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사막
김영희 지음 / 알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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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십시오. "
김영희 PD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여행을 떠난 때는 <나는 가수다>을 손에서 내려놓고 떠난 것이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잘 키워나가야 할 텐데, 그것을 남의 손에 맡기고 떠나야 하는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김영희 PD하면 <나는 가수다>고, 책에도 잠시 언급을 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처음에 그 프로가 신설될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이젠 예능이 하다하다 별 희안한 것도 한다고 냉소했더랬다. 더구나 사람을 경쟁 체제로 서바이벌 형식이었다. 갑자기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그리도 혐오해마지않는,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 두겠다거다. 그리고 내가 가수라면 난 이런 유치한 경쟁엔  결코 나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와 비교되는 것을 안 좋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방송이 나가고 한 준가 두 주 후에 인터넷 카페의 한 지인으로부터 이 프로에 대해 칭찬 글을 보았다.  난 그 분이 원래 쇼 프로를 좋아서 그런 글을 썼는가 보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내가 생각하는 편견 가득찬 반박 댓글을 달았었다. 그런데 그 분은 자신도 원래는 쇼 프로를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이 프로는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번 보라고까지 권유까지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었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가수다>를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     

<나가수>가 이루어 놓은 업적은 많다. 무엇보다도 세월에 묻혀 잊혀진 또는 잊혀질뻔한 가수들을 다시 방송 무대에 세웠고, 그동안 가수들이 출연하는 쇼 프로는 그 프로그램을 위한 부속물로 취급 해왔지만, <나가수>는 온전히 그 가수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그러므로서 시청자들은 그 가수의 역량을 새삼 확인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편곡 실력, 퍼포먼스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를 매주 받는 느낌을 선사해 줬다. 세상에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그동안 TV에 별 관심없는 사람도 그 앞에 끌어다 놓았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 시절엔 좋은지 몰랐던 곡을 새삼 음미할 수 있는 건 덤으로 얻는 축복이다.
요즘 K-팝의 세계적인 인기몰이가 거센데, 난 그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 어느 날 갑자기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것은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성량도 좋고, 생기기도 잘 생기고, 음에 대한 감각도 어느 정도 갖춘 것 같긴 하지만 문제는 내용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에있다. 그랬을 때 <나가수>는 그들의 선배들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의 부대를 이루어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자기 노래에 대한 책임 의식이 솔로 보다 희박하다. 하지만 그들의 젊음은 언제나 계속될 것이 아닌데 케이팝은 언제나 젊은 가수들의 화려한 몸짓만을 원하게 된다면 그들의 도태는 건 거의 시간 문제다. 그들은 뭔가를 새롭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 가요에 대한 재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 <나가수>가 나는 볼 때마다 고맙고, 새로웠다.  

이런 <나가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었기에 김영희PD가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시작했을 이 프로를 아직 꽃도 피워보기도 전에 그만둔다는 건 나로선 좀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개인적 사정이 아닌 경질이었고, 그 경질의 이유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달여의 프로그램 정지 뭐 이런 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그럴 수 있어도 그 프로를 만든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방송사측의 선택이었나 보다. 좀 가혹하다는 생각도 해 봤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는데 이만한 일로 경질을 당한단 말인가. 더구나 의도했던 것이 아닌 순간적인 판단오류 내지는 실수 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한 방송국 PD를 일벌백계로 세상은 얼마나 정직을 원하는지를 보여주겠다. 뭐 그런 것이었단 말인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에게 희망이 있어 보이는 건,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어느 정치인이나 유명 재벌들과 달리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손을 털 때 탁탁 털어버릴 줄 안다는 그 면이 좋았다. 그도사측을 상대로 대응을 하려면 할 수도 있었을 테고, 설득을 하려면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프로야 누군가가 잘 키워 줄 사람만 있다면 그에게 물려주고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일 것이다. 물론 때로 사람의 일이란 게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일도 있지만, 나 아니어도 잘 돌아가고, 더 잘해낼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과감하게 손을 터는 것도 좋은 모습일 것이다. 일에 대한 긍지를 갖는 건 좋은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은 위험할 수도 있다. 나는 그가 그것을 잘 판단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또한 대인배다. 

좋은 방송은 또 할 수 있다. 방송에 품은 열정과 애정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김영희PD는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 현장이 좀 피 터지는 전장인가.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그의 남미로의 여행은 잘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를 그는 또 한번 깨닫고 왔을 거라고 믿는다.   

모름지기 책이라면 글이 좀 많아야 한다는 쪽인데, 글은 적고 사진만 많은 이런 책은 나로선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처음 책을 봤을 때 그가 방송을 접고 떠났을 마음이 어땠을지를 조금이라도 가늠해 보고 싶은, 이를테면 동정어린 마음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줍잖은 나의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중간중간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그 보단 그가 얼마나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했는지가 그의 사진에서, 짧은 글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글은 낙서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정말 이런 마음이 아니면 그런 프로를 만들 수 없었으리란 생각이 곳곳에 묻어난다.
맨 마지막 장은 알래스카인지도 모를 빙하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의 마치 그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이제 여행도 다녀왔으니 또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프로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는 천상 PD다. 기대한다. 그의 방송 복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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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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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