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한그릇…
익숙한 '맛'을 통해 생생한 삶의 느낌 전해


음식을 통해 우리는 감각의 근원적인 뿌리에 가닿는다. 그 음식이 시의 언어로 포착되면 구체적 감각을 통해 생생한 삶의 느낌을 전하는 매체가 된다.

문예지 ‘시안(詩眼)’ 여름호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음식 이미지’ 특집을 마련했다. 음식의 맛과 인생의 멋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백석, 박목월, 최승호 시인(왼쪽부터)

우리 현대시에서 음식을 텍스트 안으로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시인은 백석이었다. ‘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굿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백석 ‘국수’ 중) 겨울밤 절절 끓는 아랫목에서 쨍하니 차가운 동치미 냉면을 먹는 풍경 속엔 그 시대와 인물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고형진 상명대교수는 “백석은 음식이라는 생활 속 사물을 통해 깊고 절실한 삶의 정서를 환기해 냈다”고 말했다.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허전한 마음이/ 마음을 달래는/ 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식사.’(박목월 ‘적막한 식욕’ 중) 시인은 묵의 그 미묘한 맛을 ‘적막한 식욕’이라는 내면정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음식이 인간의 내적 본성이나 정신세계를 비유하는 소재로 등장하는 시편들도 있다. 함민복은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긍정적인 밥’)라며 시 자체가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음을 노래하기도 했다.

‘등짝에 해조음 문신 알록달록한/ 간고등어 한 마리가 점잖게 가스레인지 그릴 속에 누워있다/…/ 평생을 무슨 공부로 수신했길래/ 시뻘건 연옥에서도 고등어는/ 열반에 들 듯 태연할 수 있을까’(임영조 ‘고등어’ 중) 시인은 그 뜨거운 가스레인지 위에서조차 몸을 굽히지 않는 고등어는 아무때나 굴신(屈身)하는 경박스런 인간보다 등급이 높다고 표현한다. 오세영의 ‘김치2’는 김치를 인간의 정신적 차원으로 다양하게 사유한 흔적이 흥미롭다. ‘김치이고 싶다/… // 모든 입맛을 포용할 줄 알아 그렇다/ 짜고 매운 놈, 싱겁고 맹한 놈/ 역한 놈,/ 어느 하나 구별 없이 한 데 거두는/ 그 사랑’(오세영 ‘김치2’ 중) 아구찜도 시인의 입을 통하면 남다른 생각을 안긴다. 최승호 시인은 “아구는 거의 없고 뼈만 씹히고/ 양념이 산더미 같은 아구찜,/…/ 아구찜인지 아귀찜인지/ 이 아귀세상”’(‘아구찜 요리’ 중)이라고 토로한다. 겉다르고 속다른 세상에 대한 통렬한 야유(‘아구찜’\\’아귀찜’ ‘아귀세상’)다.

이형권 충남대교수는 “몸이 사유의 그릇인 것처럼 음식 역시 시인의 감각과 사유를 매개하는 것으로 적극 활용하면 더 풍요로운 시상(詩想)을 길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가 고프다. 아직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군침 도는 시의 새로운 메뉴를 기다려본다.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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