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철(性徹.1912-1993) 큰스님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示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조계종 종정(성철스님) 법어(法語)

만사가 인과(因果)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무슨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우주의 원칙이다.
콩 심은 데 팥 나고
팥 심은 데 콩 나는 법 없나니
나의 모든 결과는 모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를 맺는다.
가지씨를 뿌려놓고 인삼을 캐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
인삼을 캐려면 반드시 인삼씨를 심어야 한다.

불법(佛法)도 그와 마찬가지로
천만사가 다 인과법을 떠나서는 없다.
세상의 허망한 영화에 끄달리지 않고
오로지 불멸의 길을 닦는 사람만이
영원에 들어갈 수 있다.
허망한 세상 길을 밟으면서
영생을 바라는 사람은
물거품 위에 마천루(摩天樓)를 지으려는 사람과 같으니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근본원칙이니
대도를 닦아서 불멸을 얻으려는 사람은
모든 행동을 이원칙에 비추어
일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을 위해서
나쁜 인과는 맺지 않아야 한다.
모든 일이 다 내 인과(因果) 아님이 없나니
추호라도 남을 원망하게 된다면
이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같이 못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만약 원망한다면
맑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울면서 거울 속의 사람을 보고는
웃지 않는다고 성내는 사람이다.
또 몸을 꾸부리고 서서
그림자 보고 바로 서지 않았다고 욕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사가 전생(前生)이건 금생(今生)이건 다
내 인과(因果)인 줄 깊이 믿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가 더욱 더 노력하여야 할 것이니
이래야 인과를 믿는 사람이라고 이름할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남을 해치면
반드시 내가 그 해(害)를 받는다.
만약 금생(今生)이 아니면 내생(來生),
언제든지 받고야 만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곧 나를 해침이고
남을 위하여 나를 해침은
참으로 나를 살리는 길이다.
- 성철스님 법어집 <자기를 바로 봅시다> 중에서 -

성철(性徹.1912-1993) 큰스님
성철스님은 1944년 문경 대승사에서 등을 바닥에 대지 않은 채 면벽수도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수행을 8년간 했으며, 1955년부터는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진암 토굴 속에서 10년간 은거하는 초인적 수행을 하기도 했다. 당시 자신의 거처
주위에 철조망을 둘러 사람의 접근을 막고, 심지어 안부가 궁금해 찾아오는 스님들에게조차 기와를 던지며 못들어오게
한 것은 불가에서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1968년 해인사 초대 방장에 취임한 성철스님은 줄곧 해인사 백련암에 칩거하며 참선만 했으며, 1981년 조계종 6대 종정, 1991년 7대 종정에 추대되었음에도 취임식에 조차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선수행에만 몰두하면서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속관은 합천 이씨(李英柱)로 1912년 2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유교집안에서 자라
단성보통학교를 거쳐 진주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20세에 전주 이씨와 혼인하여 따님이신 불필스님을 둔 젊은 시절에
사상적으로 방황하던 그는 불경에 이끌려 지리산 대원사에 들어갔다. 처자까지 거느린 그를 받아 주지 않자 탑 앞에
자리를 깔고 참수행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이야기를 들은 해인사 동산(東山)스님이 그를 데려오게 하여
성철(性徹)이란 법명을 주었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출가를 극력 반대한 모친과의 일화도 유명하다. 성철스님이 금강산에 들어갔을 때 그의 모친이 자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속세와의 단절을 위해 산 위에 올라가 어머니를 접근하지 못 하게 돌을 던졌다고 한다.
이에 모친은 "너 보려고 안 왔다. 금강산 구경하러 왔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님은 1993년 10월 해인사 백련암에서 열반에 들었다. 그는 어지럽던 한국불교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가야산 호랑이였고, 한국불교의 얼굴이었다.
출처:山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