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효과 알리고 소비자 선택 쉽게
거금 들여 전문 작명업체에 의뢰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위), 레비트라(아래 왼쪽), 시알리스(아래 오른쪽) 발매 기념 행사 모습들. 비아그라(Viagra)는 힘을 상징하는 ‘비고르(vigor)’와 ‘나이아가라(Niagara)’를 합성, 활력과 폭포의 강력한 물줄기를 연상시켰고, ‘레비트라(Levitra)’는 프랑스어 남성관사 ‘레(le)’에 라틴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vita’에 어원을 두고 있다. ‘시알리스(Cialis)’는 보다(see)와 ‘앨리스(Alice)’의 합성어로, ‘놀라운 세상’을 경험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조선일보 DB사진]
약 이름이 바뀌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제약사의 마케팅 대상은 의사들에게 집중됐다. 특히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들 약에 대한 마케팅 대상이 점차 소비자, 즉 환자에게로 전환되고 있다. 인터넷 정보 검색과 환우회 활동 등으로 환자들이 이제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 부드러워진 이름들

과거 약 이름은 약물의 성분명이나 작용 메커니즘을 그대로 따오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주름 치료에 쓰이는 ‘보톡스(BOTOX)’는 주성분인 ‘보툴리눔 톡신’을 소재로 이름 붙인 상품명이다(물론 보톡스가 인기를 끌면서 요새는 그런 작용을 하는 약물을 통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인다).

하지만 이제는 약물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미지 또는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내 발매가 시작된 콜레스테롤 강하제 ‘크레스토(Crestor)’는 산 정상 또는 최상이란 의미를 갖는 ‘크레스트(Crest)’와 행위자를 만드는 영어 어미 ‘or’의 합성어이다. 콜레스테롤 치료 목표치 도달에 있어 최고의 약물이라는 뜻이다.

약으로 가능한 삶의 질 향상을 묘사하는 약 이름도 나온다. 예를 들어, 천식 및 알레르기 비염 치료제인 ‘싱귤레어(SINGULAIR)’는 하나(single)와 공기(air)를 합한 이름으로, ‘한 가지 약물로 천식과 알레르기 비염을 함께 치료하여 편한 숨쉬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뜻을 담았다.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치료제 ‘스피리바(SPIRIVA)’는 ‘영혼(Spirit)’을 흡입하는 약물이란 의미를 담았다. 피부질환 치료제 ‘제마지스(Zemagis)’는 ‘습진(Eczema)’과 ‘방패(Aegis)’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습진을 막는 강력한 방패를 의미한다.

아무런 뜻도 없이 전 세계적으로 똑같은 발음으로 불리게 이름 붙인 약도 있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엘리델(Elidel)’이 그런 경우다.

■그래도 지킬 건 지킨다

약 이름은 기존에 발매 중인 경쟁 약물들과 혼동되지 않고 과장되거나 왜곡된 의미를 담지 않아야 한다. 약 이름이 퇴짜를 맞는 경우는 의사들이 처방전에 휘갈겨 쓸 경우 다른 약품과 혼동될 가능성이 있는 이름, 들었을 때 기존의 약과 너무 비슷하게 들리는 제품명 등이다. 작명을 하는 제약회사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판매할 약물의 경우, 가능한 모든 국가의 자료를 뒤져 그 나라 말로 저속하거나 잘못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도 알아본다.

최근에는 제약사들도 약효를 최대한 잘 표현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름을 만들기 위해 거금을 들여 전문 작명업체에 의뢰하기도 한다.

■X·Z자 유난히 인기

위산억제제 ‘넥시움(Nexium)’, 비만치료제 ‘제니칼(Xenical)’, 혈전증 치료제 ‘엑산타(Exanta)’, 금연보조제 ‘자이반(Zyban)’, 항생제 ‘지스로맥스(Zothromax)’ 등 최근 약 이름에 ‘X’와 ‘Z’가 유난히 많이 들어간다. 이는 발음하기 좋을 뿐 아니라 혁신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X파일, 매트릭스(Matrix) 등 영화제목이나 자동차 렉서스(Lexus) 등에서처럼 이들 문자는 첨단기술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A’로 시작되는 브랜드명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환자가 이름 알면 치료도 잘 돼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환자 3명 중 2명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본인이 먹고 있는 고혈압 약 이름을 알고 있는 환자가 그렇지 못한 환자에 비해 혈압 조절이 더 잘되고 있다는 것. 물론 약 이름을 아는 것과 치료효과 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자가 약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치료받고 있는 방법이나 약물에 대해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환자의 치료 의지와 관련되어 치료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 건강관리와 질병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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