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생애

서홍관 옮김/ 아침이슬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흔히 히포크라테스를 현대의학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가 그런 추앙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질병은 신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처음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기원전 5세기경이다.

신의 노여움을 사면 질병에 걸리는 것으로 굳게 믿었던 당시에는 간질을 앓는 사람이 갑자기 몸을 떨면서 정신을 잃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보고, 신과 만나는 접신(接神)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간질은 ‘신성한 병’이었다. 주술사들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신에게 빌거나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와 그를 추종했던 학파들은 달랐다. 일례를 보자. 고대 그리스 지역 스키타이인들은 성불구가 많았다. 이것 또한 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 학파 의사들은 잦은 승마가 정자의 통로를 손상시켰다고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신의 노여움이라면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발생해야 하는데, 성불구는 주로 부자들에게서 생기는 것으로 보아, 말을 자주 타는 생활습관에서 비롯됐다고 합리적인 해석을 내린 것이다(현대의학은 자전거·승마 등 지나친 회음부 압박 운동이 회음부 신경을 손상시켜 발기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입증했다). 뇌·심장·폐·간·전립선 등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당시의 추론으로는 기막힌 정교함이다.

이처럼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환자에 대한 철저한 관찰을 중시했다. 환자를 눈으로 관찰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소리를 듣는 데 열성적이었다. 환자의 땀·대변·토사·가래·고름·질분비물 등과 같은 것의 냄새도 맡았고, 가능하면 맛까지 보았다. 이를 근거로 주문을 외우는 대신 약물을 사용하고, 음식과 운동을 처방하고, 칼로 절개하는 치료를 시행했다. 이렇게 질병이 신의 문제에서 인간의 문제로 내려오면서 현대의학은 태동했다.


▲ 15세기에 그려진 히포크라테스 초상화.
히포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선서’에서 환자의 비밀을 보호하고, 환자에게 해가 되는 처방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들의 치료 경험을 엮어 놓은 책에는 “낫게 하라, 아니면 악화시키지는 마라”라는 경구를 적어 놓았다. 요즈음의 의사들이 들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말이다.

이처럼 위대한 ‘인간 존중 정신과 합리주의’ 때문에 히포크라테스가 현대의학의 시조로 불리게 됐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것이 단순히 의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인류 사상사와 과학사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히포크라테스의 생애와 업적을 담은 독립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이제 독자들은 백과사전에서만 접했던 히포크라테스가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리스를 떠돌면서 진료하고, 사색하고, 고민하는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방대한 문헌과 유물을 망라해 이 위대한 의사의 생애를 복원한 프랑스 파리대학 그리스 역사학 교수인 자크 주아나의 대작업 덕택이요, 이를 2년 반에 걸쳐 꼼꼼히 번역한 수필가이자 가정의학과 의사인 서홍관 국립암센터 책임의사의 노력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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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5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5-11-15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잘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