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선 포도주에 물 타 먹어야 문명인


권력자들의 만찬
로이 스트롱 지음ㅣ강주헌 옮김ㅣ넥서스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낙타의 발, 산 닭의 볏, 공작과 나이팅게일의 혀, 숭어의 간, 플라밍고와 개똥지빠귀의 뇌…. 3세기 로마의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연회에 초대된 손님들이 맛볼 수 있었던 별미들이다. 의자에는 백합, 제비꽃, 히아신스, 수선화를 뿌려 놓았고, 손님들의 머리 위에는 제비꽃잎 등이 비처럼 쏟아졌다. 연회 중간에는 수금 연주가, 가수, 배우, 어릿광대, 무희, 검투사가 등장해 참가자들의 입맛을 돋웠다.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 관장을 지낸 역사학자 로이 스트롱은 최고 상류층 연회의 4000년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인다. 음식과 연회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는 일종의 코드였다. 현대인들은 로마 시대의 연회를 퇴폐와 타락의 전형으로 생각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연회를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연회의 질서정연한 순서, 뛰어난 요리, 품위와 예절, 대화와 음악, 산문과 시의 낭송에서 근대성의 근원을 발견하기도 한다.


▲ 왼쪽 식탁에 앉은 귀부인들이 포크로 디저트를 먹고 있다. 이탈리아 상류층은 포크를 사용함으로써 소작인과 자신들을 구별 지으려고 했다.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나스타지오 데글리오네스티의 이야기’중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행위는 평등 관계의 표현이었다. 그리스인들의 연회에서는 식사와 술 파티가 철저하게 구분됐다. 식사가 끝나면 바닥을 닦고 손을 씻음으로써 술 파티인 심포지온이 준비됐다. 포도주는 반드시 물과 섞어 마셔야 했는데, 이런 관습 또한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짓는 특징으로 받아들였다. 어른은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포도주를 마셨고, 젊은이들은 똑바로 앉아 마셨다. 심포지온의 첫 순서는 사회자(심포지아크)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사회자는 참석자들이 나눌 대화의 주제, 연주해야 할 음악 유형, 무언극이나 춤의 종류를 결정했고, 이런 전통은 로마에도 전해졌다.

로마 시대의 연회는 개인의 성취를 가족이 보는 앞에서 과시하는 기회였다. 그리스 연회와 다른 점은 여자도 참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계급의 손님들과 주인이 식탁을 중심으로 동등하게 참여했으나, 공화정 말기에 들어서면서 계급에 따라 제공하는 음식에서도 차별을 두게 됐다.

중세 들어 최후의 만찬과 성찬식의 재현에 맞춰진 식탁의 의미는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또다시 바뀌었다. 금욕적 요리가 아니라 과일, 꽃, 눈부신 식기, 윤택한 음식을 차려서 모든 형태의 감각적 쾌락을 구현한 화려한 요리가 다시 등장했다. 17, 18세기의 연회는 모든 것이 절대주의 왕정의 치밀한 예법에 따라 이뤄졌다. 베르사유 궁에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지켜보는 자리에서 왕이 식사하는 행위는 매일 거행되는 중심의례 중의 하나였다.

프랑스 혁명은 과거의 특권적인 식사 관습을 깨트렸다. 바스티유 함락 1주년 기념일에 팔레 루아얄의 원형광장에서 국민의회 의원들은 관중 2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라를 위한 식사’를 했다. 오늘날 연회 장소는 왕궁과 귀족의 성, 부르주아 저택에서 고급식당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도 식탁은 여전히 특권의식의 장(場)으로서 그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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