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바퀴로 구르는 사회 16C·20C두시각으로 보는 묘미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곤두박질
추석 연휴 닷새 동안 이 책 한 권이면 철학적으로 그리고 코미디적으로 행복할 것 같다. 영국 최고의 익살꾼 작가로 평가받는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71)은 1999년 이 소설(원제:Headlong)을 내고 아마도 자신의 대표작을 썼다는 뿌듯함에 잠겼을 것이다.

소설은 16세기 플랑드르 풍경화가 브뢰겔(Jan Brueghel·1568~1625)의 작품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역사적 명품에 얽힌 이야기를 읽는 맛은 서지학적 탐구심을 조금만 곁들이면 밤새는 줄 모르게 만든다. 대개 추리적 연쇄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 두근거리는 결말에 대한 호기심이 저절로 발동하기 때문이다.

프레인의 문장은 인생과 역사를 통시대적으로 훑어내리면서 던지는 잠언도 잠언이려니와, 그 안에서 비틀고 덧붙이고 은유하는 해학이 가히 당대 최고 솜씨를 자랑한다. 인간의 소심하고 비열한 욕망과, 이 욕망의 수레바퀴로 굴러가는 사회적 제도와 풍습들을 16세기적이며 동시에 20세기적인 시각으로 겹쳐 보는 것도 또 다른 묘미다.

소설 주인공 마틴 클레이는 철학과 전임강사다. 안식년을 맞은 그는 책을 쓰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시골로 떠난다. 그곳에서 클레이 부부는 토니 처트라는 속물 인간을 만나게 된다.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도 마틴은 토니가 브뢰겔의 진귀한 명품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정작 토니 자신은 그 그림의 진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토니를 속물이라고 비웃던 마틴 역시 속물이긴 마찬가지다. 원래 미술사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던 마틴은 토니를 속여 브뢰겔의 풍경화를 헐값에 사들일 작은 음모를 꾸민다.

▲ 언론인 출신인 마이클 프레인은 풍자 코미디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작가다. 사진제공=유로포토
마틴은 자신이 소개한 구매자에게 브뢰겔의 그림을 넘기기 전에 벽에 걸어놓고 며칠 감상을 하다가, 우연히 그 그림을 사랑하게 되어 그림값인 몇 천 파운드를 구했다고 말하고, 그 그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에는 또 우연한 호기심 때문에 전문가에게 감식을 의뢰했는데 그 그림이 금세기 들어 최고의 예술적 발견이 되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다. 큰돈을 벌게 되면 마틴은 일부를 떼내 예술발전 기부금도 내놓고, 또 그럴 의무는 없지만 원 보유자였던 토니에게도 섭섭지 않을 정도의 금액을 떼줄 생각까지 한다.

독자들이 즐거움을 갖게 되는 대목은 이 같은 줄거리뿐만이 아니다. 중간중간 미술사에 대한 풍부하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 유럽 화랑이나 화상들의 복마전을 닮은 그림 거래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각별한 맛이 있다.

프레인의 어머니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나 그가 열두 살 때 세상을 떴고, 홀아버지도 벌이가 시원찮아 힘든 시절을 보낸 것으로 돼 있다. 프레인은 군복무 때 러시아어를 배워 통역관 노릇을 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나중에 언론사에서 기자 겸 칼럼니스트로 일하다가 문필가의 길로 돌아섰다. 데뷔작 ‘양철 인간’(Tin Man·1965)으로 서머싯 몸 상(賞)을 받았고, 대표작으로 ‘러시아 통역관’(The Russian Interpreter·1966), ‘태양에 착륙하기’(A Landing on the Sun·1991), ‘스파이’(Spies·2002) 등이 있으며 상당수의 희곡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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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9-2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격면에서나, 두께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꽤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