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새벽에는 황혼이 노래하고 있다

이정순 옮김/ 빛무리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너무 강렬해서 폭발해버리는 줄 알았어/ 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모르겠어/ 나는 멀리 내 자신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어/ 너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어/ 내가 길을 잃는 것보다/ 너를 잃을까 봐…(89쪽)’

원제는 ‘Tous les matins de l’amour ont un soir’이다. ‘사랑의 모든 아침은 다가오는 낮보다 더 환하고 찬란한 새벽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사랑의 저녁은 이윽고 덧없는 밤에 다다른다’는 뜻이다. 툴 레 마탱 드 라무르 옹 텅 수아.

이 소설은 사랑에도 봄과 가을이 있고, 사랑에도 아침과 저녁이 있다는 숙명을, 차라리 순명(順命)을 가르친다. 사랑도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다. ‘영원히’라는 전망은 사실은 초조함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사랑에 봄이 있다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만물 가운데 처음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듯이, 사랑의 겨울도 있는 것이다. 풋풋한 떨림의 시기, 애욕과 관능의 지배로 영육을 불태워가던 시기, 숱한 결별들로 단련된 성숙의 시기가 있는 것처럼 사랑도 일생(一生)을 산다. 끝 무렵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새벽에는 황혼이 노래하고 있다’(93쪽)는 걸 깨닫는다.


▲ 소설 속 주인공 장(Jean)이 '사랑은 무궁무진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만났던 여인의 모습이다. 이책 41쪽에 있는 정혜선씨의 그림.
‘나는 천국에 잘못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늘 외방인이었다. 사랑으로 인해 서로를 더 이상 증오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더 이상 소유하지 않기 위해.’(127쪽)

주인공의 절도 없는 열정, 때로는 기품있는 고뇌 때문에 독자는 당혹스럽다. 이 소설은,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까, 차라리 사랑의 잠언시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이 소설은 주인공 장(Jean)이 일곱 살 무렵 처음 만나는 마리옹(Marion)이라는 소녀에서부터 나중에 몸과 마음이 많이 자란 후 애무와 유혹과 비탄과 신음과 급기야 슬픔과 향수를 알게 되고, 그래서 ‘마지막 사랑’이라고 여기는 이반느(Yvane)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두 여인을 만나는 얘기다. 스토리는 숨고 대신 의식과 성장(成長)의 넝쿨이 독자를 감싼다.

프랑스 통계에 프랑스 남자가 일생을 통해서 만나는 여인이 평균 열두 명이고, 프랑스 여인이 일생을 통해 만나는 남자가 평균 여섯 명이라고 돼 있다. 몇년 전이지만…. 설마 저자 살로메(Jacques Salom )가 이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작가 시인 자크
‘내게 있어 사랑은 살아있는 것인데, 사랑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변해간단다. 그것은 계절과 비슷한 것이지. 네 아빠와 나, 우리는 사랑의 봄을 살았고 그 다음에는 여름, 너희들로 결실을 맺는 여름을 살았어. 지금, 나, 나는 사랑의 가을에 있는 것처럼 느낀단다. 사랑은 그와 같은 것이야.’(24쪽)

바닷물 한가운데 떠서 갈증으로 고통받는 뗏목처럼 수음에 지쳐 사랑의 본질을 묻는 청년기 아들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대답들이 가장 고결한 문장으로 결빙돼 있는 책이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한때의 열정일 뿐이라고 믿었던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마침내 변하지 않는 사랑의 문턱에 도달하려고 통과해온 저 모든 나라의 꿈과 현실’(177쪽)에 대해, 왜 사랑은 태양의 푸른빛을 닮았는지(26쪽) 설명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이 책을 권하는 것밖에 없다. ‘저녁의 지평선에 제물로 바쳐진 /여름날 끝 무렵의 장밋빛 /사랑의 시선을 꿰뚫고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과거의 투명함’(177쪽)처럼.

‘‘너를 사랑해’라는 말 속에는 ‘너’에 대한 강조가 어찌나 위협적이고 탐욕스럽고 또 어찌나 강하던지…. 갑작스럽게 식어버린 몸짓, 열정의 가사상태, 감각이 없어진 상태,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장에게 커다란 사랑의 경고였음에 틀림없다…. ‘사랑해’라는 당신 말에 나는 괴롭고 마치 폭행당하는 것 같아…. 당신에게 내 자신을 열려고 하기도 전에 나를 기습해버리고 말아….’(132쪽)

젊은 시절의 사랑은 정숙지 못했다. 우리는 ‘몸이 달아 뜨겁게…간절하게 자신을 열어젖혔’(43쪽)고, 새벽 두 시에도, 새벽 네 시에도 전화를 걸었다. 다만 살로메가 묻듯, 그 시절 새벽에 일어나 울어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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