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가꾸어야 한다"
이한중 옮김/ 나무와 숲/ 446쪽
조영남·가수
▲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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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더러 강이 되어 보라면 나는 어떤 강이 될까. 아마 북한산에서 내려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 영동대교 밑을 흐르는 강물이 될 것이다. 만약 나더러 나무가 한번 되어 보라면 나는 옹이가 없는 미송, 소나무가 되고 싶다. 어느 가난한 아저씨가 손수 만드는 응접 테이블이나 식탁 재료가 되기 위해서다. 나더러 꽃이 한번 되어 보라면 내 얼굴처럼 생긴 꽃은 안 된다. 지금은 거의 잊힌 내 첫사랑 여인을 닮아서 그 꽃들이 언젠가 시집가는 내 딸아이의 손에 쥐어질 회사한 꽃이 되어야 한다. 헛소리하는 게 아니다.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는 책을 읽으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9월 말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 초청으로 7박8일 동안 일본을 둘러본 얘기를 책으로 낸다고 부랴부랴 원고지를 메우다가 찾아낸 이 책은 우선 제목이 요즘 말로 죽음이었다. 세상에 책 제목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책장을 넘겨 보니 원제목은 많이 달랐다. ‘The Japan We Never Knew’, 우리말로 ‘우리가 몰랐던 일본’이었다. 데이비드 스즈키와 오이와 게이보라는 두 사람이 쓴 책으로, 캐나다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을 번역자에게 소개한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의 오강남 교수는 ‘예수는 없다’라는 과격한 제목의 책을 썼지만 마음은 비단결 같은 사람인데 이 책을 책방에서 발견하고 읽다가 다리가 아파 책을 사 들고 집에 와서 다 읽었다고 이 책 맨 앞 추천서에 썼다. 책을 쓴 데이비드 스즈키는 일본계 캐나다인으로 지금도 TV 방송 진행자로 신망을 받고 있는 생물학자 겸 환경보호운동가이고, 오이와 게이보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분의 1 한국계 일본인으로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메이지 가쿠인 대학에서 국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게이보는 희한하게도 30세 때 자기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해서 30년 동안이나 자기 아버지가 한국 사람인 걸 몰랐을까. 그런 두 저자의 기구한 삶부터 흥미롭다.
환경운동가나 혁명가가 통상 무모하게 보이듯이 두 저자도 젊은 체 게바라가 친구와 함께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한 바퀴 돌듯이 남들이 생전 들여다보지 않는 변두리 일본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누가 일본을 망가뜨렸는지, 누가 망가지는 일본을 못 망가지게 방어했는지 묵묵히 채집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해자들이 동정을 받기는커녕 그 지역 사람들에게조차 노골적인 천시와 따돌림을 받는다는 얘기부터, 어느 일본 초등학교 선생님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고 가꾸어야 한다며 어린아이들에게 강이 되어 보고 나무가 되어 보고 예쁜 꽃이 되어 보라고 가르친다는 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가 마치 이효석, 김유정의 소박한 단편처럼 줄줄이 꿰어져 있다. 그리고 저자들은 친절하게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본의 후미진 곳에서 지구를 지키며 인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본분을 따라 무명용사처럼 소리 없이 없어져 갈 증언자들의 얼굴을 흑백사진으로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크기로 보여 주고 있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나는 일본에 관한 글을 쓴다고 유심히 일본에 대한 책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일본 전체를 덮고도 남을 만큼 책의 가짓수가 많았다. 나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는 명저를 옆에 두고 친일파 야스쿠니, 밤의 향락 문화, 한류 열풍이 어쩌고저쩌고 쓰던 내가 너무도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 순간까지 자연과 환경에 관한 문제를 우리 집 일하는 할머니한테 일임해 왔지만, 책을 읽고 난 다음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능력만 된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13층짜리 아파트를 몽땅 구입해서 부숴 버리고 배나무 밭을 일구겠다. 원래의 한강변 그대로 말이다. 그것도 부질없는 생각이라 나는 홧김에 되묻는다. 강아, 나무야, 꽃아, 네가 사람이 돼 보렴! 무심히 관습법에 매여 사는 우리 현대인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