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아닌 존재를 꿈꾸고 자기가 갖지 않은것을 가지려…

책세상 문고/ 송병선 옮김/ 348쪽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묶이면 풀고 싶고, 풀려 있을 땐 차라리 묶이고 싶다. 사랑이 관습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래 인류의 연애 심리는 언제나 주인공들을 수평면이 아닌 빗면 위로 몰고 간다. 영화 같은 허상에 젖어 있는 이 소설의 여성들도 ‘죽을 때까지 떼어버릴 수 없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더 불쌍하다’(39쪽)고 투덜댄다. 한 남자의 아내가 돼 있는 자신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받은 여자나 다름없단 말이에욧!”(40쪽)이라고 내지르기 일쑤다.

1930년대 아르헨티나의 코로넬 바예호스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는 얼핏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폐결핵 환자이긴 하지만 영화 주인공처럼 근사하게 생긴 후안 카를로스가 중심에 있다. 자신의 외모를 믿고 처녀에서 과부까지 온갖 여자들과 연애 행각을 벌이는 그는 노름판과 술집으로 매일 출근한다. 그는 스물아홉 젊은 나이로 죽는다.

그에게는 네네와 마벨이라는 연인이 있었다. 네네는 봄 축제 여왕으로 뽑힐 만큼 흰 피부와 예쁜 몸매를 가졌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네네는 열아홉 살 때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그 병원의 기혼남 의사와 육체적인 연애에 빠지고 만다. 그러다 병원에서 쫓겨난 네네는 할인점에 포장 점원으로 들어간다.

반면 마벨은 교사 자격증까지 딴 인텔리 아가씨일 뿐 아니라 돈 많은 집안의 딸이다. 그러나 마벨은 키가 너무 작은 탓에 사교클럽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봄 축제 여왕으로도 뽑힐 수가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문한 대여 의상이 평균 사이즈로만 오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서 후안 카를로스의 누나인 셀리나가 위험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은근히 마벨과 남동생을 이어주려고 하는데, 그 때문에 네네는 셀리나를 싫어하게 된다. 네네는 셀리나가 걸레처럼 헤프게 몸을 굴렸다고 헐뜯는다. 네네와 마벨은 후안 카를로스와 결혼하길 원했고,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자 꿈꾸었지만, 결국 꿈은 좌절되고 현실에서는 꿈과 정반대되는 남자와 결혼해서 환멸을 맛보게 된다.

S.R.N. 샹포르(Chamfort)는 “연애가 결혼보다 즐거운 것은 소설이 역사보다 재미있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보았고, 심훈(沈熏)은 “연애는 일종의 예술”이라고 했지만, 가령 스탕달(Stendhal)은 “정열 연애, 취미 연애, 육체 연애, 허영 연애 같은 네 가지 유형이 있을 뿐”이라고 분류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마치 스탕달의 분류법에 속하는 돈 키호테처럼 “자기가 아닌 존재를 꿈꾸고 자기가 갖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

이 소설은 푸익(Manuel Puig·1932~1990)이 “나를 ‘조그만 입술’(원제 Boquitas pintadas)의 작가 마누엘 푸익으로 불러달라”고 했을 만큼 자신의 대표작으로 아꼈던 작품이다. 소설 제목은 영화 ‘브로드웨이의 탱고(El tango en Broadway)’에 수록된 카를로스 가르델의 노래 ‘뉴욕의 금발 여인들’에서 따온 것이다. ‘귀엽고 달콤한 향기로운 여인이여/ 당신의 새빨갛고 조그만 입술이 내게 키스해주길….’

하얀 피부와 빨간 입술로 성적 매력이 넘치는 매리, 베티, 줄리 같은 여인들은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즐기는 인형 같고, 거짓으로 사랑을 속삭인다. 모방적 욕망의 포로가 되면 ‘낭만적 거짓’을 일삼게 되고, 그 곁에 푸익은 ‘소설적 진실’을 탁월하게 대비시킨다.

편지, 스크랩, 탱고 가사, 사진첩, 독자상담 편지, 비망록 같은 무려 19가지 문학 기법을 사용했다고 할 만큼 다채로운 기술 방식으로 연결된 추리적 구성이 일품이다. “불변하거나 유일한 것은 없다”고 믿으며 모든 남자와의 연결 가능성을 점치는 여성심리 묘사도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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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3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10-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 잘못 아니어요. 아무래도 이거 게제한 사측에 문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