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저자 신동원
역사비평사/ 376쪽
호열자(虎列刺). ‘호랑이가 살점을 찢는 듯한 고통을 준다’는 이 병은 바로 콜레라다. 지금이야 거의 잊혀진 병이지만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의 병이었다. 의원도 약도 다 소용이 없어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거나 부적을 태워 먹기도 했다. 그러다 검역과 소독, 예방접종이 등장했다. ‘근대’의 이름으로 다가온 방역대책이었지만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책의 주제는 ‘고통’입니다. 시체와 약병과 장애의 고통스러움을 기억해 내는 작업이죠. ‘고통받는 몸의 역사’는 우리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기존 역사학계에선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신동원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연구교수가 쓴 이 책에서 역사는 더 이상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당대의 일상을 복원하는 ‘느낌과 공감’의 매개체다.
한의학과 서양의학·보건학은 물론 문학·어학·민속학과 불교 회화, 판소리 등의 폭넓은 분야가 등장하고 많은 사진 자료들이 새로 공개되는 과정에서, 장기지속적인 사회사와 생활사의 여러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부에서 자연과학을, 석사과정에서 보건학을, 박사과정에서 과학사·과학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아니라면 나오기 어려운 책이다.
전통과 문명의 한판 승부가 펼쳐졌던 1895년의 단발령은 ‘위생’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이 사건은 수천년 동안의 관습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위생 담론의 지위가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뱃속의 딸을 아들로 바꾸는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은 무려 200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동의보감’에서조차 그 비법을 소개했다. 남아를 선호하는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의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이 방법은 지금도 모습을 바꾼 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책은 또 ‘변강쇠가’를 통해 성(性)과 병과 주검의 문화가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내는가 하면, ‘심청전’을 통해 전근대사회 장애인의 삶을 분석한다.

▲ 신동원 교수는 "고통스러운 몸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담긴 '일상의 역사'를 짚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대전=전재홍기자 | |
신 교수는 ‘근대성’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일제는 ‘세균’을 눈으로 보여줌으로써 ‘위생’의 이름으로 식민지 조선을 통제했습니다. 생활양식이 변모했고 사망률이 감소했지만 과연 그 양(量)의 변동 자체에 큰 가치를 부여해야 할까요?” 물리력을 통해 이뤄진 이 ‘근대화’는 거대 식민권력의 억압적인 통제를 의미하고, 과학을 내세운 권력의 감시를 참아내는 것이 바로 ‘근대’인 것처럼 우리에게 각인됐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의학사적 측면에서의 비판이기도 하다.
‘근대성’에 대한 의학적인 도전은 이미 1930년대에 나타났다. 1934년 조선일보는 무려 9개월 동안이나 한의학과 서양의학 사이의 논쟁을 지상에 연재한다. “일제가 내걸었던 서양의학을 통한 건강개선이나 선진적 의료혜택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 논쟁을 통해 한의학과 전통의 가치가 새롭게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됐던 것이죠.” 신문 편집자가 이 논쟁을 중시했던 것은 당시 조선을 관통했던 과학과 근대성에 대한 반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