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녀 사이엔 언제나 깊은 오해가 있다
조용희 옮김/ 문학동네/ 206쪽
대개 사랑은 자멸한다.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오해가 있기 때문’(8쪽)이다. 이 소설은 몽상적이고 우유부단한 스물두 살 청년과 ‘자신의 몸 속에 내재하는 타락에 대한 동물적인 욕망’(195쪽)으로 불타는 열아홉 살 여자의 사랑 얘기다.
소르본 대학에서 라틴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이폴리트는 고등학교 때 만난 애인 래티시아와 헤어진다. 정신착란에 가까운 그녀의 질투심 때문이었다. 그때 나타난 여자가 엘리자베스다. 이폴리트는 친구와 시네마테크를 걸어 나오던 중 자신의 레인코트 호주머니에서 처음 보는 종이쪽지를 발견한다. ‘안녕, 미지의 친구. 일주일 예정으로 파리에 와서 샤요 시네마테크에 세 번 갔어요. 그때마다 당신을 봤어요. 당신의 우수 어린 얼굴과 곱슬머리는 정말 멋져요. 나도 탐미적이고 멋진 여자예요… 이 번호로 전화하세요. (16)8834… 당신의 엘리자베스’
래티시아와 이폴리트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지만 헤어졌고, 엘리자베스와 이폴리트는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둘은 금세 뜨거운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공항에서 이폴리트는 우연히 들여다보게 된 엘리자베스의 할인카드 기입 때문에 그녀가 나이를 한 살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 이폴리트는 그녀의 동생이 전화를 대신 받는 바람에 그녀가 지난 밤 자크라는 사진작가와 외박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계속 쓰고 있는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 사실상 밥 먹듯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는 이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가진 인생의 유일한 원칙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32쪽). 그녀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재미로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은 그녀의 마약이자 일상의 양식이다시피 했다.
엘리자베스가 샤워나 목욕을 할 때마다 일기장을 훔쳐보는 이폴리트는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진다. 로돌프, 에릭, 엘렌 같은 친구들과 엘리자베스가 이성 연애 혹은 동성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지만, 그가 그녀를 나쁘게 평가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좋아진다.
‘이 교활한 여자보다 더 교활해지기로’ 마음먹은 이폴리트지만, 구겨진 시트 사이에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늘씬한 몸매와 그녀의 황홀한 애무를 기억하는 순간 또 다른 열정에 휩싸인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애인이든 저질의 거짓말쟁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속지 않고 항상 최악에 대비하며 이 관능적인 미인이 주는 행복을 마음 편히 누리는 것’(24쪽)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남녀 교제용 전화방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새 애인을 사귀고 있고, 더구나 이폴리트는 ‘안녕, 미지의 친구… 당신의 엘리자베스’라고 쓰인 종이쪽지 초안을 그녀의 일기장 사이에서 발견하고는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자신과 그녀를 맺어주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다른 남자를 꼬드기고 있었던 것이다.
냉담함이 애인(독자)에게 주는 고통을 사랑할 만큼 솜씨 좋은 마츠네프(Matzneff)는 ‘기이하고 모던한 분위기, 쾌락과 열정에 대한 추구,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대한 깊은 호기심’(206쪽)으로 자신의 매니아 독자층이 두터운 작가다. 남녀 사이를 결정적으로 재단하는 경구들, 그리고 프랑스 고전 명작과 영화들에 대한 풍부한 인용이 자연스럽게 문장에 배도록 한 솜씨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독자들께 권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