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잘난 유럽 만화들

운전대를 잡은 남자의 눈은 겁에 질렸다. 도망치는 이의 눈. 차안의 검은 서류가방이 신경쓰인다. 대체 이 짙은 탐욕과 불안의 냄새는 뭐란 말인가.
스위스 출신 만화가 토마스 오트의 `백만장자의 꿈'은 돈가방을 둘러싼 인간의 더러운 내면을 쫓는다. 짧은 단편이라지만 대사 한마디 없다. 그래도 여운은 강렬하다. 이 작품은 `돈의 왕'에 실렸다. `만화로 세계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시리즈 가운데 한권이다. 이 시리즈는 이른바 `프랑스의 고급스런 지적 만화'다. `제9의 예술'로 불리는 만화의 무게감을 톡톡히 전달한다.
권력과 정부, 개인의 문제를 담은 `국가의 탄생', 환경문제를 다룬 `검은 대륙', 그리고 악마의 유혹같은 돈을 둘러싼 `돈의 왕'까지 3권에 총 13편의 단편만화가 실렸다. 두꺼운 종이를 긁어내는 까다로운 방식으로 그려졌다는 `백만장자의 꿈'을 비롯, 저마다 개성있는 그림체를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다. 낯설고 거친 선과 면의 향연부터 동글동글 귀여운 캐릭터까지, 어린애 장난인가 싶은 그림부터 기이하게 매혹적인 녀석까지. 각 만화가의 체취가 무척 강한 편이다.
어디 그림체뿐이랴. 국가와 환경, 돈이라는 카테고리로 묶기는 했으나 그 자유로운 도발은 모든 경계를 비웃는다. `검은대륙'의 첫번째 작품 `마법의 칼리(헌트 이머슨)'는 영국 작가의 발랄함이 엿보인다. 재활용광인 아버지와 쇼핑욕구 불만에 시달리는 아들을 통해 극성스런 소비욕구에 대해 유쾌한 일침을 놓는다. 반면 `친애하는 초파리 귀하(샹탈 몽텔리에)'는 환경운동가 출신의 여성 총리가 부딪치는 마초적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남성성이 판치는 정치판과 쓰레기로 덮인 오염된 강은 묘하게 서로를 닮았다. 프랑스 제일의 `오염기업'의 1년 광고 예산이 환경부의 1년 예산보다 많은 상황. 환경운동가인 주인공을 놓고 `언론을 손에 쥔 광고주들에게 등을 돌린게 패착'이라는 분석도 서늘하다.
`국가의 탄생'에서 `카소비치 씨의 죽음(파스칼 라바테)'은 내전을 배경으로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모습을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표제작 `국가의 탄생(알랭 가리그)'은 작은 마을이 `국가'가 되면서 `애국심'이 폭력이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펼쳐보인다. `눈가리고 아웅'인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 정권유지용 애국심을 위해 이유없는 전쟁을 택하는 정치. 옛 공산당 정치국 위원들은 어느새 민주주의의 사도로 변신, 몽매한 95%의 대중을 이끈다. 몇시간째 겁에 질려 박수치다 지친 남자를 난사하고 장난처럼 저지른 전쟁에서 해골산을 쌓는 권력은 무자비하다. `원초적 뿌리'는 침략자에게 맞선 잔인한 영웅을 우상화하기 위해 동상을 만드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작 제막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조각상은 거대한 남근. 국가 폭력에 대한 난해한 풍자는 결정타를 날린다.
만화가 박재동은 추천사에서 "주류만화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글과 그림, 불편한 읽기에 당황할 것"이라며 "그러나 읽고 나면 세상과 부대꼈던 작가들의 치열한 고민의 조각을 손에 쥐게 될 것"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이런 만화가 당혹스럽다는게 더 이상하다. 로맨스나 스포츠, 명랑물만 만화로 착각해온 탓일까. 만화는 시대의 사명에 충실하게 세상을 알려주는데도 유능하다. 앗차, 기분전환용 느슨한 만화가 아니라는 점과 작품마다 편차가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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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적인 만화'를 봤다. 골치아팠다.
가슴에 확 와닿는 녀석도 있구...대체 뭔 소리야...는 것두 있고.
3권 13편을 두루뭉실하게 리뷰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탓인지.
갈피를 못잡고 좀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