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11세기 기사단의 심볼과 현재 프리메이슨이 사용하고 있는 기사단의 심볼)

11세기, 영국에서 기독교의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날 당시, 로마의 교황청은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올 교황과 귀족들을 보호하기위해 각 나라마다 가장 용맹 스럽고 의리있는 기사들을 모아, 기사단(KnightsTemplar)라는 비밀 경호단체를 만들게 됩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기사들이 주체로
되어있던 기사단의 전통은 약 300여년간 유럽전역을 돌아다니며 기독교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참가
하였다고 하나, 1312년 기사단의 전통을 두려워 하기 시작한 불란서의 필립왕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1312년부터 1314년까지 지중해에 원정을
다녀온 기사단 멤버들을 하나둘씩 잡아들여 모두
비밀스럽게 처형을 시켰다고 합니다.

당시 아랍과 터키등지로 원정을 나가있던 기사단은 프랑스에서 자신들의 단체가 필립왕에 의해 모두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기사단이 순례원정을 나갈수없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림설명: 1314년 3월 18일 필립왕에 의해 마지막으로 처형된 기사단들의 모습)

당시 성배를 보관하고 있던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성주 야곱은 수백년간 이스라엘을 보호해준
기사단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예수의 피가 적셔진
성배를 전달하게 되었다고 하며, 성배를 넘겨받은
기사단은 더 이상 믿을수없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등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사해(死海)의 깊은 사막의 계곡속에 성배를 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왕실들은
성배의 소식을 듣고 기사단의 생존자들을 찾아다녔다고 하나, 마지막으로 남은 기사단들은 모두 비밀을 지킬것을 맹세한뒤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1416년 이스라엘인들로 부터 기사단들이 남겼다는
사해문서를 넘겨받은 영국의 왕실은, 성배를 찾으러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있는 사해에 新 기사단 십자군을 원정시켜 문서에 있는 계곡을 찾을수
있었으나, 끝내 성배는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림설명: 영국의 프리메이슨들이 보관하고 있는 성배와 관련된 중세시대 기사단의 문서)

그후, 신대륙의 정착민들에 의해 널리 퍼지게된 프리메이슨의 종파 "요크 라잇"은 기사단의 전통을 받아 영국의 귀족 혈통 계승자와 기독교인 멤버들만을 기사단의 단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그때부터 수여받은 새 메이슨 기사단의 임무는 메이슨의 비밀을 보호하고 과거에 사라진 성배를 찾는일이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 있는 메이슨의 조직은 모두 요크라잇의 새로운 메이슨 전통을 비난하였고, 그들은 요크라잇계의 메이슨그룹에게 1314년 마지막으로 처형된 기사단의 멤버들이 모두 프랑스와 스페인계 기사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지말라는 경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현재까지 이어진 요크 라잇의 기사단 전통은
1700년대 급속도로 번진 유럽의 왕실간 혼례
전통에 의해 많은 나라들로 전파되었다고 하며,
현재 가장 큰 규모의 기사단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이라고 합니다.



(그림설명: 현재 성배가 보관되고 있다는 전설이 있는 사해(死海) 근처 14세기 기사단의 기지)

영화 인디아나존스 3에는 나치의 독일인들이 기사
단의 성배를 찾아 요르단을 방문하는 장면이 등장
합니다.

인디아나존스에 등장한 나치의 성배탐사가
실화에 배경을 두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1930년대 히틀러가 친위대에게 수여한 명칭이
"기사단"이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2차세계대전후 연합군의 전범 수사망을 피할수
있었던 레닌그라드의 악막 겔렌
역시 독일
친위대의 비밀결사대 기사단 멤버였다고 하며,
전쟁후 아무런 형벌없이 여생을 보낼수있었던
그는 유럽과 미국의 정부 핵심멤버속에 퍼져있던
기사단 결사대의 보호를 받을수 있었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기사단이 찾고 있다는 성배는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까요?

그들이 성궤와 성의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일까요?
출처:봄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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