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현대를 오가며 지적 유희를 즐긴다
임호경옮김/ 열린책들/328쪽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이름 그대로 다양한 반향(反響)을 불러일으킨다. 기호학자, 중세사학자, 미학자, 대중문화 비평가 등등으로 활동해 온 에코는 전 세계적으로 1500만부 이상 팔린 소설 ‘장미의 이름’의 작가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학자 자크 르 고프는 “에코의 천재성은 중세와 오늘날 사이, 그리고 오늘날과 중세 사이를 끊임없이 (명시적으로 혹은 가면을 쓰고) 오가면서, 그러면서도 각 시대 고유의 특질을 왜곡함이 없이 진정성과 진실의 분위기 속에서, 작은 공들을 던지고 받으며 뒤섞기를 계속하듯 절묘한 시간의 곡예를 해나가는 데 있다”고 일찍이 설파한 적이 있다.
이처럼 백과사전적 지식인의 전형을 과시하는 에코의 정신 세계를 조명하는 작업이야말로, 인류의 지적 유산을 소장 중인 거대한 도서관(보르헤스가 말한 ‘바벨의 도서관’)에서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다. 이탈리아의 젊은 철학자가 에코의 세계를 미학·기호학·문학으로 3등분해서 쓴 평전인 이 책은 에코라는 거대한 도서관을 공략하겠다고 나선 지적 모험의 기록이다.
에코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라는 철학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을 때부터 중세는 에코에게 지적 생산의 요람이었다. “중세란, 과거에 숨어있는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한 병력 구술(病歷 口述)을 위해서는 항상 되돌아와야 할 우리의 어린 시절”이라고 에코는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중세 미학이 제임스 조이스라는 20세기의 작가를 통해 재현되는 과정을 규명하면서 중세를 재평가하고, 현대의 신화를 파괴하는 인식의 지평을 열어놓았다.
이 책에서 에코의 취향은 ‘유쾌한 지식’ ‘기호의 노래’ ‘언어의 승리’라는 소제목에서 잘 요약된다. 심오한 형이상학을 경쾌한 언어로 풀어내면서 수많은 책과 기호들을 통해 드러나는 우주적 본질의 세계를 향한 인간 이성의 열망이야말로 에코가 그토록 찬미하면서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통해 추리 소설이야말로 형이상학이라는 신념을 실천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평전에서 딱딱한 미학과 기호학 강의가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에코의 소설들에 대한 일화를 곁들인 평론만 읽어도 충분히 지적 포만감을 누릴 수 있다. 에코 애독자들에게는 마치 에코가 꿈꾸는 상상의 도서관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미로를 즐겁게 헤맬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