지독하게 이기적이며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동물임을 증명하는 가장 적절한 예다.
히틀러가 그토록 칭송해마지 않았던 게르만족은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역사상 가장 저열한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천만의 동포가 부당하게 끌려가서 비참하게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안네는 앙갚음의 전쟁을 거부한다.
분노의 대상이 분명하다. 그러나 되갚음이 더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깨달음 때문에 한 소녀의 작은 일기책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생산기술이 고안되고
온갖 철학과 예술이 백화제방으로 만발했던 20세기.
인류는 빛나는 문명의 황금기를 맞아
어처구니 없게도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월남전 등 피비린내나는 종족말살 전쟁을
쉴새없이 벌였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살해당했던 한 세기였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앞서있다는 나라가 벌여놓은 전쟁 때문에
각국의 수 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죽이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
겉으로는 이성과 대화를 내세우는 세상이지만
전쟁은 여전히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갈등 처리 방법이다.
힘의 차이가 크게 날 수록, 가진 것이 많을 수록, 자부심이 강할 수록 전쟁을 손쉽게 결정한다.
이데올로기 대립과 경제적 이익충돌, 정치외교적 주도권 쟁탈전이
여러 겹으로 중첩돼있는 동북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전쟁 발발 가능성이 월등하게 높다.
특히 독일과 같은 전범국가이면서도 자기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3류 국가 일본이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자들을 슬그머니 재무장시키고 합동 군사작전을 펼치며 해외로 군대를 파견하라고 부추기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있다.
그러니까 수상이란 자가 전몰자 위령제를 지내겠다며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독도에 대해 느닷없는 영유권분쟁을 벌이는 망동이 가능한 것이다.
이들 모두 또 다른 전쟁의 싹을 키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즉 이 지역에서 전쟁은 몇 개 안되는 선택지중의 하나이며, 가장 유력한 전장터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는 전쟁을 북구나 스위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가롭게 받아들일 상황이 아닌게 분명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된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그나마 확률 높은 방법은
모든 국민들이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일부 전쟁광들의 선동에 결코 흔들리지 않고 그 의도를 단번에 제압할 만큼
강력한 확신과 공감이 있어야 한다.
전쟁은 총칼로 죽기도 하지만, 승패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적 가치관과 윤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게 만듦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간다.
어떤 전쟁도 이 점에서 예외는 없었다.
가장 선량하고 부지런하던 민족을
가장 영악하고 무례하며 호전적인 사람들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지난 세기 백년동안
우리가 치렀던 전쟁들이 남겨 놓은 상흔임을 잊어선 안된다.
이 책의 두번째 초점은 연약한 한 소녀가 살인적인 공포의 나날속에서도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 나이 때에 겪어야할 근원적인 질문들, 즉 자신의 장단점 발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인생관과 존중해야할 가치, 나에 대한 주위의 평가, 꿈과 희망, 첫사랑, 종교관 등이
망라되어 있다. 석학들이 쓴 그 어떤 책도 이만한 깊이의 문제의식을 담지 못한다.
안네는 이들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전쟁과 도피라는 엄혹한 외부조건 때문에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고 실천하는데
절대적인 한계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 소녀는 결코 좌절하지도, 쉽게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일기라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역시 인간은 역경을 극복하면서 더욱 강하고 현명해진다.
어쩌면 그와 같은 비인간적 현실이 아니었다면
철부지 소녀에 불과했을 안네가 성숙한 인간으로서 도약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번째 초점은 앞서 간단히 언급되었던
일기라는 자아성찰적 글쓰기의 가공할 위력이다.
만약 안네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그안에 담겨있는 그 숱한 고민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안네보다 훨씬 넓은 활동반경에서 훨씬 많은 자극들을 받으며 큰다.
그러나 아이들의 일기를 보면 그들이 인식하는 세상은
매우 편협하고 따분하며 변화없는 일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아이들의 생각이 일상의 껍데기에서 부유할 뿐
결코 그 안을 깨고 들어가거나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깊은 생각과 창조적 글쓰기는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고전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하이퍼링크 방식의 지식 네비게이션을 통해
아이들에게 가차없는 지적 자극과 대리경험을 노출시키려 하는 의도도
일상의 벽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솔루션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고 스스로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짧은 생을 마감했던
한 소녀의 일기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그래도 인간은 위대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본성을 혐오하고 역사의 악순환에 좌절해도
작은 소녀가 품고 있던 희망은
판도라의 마지막 선물처럼 우리에게 조용한 믿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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