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친구로 만든 인간적인 대통령
반대편도 과감히 기용
빛나는 '유머감각' 무기
어릴땐 심한 근시로 왕따
미국을 연주한 드러머, 레이건/마이클 디버 지음/정유섭 옮김/열린책들
작년 6월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은 드물 것 같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거나 젊은 시절을 보낸 한국의 30~40대에게 레이건 전 대통령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무기 삼아 패권을 행사하는 서부의 카우보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냉전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주역이 바로 레이건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부터 참모로서 20년간 레이건을 근거리에서 보좌한 마이클 디버는 레이건이 과소평가돼 왔다고 주장한다. 레이건의 인기는 정치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의 신념과 결단력, 개인적인 매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먼저, 레이건은 반대편 진영에 있는 인물이라도 최고의 인재라면 끌어와 썼다. 1980년 백악관 비서실장에 임명된 제임스 베이커 3세가 대표적이다. 제임스 베이커는 1976년 레이건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겨뤘던 포드의 선거 운동에 참여했고, 1980년 선거에서도 레이건의 상대 진영에 속했다. 공화당원 중 가장 레이건 편이 아닌 사람을 꼽는다면 여기에 들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임스 베이커를 백악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임명했고, 베이커는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레이건은 토머스 오닐 하원의장과 댄 로스텐코스키 등 정치적 견해가 다른 민주당 인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이들은 적이지만 서로 존경했고, 항상 공격을 멈춰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같은 아일랜드계였던 오닐 의장의 일흔 번째 생일 때는 관저에 초대해 식사를 마친 후, 이렇게 얘기했다. “만약 내가 천국으로 가는 차표를 갖고 있고, 당신이 갖고 있지 않다면, 내 차표를 팔아버리고 당신을 따라 지옥으로 가겠소.” 상대가 감동한 것은 당연하다.

▲ 냉전을 종식시킨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로널드 레이건. 작년 미국에선 그의 타계를 추모하기 위해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조선일보 DB | |
배우 출신이자 라디오 진행 경험도 있던 레이건은 대중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유머 감각은 중요한 무기가 됐다. 1980년 대통령 선거 당시 레이건은 카터 행정부의 경기 침체를 이렇게 빗댔다. “불경기는 당신 이웃이 직장을 잃는 것이고, 불황은 당신이 직장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기 회복 시점은 지미 카터가 직장을 잃는 때입니다.” 최악의 순간에도 그의 유머는 빛났다. 1981년 정신이상자인 존 힝클리에게 저격당해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아내에게 한 첫마디는 이랬다. “여보, 내가 몸을 숙이는 것을 잊었어.”
레이건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레이건도 어린 시절 근시가 심해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레이건은 훗날 디버에게 “나는 안경을 쓸 때까지 칠판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왕따였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낸시 레이건은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글을 쓰기에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직접 머리말을 썼다. 레이건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이 책이 긍정적인 기술로만 일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에 대한 선입견에 상관없이 한 시대를 만들어낸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