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진, 30대 주부의 일상 탈주 부부·가족의 의미 성찰
심윤경, 宗家 둘러싼 두 이야기 관습 맞서다 悲運 맞아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서하진은“겉은 멀쩡하지만 내면은 상처투성이인 인물을 통해 우리의 혼란스런 인간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이덕훈기자 (블로그)leehd.chosun.com
‘2004 동인문학상’의 최종후보작으로 압축된 네 작품을 최근 선정작부터 두 차례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오늘은 서하진 창작집 ‘비밀’, 심윤경 장편 ‘달의 제단’입니다.

◆ 이 소설은…

표제작 ‘비밀’은 30대 주부가 자기 집을 등지고 단식원의 빈 방을 찾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룸메이트인 전직 모델과의 진실 게임을 통해 자신의 비밀스런 과거를 털어놓는다. 스스로를 ‘릴라이어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편과 한 아이를 가진 그는 결혼 전 사랑했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를 떠났다가 5년 만에 돌아오는 그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같이 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함께 있다가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사이, 아이는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아이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을 견디지 못한 그 남자도 떠난다.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 남편과 아이를 두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려던 주인공의 탈주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주인공은 어쩔 수 없는 비밀 때문에 상처 받고, 또 그 상처 때문에 비밀을 간직해야 하는 속내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올해로 등단 10년째를 맞는 작가의 네 번째 창작집으로, 차분하고 사려깊은 시선으로 여성성의 깊은 밑자리를 탐색하고 있다. 뒤틀어지고 허망한 가족관계에서 출발해 우리 시대의 부부, 가족의 의미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거울을 제시한다.

◆ 소설 속 한 대목

“나는 글쎄, 나는… 늘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를 멀리, 낯선 곳에 옮겨 놓는 거지. 견디기 힘들 때마다 그렇게… 그런 일이 잦아지고 가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중략) 다른 사람인 양, 다른 곳에 있는 듯 생각하다 보면 눈앞의 일들이 다 사소해 보이고, 결국 견딜 수 없는 일이란 없지 않은가, 여겨지게 마련이니까.”(196쪽)

“여자에 대한, 나에 대한, 세상 모든 여자들에 대한 혐오와 연민이 번갈아 솟구치고 내 속에서 무언가 조용히 끓어올랐다. 불꽃조차 없는 스토브처럼 건조한 그 무엇은 서서히 달아오르다 잉걸불이 되어 활활 타들어갔다. 불길을 삭이기 위해서, 오로지 그 생각만으로 나는 천천히 술을 마셨다.”(223~224쪽)

▲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심윤경은 철저한 사료(史料) 고증과 예스러운 순우리말로 조선조종갓집을 둘러싼 신구 갈등을 정밀히 복원했다./ 조선일보 DB사진
◆ 이 소설은…

경상도의 한 명문 종가를 중심으로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며 축조돼 있다. 하나는 ‘서안 조씨 양정공파 17대 종손’인 조상룡이 군대를 제대하고 겪는 이야기다. 지방대학 국문과를 다니다 군대에 다녀온 상룡은 제대하던 날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사당에 들어가 출입고(出入告)를 한다. 종가(宗家)의 사당인 효계당은 범속의 경계를 뛰어넘는 서슬에 휩싸여 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조상룡의 십대 조모가 되는 여인이 조선조 후반 안동 김씨 집안에서 서안 조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당하는 이야기다. 행복했던 시간은 잠깐, 첫아들에 이어 남편까지 죽는 흉사를 치른다. 시댁 사람들은 모든 참절한 흉변의 원인이 며느리에게 있다고 몰아친다. 남편이 죽기 전에 남겨 놓은 씨가 있어 산고를 치르는데, 시할아버지는 만약 그 아이가 딸이면 자진(自盡)할 것을 종용한다. 초막으로 쫓겨난 며느리가 결국 딸을 낳자 시할아버지는 손녀를 밟아 죽인다.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현대의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조상룡의 할아버지가 선산을 이장하다가 발견한 10여 통의 언찰(諺札) 때문이다. 1000억 가까운 재산을 모으면서 효계당을 일으켜 세운 상룡의 할아버지는 국문과 출신인 상룡에게 언찰을 던져주며 요즘 말로 번역해 놓으라고 지시한다. 심윤경(32)의 두 번째 장편인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그 옛날 비극의 며느리가 친정할머니와 주고받았던 의고체의 편지글이다.

제도과 관습을 뜨겁게 껴안았던 젊은 영혼들의 저항은 왕조의 시대든 공화국의 시대든 항상 처절하게 아름다운 비극으로 삶의 무늬를 짠다.

◆ 소설 속 한 대목

-세월이 옛 같지 않아 인구(人口)의 험악하기가 차마 민망하나 일일이 노신(勞神)치 말지며 한가지로 가문을 섬기고 하속에게 베풀면 덕향(德香)이 가내에만 머물지 아니할 것이니 네 몸 씀, 마음 씀으로 흉설을 풍비케 하라. (103쪽)

-비사칠(말을 에둘러 은근히 알아듣게 할) 것 없이 말하리라. 일문에 천앙(天殃)이 내렸으니 이는 종부 부덕한 탓이라. 하상(何嘗·따지고 보면) 태중에 준몽의 씨 들지 않았다면 네 오날까지 존명(存命)할 염치 없었으리라.(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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