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라 비웃지 말라 문명의 모태는 어리석음이니
이경식 옮김/ 유먼 앤 북스
“한 농부가 경매 시장에 가서 형편없는 소를 팔았다. 경매꾼은 그 소를 되팔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감언이설로 소 자랑을 늘어놓았다. 원래 그 소의 주인이었던 농부가 그 말에 현혹돼 팔 때 받았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그 소를 되사갔다.”
“한 농부가 백사장에 고래가 떠밀려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바닷가로 달려간다. 그러자 농부도 그들을 따라 (고래를 구경하러) 함께 달려간다.”
첫 번째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는 습관의 힘이 지닌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농부라면 누구나 훌륭한 소를 원하다는 것을 이용한 경매꾼에게 당한 농부의 이야기다. 두 번째 어리석은 농부는 상상력의 어리석음이다. 이 농부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종종 자신의 환상에 빠지기 쉬운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 바보 멍청이를 형상화 하는 피에로들의 무언극. 피에로를 보고 웃는 당신도 누군가의 눈에는 피에로처럼 보일 수 있다. | |
“어떤 바보들이 마을회관을 짓기로 하고, 산꼭대기로 가서 목재로 쓸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다. 필요한 만큼 나무를 베어낸 바보들은 통나무를 아래로 날랐다. 이 과정에서 바보들이 통나무 하나를 실수로 놓쳤다. 통나무는 데굴데굴 굴러 마을까지 내려갔다. 힘 하나 들이지 않았는 데도 통나무는 저 혼자 애초에 목표했던 지점까지 굴러간 것이다. 이걸 보고 바보들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통나무를 들고 내려가는 것보다 굴리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 바보들은 그때까지 들고 내려온 통나무들을 모두 다시 산꼭대기로 들고 올라간 다음, 거기에서 굴려 내려보냈다.”
통나무를 산 아래로 힘차게 굴리면서 환호성을 짓는 바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바보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는다. 웃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더 즐겁게 웃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 어떤 점에서는 바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온갖 우화와 실화들을 모아서 유형별로 분석한 이 책은 ‘인간은 역경을 거치면서 현명해진다’는 명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통나무를 낑낑 거리며 날랐던 바보들이 통나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굴리면 덜 힘들다는 것을 깨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지성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고안한 문명과 제도는 어리석음의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을 존중하는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이다. 그러나 법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최상의 정부 형태”라고 플라톤은 ‘이상국가’에서 말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 역사가 진보했다고 하지만, 인간이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거쳐야 할 진화의 단계가 남아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헛똑똑이’라는 것이다.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니코틴 함량이 낮은 담배를 개발했더니 담배 소비량이 두 배로 늘어났고, 종이 없는 사무자동화를 위해 컴퓨터가 도입된 이후 사무실에서 출력되는 종이 양이 더 늘었다. 네덜란드에서 ‘바보학’을 연구 중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는 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어리석음을 제거할 수 없다. 인류는 어리석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어리석음을 다룰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는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어리석음은 우리 문명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멍청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지식의 집대성을 대표하는 백과사전을 표방한 이 책은 어떤 독자가 읽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심심풀이 유머집으로 읽힐 수도 있고, 인간 본성의 실체를 풍자적으로 다룬 인문 교양서로도 읽힐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어떤 독자가 더 똑똑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