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의 벽에서 나약함 드러내는 현대인

로드 짐
조지프 콘래드 지음ㅣ이상옥 옮김ㅣ전2권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입력 : 2005.03.18 18:16 35' / 수정 : 2005.03.18 18:30 15'


▲ 조지프 콘래드는 정교한 심리분석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범죄보다 더한 나약함이 인간세상에서 치명적인 경우가 있다. 낭만적이고 양심적이며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 하더라도 현실 속에서 불행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은 현대인의 운명이기도 하다.

소설은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동남아를 항해하던 기선 한 척이 조난하자 간부 선원인 짐은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외면한 채 다른 간부들과 함께 구명정으로 탈출한다. 이후 그 기선이 침몰하지 않았음이 밝혀지면서 짐은 선원 수칙을 저버린 데 대한 책임으로 선원 자격증을 박탈당하고 동남아 해안가를 떠돈다. 동남아 오지에 정착한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지배자적 지위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바깥세상에서 찾아온 해적 일당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후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소설 전개만 보면 심플한 스토리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그러한 행동에 이르게 된 주인공 짐의 성격과 심리상태이다. 어릴적부터 로맨틱한 문학작품을 탐독했던 짐은 스스로 작중 주인공과 같은 인물이 되기를 꿈꾸었고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간부 선원을 지망했다. 그러나 꿈과 현실 간에 커다란 장벽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 순진성과 낭만성은 세파에 부닥칠 때 불행과 좌절의 씨앗으로 탈바꿈한다.

짐은 배가 침몰하려고 할 때 800명의 승객이 벌이게 될 아수라장 속의 아비규환을 상상하자니 견딜 수가 없어 승객들을 버리고 배에서 뛰어내리고 만다. 그를 배에서 탈출하게 만든 것은 그의 상상력이었다. 그의 로맨틱한 성격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하며 결국 인격적 분열이나 파멸로 이끄는 요인이 된다.

짐은 굳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심성을 가진 현대인을 잘 대변한다. 해사(海事) 심판관은 짐에게 선박을 버린 책임을 추궁하지만, 정작 짐에게 절실한 ‘삶의 진정한 본질에 관한 미묘하고도 중대한 시빗거리’에는 관심이 없다. 짐의 마음속 움직임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 판단하는 심판관의 관여 사안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만, ‘침묵과 정적으로 된 신비의 바닷물 속에 반쯤 잠긴 채 손에 잡히지 않고 떠도는 정체 불명의 절대적 진실’에는 좀처럼 접근하기 힘든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현실에 나타나는 결과는 그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행위가 지난 도덕적 의미를 명쾌하게 드러내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단지 로맨틱한 인물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자족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세태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짐을 만난 여러 사람의 눈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리는 서사방식을 택한다. 진실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실체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건의 결과를 미리 알려주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이러한 서술 기법은 파도 위 낙엽처럼 흔들거리고 불확정적인 현대인의 심성을 형상화시키는 데 유효하게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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