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동인문학상-마지막 네작품<下>

100년전, 그들은 '新대한'을 꿈꿨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김영하
이 소설은…

꼭 100년 전 멕시코의 에네컨 농장으로 이민 갔던 조선인들의 얘기다. 김이정, 조장윤, 박광수, 이종도, 이연수, 최선길, 권용준…. 하나같이 출신 배경도 다르고, 이민 목적도 다른 인물들이다. 대한제국 땅에서 살 수 없어 이역만리로 떠나는 1033명 조선인 가운데 몇 사람일 뿐이다. 제국은 기울어가고, 러시아와 일본은 패권을 놓고 한판 겨루기에 들어갔다. 그 분위기 속에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호가 제물포항을 출발하는 대목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민족수난사는 아니다. 유교적 생산양식과 신분질서가 완강한 한반도를 떠나 이제 막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는 중남미에 이식(移植)된 조선인들의 자화상에서 김영하는 인간 존재가 얼마나 순식간에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또한 그 과정을 겪는 우리 의식 속에 어떻게 근대화가 자리잡아 갔는지를 싸늘하게 추적한다.

대륙식민회사의 농간도 모른 채 채무노예로 팔려간 이들은 4년이라는 의무기간 동안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갖은 착취에 시달린다. 그 뒤에는 고국으로 돌아갈 길조차 잃고 멕시코 전역을 유랑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마침 멕시코는 혁명과 내란으로 화약연기가 가실 날이 없고 이에 휩쓸린 조선인들도 서로 총부리를 겨눈다. 이때 이웃나라 과테말라에서도 정변이 터지고, 그곳의 혁명군은 조선인들에게 참전을 요청한다. 총 42명이 과테말라 북부 밀림지대에 갔다가 정부군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소설 속 한 대목

―눈을 감았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이토록 선명할까. 이정은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그러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의 폐 속으로 더러운 물과 플랑크톤이 밀려들어왔다. 군홧발이 목덜미를 눌러 그의 머리를 늪 바닥 깊숙이 처박았다.(11쪽)

―박광수는 오뚝이 인형처럼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양손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밝게 웃었다. 정부군 병사도 웃으며 그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품에서는 손만 대면 찢어질 것 같은 낡고 바랜 증명서 한 장이 발견되었다. 그 문서엔 ‘전라도 위도생 28세 박광수’라는 한자와 대한제국의 관인이 희미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317쪽)

작가의 말

“1905년에 제물포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마야 유적지, 밀림에서 증발해버린 일군의 사람들, 그들은 시종일관 나를 사로잡았다. … 그들이 떠난 1905년과 그들이 살아낸 1910년대는 작가로서는 정말 매력적인 연대였다. 한 소설을 끝낼 때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 시민이 되는 영광을 홀로 누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1905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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