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畵傳)

청년사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미술평론가 최열씨가 펼치는 근대 200년 우리 화가 이야기. 조희룡부터 이응노까지 28인의 화가가 나온다. 점잖고 고고한 그림 이야기가 아니다. 전환과 격동의 시대였던 19~20세기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갈등하고 고뇌했던 예술인의 치열한 삶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추사 김정희가 ‘문자의 향기가 없다’고 내쳤던 조희룡에서부터 책을 시작하는 저자는 ‘사대부 김정희의 눈으로 보지 않고 중인 조희룡의 눈’으로 본 미술사에 무게를 둔다. “순수 미술의 신화 탓에 회화사는 어디로 가고 오직 김정희만 눈부시다”며 “중인과 사대부 출신을 가리지 않고 개성을 힘차게 밀고 나간 19세기 화단”을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이색적 화풍과 신감각이 매혹적인 김수철·치밀한 연구 끝에 그려낸 나비 그림으로 유명해 ‘남 나비’로 불렸지만 정작 자신은 일생을 꽃 밑에서 보내는 나비를 증오했다는 남계우·무너져 내리는 세기말의 현실 속에서 ‘뒤틀린 양식’을 보여주는 장승업…. 책에는 저자가 ‘지나치게 아름답다’고 평한 홍세섭의 ‘영모 8폭 병풍’, ‘재주는 봄꽃처럼 빼어나고 성품은 가을 국화처럼 맑았다’는 전기의 화사한 ‘매화초옥도’, 절망과 분노를 담은 인물화로 유명한 채용신이 그린 털모자를 쓴 최익현상, ‘내게 그림 선생은 없다. 감옥에서 스스로 얻었다’ 했던 항일투사 김진우의 대나무 그림 등 작품이 가득하다.


▲ 채용신의 '최익현 상'(1905). 절망과 분노를 전달하는 '억센 초상'이라고 평론가 최열은 말한다.
오지호 이인성 유영국 변관식 김환기 이중섭 박생광 이응노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거장들도 등장하지만 월북 화가 정종녀·김주경·이쾌대를 비롯해 윤희순·정현웅 등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들도 나온다.

‘이식과 모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20세기 전반 한국 미술사를 두고 저자는 “이식과 모방을 거쳐 곧장 독창과 창조의 길을 걸었던 것”이라며 “이처럼 독창과 창조의 길을 재빨리 걸었던 역사를 지닌 나라가 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화전’ 속 화가들은 ‘깨끗하고 맑은 세계가 아니라 땀이 흐르는 세계’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개화·망국·식민지·해방·전쟁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은 왜 그리 치열하게 그리고 또 그렸는가. 척박하고 비정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워낸 화가들의 이야기를 미술책치고는 드물게 격정적인 문체로 소개하는 저자의 열정에 독자도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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