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눈빛을 들여다보다
▲ 야스나야 폴랴나의 서재에 있는 톨스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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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말년은 파란만장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슬프고도 감동적이다.
전통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아내를 부인으로 맞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대작을 써내고 온 세상이 그 명성에 고개를 숙이던 시절, 톨스토이는 스스로 "한량없이 행복하다"라고 쓸 만큼 더 바랄 게 없이 자신만만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렇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가던 어느 날, 죽음의 공포를 겪으며 이른바 '내적 위기'를 거친 톨스토이는 문득 인생과 신앙의 어두운 심연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방탕한 인생을 뼈아프게 까발리는 '참회록'을 쓰고 종교·도덕·교육·혁명 등 인생과 사회의 밑바닥에 도사린 위선과 부조리에 대해 신랄하게 발언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의 사상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자칭 '톨스토이주의'라는 이름으로 주변에 모여든다. 하지만 평생의 반려였던 아내는 돌연 가족을 외면하고 남은 생을 순결과 청빈에 바치려는 그의 '회심'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기득권과 재산을 지키려 투쟁을 선포한다. 그리하여 결국 톨스토이로 하여금 부대끼는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는 불행한 시도를 하도록 몰아가고, 그는 낯선 간이역 아스타포보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 말년의 톨스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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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은 그 거대하고 처절한 균열의 틈바구니에 낀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과 목소리로 톨스토이의 만년을 들려주는 책이다. 전쟁 같은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비겁하게 외면하지 않고 관통해낸 톨스토이의 고뇌, 그리고 그 필사적인 삶을 더불어 감당해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 제이 파리니는 역사 속 위대한 작가들 가운데 만나고 싶은 작가로 레프 톨스토이를 첫손에 꼽을 만큼 톨스토이의 팬이다. 그는 나폴리의 고서점에서 만년의 톨스토이와의 생활을 기록한 발렌틴 불가코프(톨스토이 말년의 비서)의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그 밖의 톨스토이 관련 회고록과 일기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으며 이 책의 영감을 얻었다. 그리하여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톨스토이의 생애 마지막 몇 년을 1910년의 몇 개월로 압축하여 한 편의 소설로 재구성하였다.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말년에 집중되어 있지만, 소설은 톨스토이의 총체적인 모습을 만나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다. 애마 델리스와 산책을 즐기고 음악과 체스를 좋아하던 소소한 일상부터 젊은 시절 성 편력에 대한 반성과 호사스런 생활을 괴로워하면서도 떠날 수 없었던 고뇌까지 톨스토이와 함게 생활하며 가장 내밀하게 교감했던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
"아빠는 매일 아침 내가 깨끗이 옮겨 써서 가져다주는 원고에 찬탄한다. 비록 단어들을 지우고 새로운 구절이나 문장 전체를 끼워 넣고, 여백이나 행 사이에 단락들을 집어넣어 그것을 금새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는 하지만..." (톨스토이의 막내딸 사샤)
"톨스토이의 글에서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과 또 그 밖의 다른 많은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짙은 소문의 연기가 레프 톨스토이라는 이름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고 나는 가능한 한 그 연기를 맡아보려고 애썼다" (말년의 비서 불가코프)
"그는 항상 챙겨 주고 돌봐 주어야 하며, 제자라며 매일 같이 찾아오는 미친 작자들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으면 안 될, 노년기에 접어든 어린아이 같다"(아내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더불어 지인들과 나눈 대화는 물론 직접 인용된 톨스토이의 편지, 일기, 저작 등을 통해 그의 사상도 엿볼 수 있다. 길로틴 사형 집행을 목격한 뒤 갖게 된 서구 문명에 대한 절망과 사형에 대한 환멸, 사냥과 살생에 매혹되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 신발조차 없는 사람들이 무수한데 자동차가 수천 루블이 나가는 현실과 기계 문명에 대한 개탄, 교조주의적인 종교에 대한 비판과 무정부주이적인 기독교로의 회귀 등 온갖 허위와 부패를 배격한 톨스토이의 사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평생을 걸쳐 엄격한 자기완성 욕구와 끝없는 회한으로 괴로워한 톨스토이. 그에게 있어 평온, 그것은 정신의 비열함을 의미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치열한 정직함으로 응시한 이 시대 가장 지혜로운 눈빛을 이 겨울 가만히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를 성찰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