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황 측천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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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당나라 고종(高宗)의 황후인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의 일대기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에서 가장 넓은 땅과 백성을 호령했던 한 여인의 팔십 인생이 격렬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중국 황실에서 음모와 견제는 일상사였다. 헐뜯어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한다.
여황의 지위는 무엇보다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만인지상의 절대군주가 한 발짝만 삐끗해도 황실은 피바람 속에 잠긴다.
젊은 여성 작가인 샨사는 7세기 세계 최대의 봉건국가에서 왕정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꿰뚫고 있다. 제국은 ‘황제’ 그리고 ‘그를 둘러싼 잠재적 역적’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여황은 세상의 정점에 홀로 앉아 있다. 그녀의 앞뒤에는 허공과 무한밖에 없었다. 역모 혐의자들의 충성을 받으면서 여황은 영광과 고독이 하늘 끝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목재상을 하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 밑에서 세 자매 중 가운데로 태어난 조(照)가 열세 살 되던 해, 그녀의 영특함을 눈여겨본 지방 도독 이적 대장군이 황실 조정에 조를 천거한다.
조는 황제의 명에 따라 내명부의 후궁으로 들어가 정5품 재인(才人)의 지위를 얻는다. 이때만 해도 이 어린 소녀가 나중에 스스로 여황의 자리에 오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황제의 총애를 받은 자와 총애를 잃은 자, 총애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혈투는 숙명이다.
궁중에서 상처받은 여자들의 광기는 보이지 않는 번개 칼이 되어 어떤 명장(名將)보다 훌륭하게 정적(情敵)들의 목숨을 벤다.

▲ 중국계 프랑스 소설가 샨사(Shansa·32)는 이번 소설에서"탐미적이고 중국적인 언어로 미래의 문호를 예고하고 있다"는 찬사를 들었다. | |
그곳은 독을 탄 술, 독이 묻은 옷, 치명적인 성분을 뿌린 부채가 발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곳에서 살아 남은 여인은 살아 남았다는 사실로 이미 비범하다. 황제의 주변은 언제나 관능과 부패가 배회했다.
조는 마흔둘에 딸 태평공주를 낳은 뒤 황제와 일체의 성관계를 끊었다. 오십 고개를 넘긴 조는 열네 살 소녀를 침실로 끌어들여 육체적 쾌락을 다시 연다. 나중에는 소보(小寶)라는 남자를 정부로 삼는다.
그녀는 과거제도를 창시하고,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 ‘진실의 함(函)’을 만들었으며, 모든 법률과 의식을 개혁한 군주였다. 그러나 훗날 그녀는 타락한 여성의 상징으로만 남았다.
정적들로부터 무자비한 방법으로 황권을 빼앗고, 변방에서 반란의 도시들을 피에 잠기게 한 철의 여인이었다.
소설은 문장이다. 앙드레 지드는 ‘나는 나의 문장으로 예민한 하나의 악기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지만, 중국계 프랑스 소설가인 샨사는 21세기에 쓰여지는 역사소설 속에 새로운 양식을 구축하고 있다. 문장을 가로지르는 실존의 고통을 현대적으로 체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달들, 불투명한 세계, 으르렁거림, 돌풍, 지진. 휴식의 순간은 드물었다’로 첫 문장이 시작되는 이번 샨사의 소설을 읽으면서 감히 ‘명만고문장’(鳴萬古文章·만고에 떨친 문장으로 이름이 남)의 태동을 보는 것 같은 설렘마저 느낄 정도다.

▲ SBS TV가 방영했던 미니시리즈 '측천무후'의 한장면. | |
‘산이 숨을 쉬었다. 산이 슬퍼했다. 산이 만족해 했다. 산이 눈 모피를, 화려한 비단옷을, 호화롭고 이상 야릇한 안개 망토를 보란 듯이 과시했다. 황토빛, 노란빛, 검은빛 노을이 지면 하늘이 수직으로 열렸다. 계곡에 어둠이 깔리면 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풀숲에 누웠다.…’(본문 중)
샨사의 소설은 유장한 호흡과 거침없는 리듬을 타면서도, 주어와 술어 단 두 단어로 섬세하게 저민 문장들을 풀어 놓는다.
우주의 거대한 춤사위에 혼백을 빼앗긴 듯 무한광대로 장엄하다가도 어느새 한낱 여린 여인에 불과한 조의 풋풋한 내면 세계로 깃털 하나를 떨어뜨린다.
특히 황제와 여황의 장례를 묘사하는 대목은 타의 추종을 당분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환상적인 표현과 역사 고증적인 수법이 번갈아 섞인 페이지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영원의 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가 궁금한 독자들께 이 소설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