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후 샤오시엔

혹시 아시아권 영화에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느낌을 받은 감독이나 작품을 발견하셨습니까?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편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왕가위나 양덕창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세 사람은 너무도 다르지 않는가. 성장배경부터 완전히 다르다.

왕가위는 홍콩이라는 국제화된 도시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자랐지만 난 대만 남부의 시골에서 자랐다.

양덕창도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타이베이 위주의 영화를 만든다. 심지어 양덕창은 이공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살기도 했기 때문에 생각 자체가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내 영화는 중국의 전통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전통 소설에도 역사적 맥락이 있는데, [홍루몽], 심종문의 소설, 장애령의 소설 같은 맥락 속에서는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나는 꾸준히 중국적 화법의 태도나 방식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또 그 안에서 대륙인 중국과 대만의 삶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홍콩도 상업화된 도시로서 모든 관리체제가 금융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삶이 다르면 영화도 달라진다.

 


마침 왕가위 감독을 거론하셨는데요. <밀레니엄 맘보>에서의 유바리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에 불현듯 등장하는 앙코르와트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진행되는 시간과 장소의 비동시적 동시성을 일깨워줍니다. 그런데 이 두 영화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감정은 매우 다릅니다.

감독님은 결코 시간을 잡을 수 없음을 그 흘러가는 냉혹함 속에서 그려내는 반면 왕가위 감독은 아름다운 시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 진공상태로 만들거나 영원히 보존하려고 합니다. 저는 같은 시대를 사는 시네아스트들이 이렇게 다르게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왕가위의 영화도 기억에 관한 것이지만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왔고 엄마를 따라서 영화를 보러 다니고 팝 음악에 심취하는 등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홍콩은 너무 좁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밀착되어 있는 곳이다. <화양연화>는 그렇게 섞여서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의 억눌린 사랑의 감정을 묘사한 영화다. 그래서 음악의 파워가 무드를 압도하고 그 안에서 꿈을 꾸는 것처럼 환상으로 빠져드는 느낌인데 이런 영화는 왕가위만이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건 왕가위의 상상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런 공기 속에서 자랐고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세상과의 관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성장기에 예술매체의 영향에 따라서 조금 달라지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나름의 사고 방식이나 태도를 갖는데는 잠재의식들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내 영화를 보고 비애에 잠긴다. 비장하다고 말한다. 예산ㄹ에는 나도 자신이 그렇게 비장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자꾸 그런 말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약간은 불안하고 억눌린 듯한 감정을 키워 왔기 때문에 어떤 소재를 택해도 영화를 어둡게 찍는 게 아닌가 싶다. 항상 영화 바깥의 일상에서는 다급해 하고 상황들에 밀려나가면서도...

어차피 사회화라는 것은 사람이 억압을 받으며 답답해하는 과정이 아닌가. 그런데 내 개인의 이런 성향을 대만 사람들에게 비추어 보면 통하는 지점이 많다. 원래 중국에 살던 외성인들은 대만이라는 섬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고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사랑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불안한 정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폭력성이다. 실제로 내가 만나본 젊은이들 중에는 <밀레니엄 맘보>에서 서기가 돌아오면 냄새를 맡고 수색하는 애인보다 더 끔찍한 행위를 경험한 경우도 많았다. 차마 말로는 할 수가 없는데 한 여자의 아버지는 실직 상태로 집에 있으면서 자식이 벌어온 돈을 태워서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신 한구석에 숨겨져 있을 억압된 감정들이 정말 근심스럽다. 따라서 절망적인 분위기가 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는 영화를 찍으면서 양파 껍질을 까듯이 이게 도대체 뭘까라며 한 꺼풀 한 꺼풀 벗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것을 왜 벗기려 하는가. 그것은 내가 속한 시대의 공기에 융화되기 위해서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찾아 그 안으로 계속 물어보면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현대에 집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키노 2001년 12월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