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제국주의 시대 헤쳐갈 민족공동체 사관 가르쳐야"


현암사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 정옥자 교수는“전쟁 통에 아버지와 동생 셋을 잃고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여러 사람들 도움을 받았고, 교수로서 정년을 앞둬 빚을 갚은 듯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주완중기자 (블로그)wjjoo.chosun.com
“공부가 가장 쉽고 편했다”는 정옥자(62)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말엔 역설과 비감이 서렸다. 춘천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6·25를 맞았던 정 교수는 피란길 청평호수에서 아버지가 세 여동생을 안은 채 배 아래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 광경을 바라봐야 했던 비극적 가족사마저 남김없이 털어 놓는다. “식솔이 많았던 부친이 아내와 큰딸에게 짐을 덜어주려 번민 끝에 결행했을 거예요. 감정적으론 깊은 상처로 남았지만, 이성적으론 이해할 일이라는 생각이 나이들수록 고개를 들더군요.”

정 교수의 이번 책은 이렇듯 체험과 사실(史實)을 섞은 자전적 역사 에세이다. 신문·잡지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아 낸 이 책에 대해, 저자는 “경박한 책”이라면서도 “실증적 자료만으로도 엮을 수 있는 논문과 달리 균형감각과 분명한 메시지를 녹여야 읽히는 잡문(‘전공 논문 이외의 글’을 뜻하는 학자들 용어)을 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 사학과 졸업 후 고전에 푹 빠져 지내면서 박지원이 설파한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함)’의 가치를 재음미했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마라’(논어) ‘세속적인 쓰임새는 목숨을 앗아갈 수 있으니 자연에 순응해 청정한 자신의 삶을 실현하라’(장자) 같은 가르침은 곱씹을수록 와닿는 시공 초월의 진리였다.

소녀 적 틈틈이 문단을 탐했던 저자는 역사의 웅숭깊은 진미를 느껴갔고, 결혼 10년이 지나 아들 둘을 기르는 형편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여자가 교수되는 게 쉬운 줄 아냐”는 주변의 걱정 섞인 충고에 “뒷일 계산은 없고 그저 학업을 잇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1999년부터 만 4년간 규장각 관장을 지냈다. 문화적 자존심을 절정에 올려 놓았다고 평가하는 정조(正祖)와, 그가 혁신과 문치(文治)의 중추로 삼았던 규장각에 대한 저자의 정은 각별하다.










저자는 정조에 대해 “개인적 슬픔(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학문으로 승화해 꽃피운 ‘인간’이었다”고 적어 연민을 표했고, 규장각 관장을 지냈던 경험에 대해선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일반인이 다가설 수 있도록 역사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 ‘후대에 역사가 평가하리라’ 식 구호와 호언이 난분분하는 데서 보듯, ‘역사’란 단어는 헐값으로 전전한 지 오래다. “과거사 규명·청산은 명분상으로도 옳고 정체성·양심 회복을 위해 필요하지만,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정쟁 도구나 공격 무기로 오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진실 규명에 역사학자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조차 오해와 격한 비난을 받을 정도로 가치혼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중·일 ‘역사 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중국은 ‘제국’을 추구해 왔고 중국 내 한민족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영토논쟁을 차단하려는 입장이 분명히 있습니다. 차분하게 준비하지 않고 ‘애국’과 ‘구토(舊土)회복’이란 명분 아래 극단적으로 사고·행동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역사는 저울추 같은 균형감각이 필요하고, 역사교육은 양(量)이나 해석의 문제를 넘어서 질(質)과 사실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려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은 신제국주의 시대 마지막 남은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역사고, 그렇기 때문에 민족이기주의에 대해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정년을 2년여 앞둔 저자는 “은퇴 후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고 했다. 퇴임 후 재미와 자유를 만끽하면서 대중적인 ‘역사 읽기’ 책들을 써 내고 싶다고 저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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