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손님 훤히 스미니… 깨어있으란 소식인가"
5년만에 수필집 ‘홀로 사는 즐거움’ 낸 법정 스님
“꽃은 향기로 서로를 느껴…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해야
사람 피해서가 아니라 내 길 가기 위해서 홀로 살아”
|

|
|
▲ 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는 법정 스님. 밤잠을 깨면 좌선에 드는 그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조선일보 DB사진 |
|
|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명예욕과 물욕이 남는다고 했는데 법정(法頂) 스님은 오히려 그 반대다.
식솔이 없으니 물욕이 없는 것은 이해해도 명예까지 훌훌 털어버린다면? 지난해 12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길상사’ 회주 자리를 함께 벗어 던지고 강원도 산골로 은신했던 스님이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보내왔다. 수필집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 출판사)을 펴낸 것. ‘오두막 편지’ 이후 5년 만이다.
스님은 이 책에서 “내 생각과 삶의 모습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앞뒤 창문 활짝 열어 젖히고 한바탕 쓸고 닦아냈다. 아침나절 맑은 햇살과 공기 그 자체가 신선한 연둣빛이다. 가슴 가득 연둣빛 햇살과 공기를 호흡한다. 내 몸에서도 연둣빛 싹이 나려는지 근질거린다’(64쪽), ‘가을 바람 불어오니 일손이 바빠진다.…이제는 날마다 군불을 지펴야 하므로 나뭇간에 장작과 땔감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127쪽)
고희를 넘긴 노승은 적막의 반복에 불과할 강원도 산 속 암자에서의 생활에서조차 보석 같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 ‘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달빛이 방 안에까지 훤히 스며들어 자주 눈을 뜬다. 내 방 안에 들어온 손님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자리를 일어나 마주앉는다.…한낮의 좌정보다 자다가 깬 한밤중의 이 좌정을 나는 즐기고자 한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면…’(10쪽)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이다.…홀로 있어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99쪽)
홀로 있어도 의연한 나무 같은 삶이지만 마음마저 목석일 순 없다. 스님은 동화작가 정채봉의 죽음 앞에서 삶의 허무를 토로한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빙판길을 달려 한동안 발걸음이 잦았던 중앙병원으로 갔다. 영안실에 들어서자 사람은 어디 가고 사진만 영단에 올려져 있었다. 어이없었다. 허무했다.’(104쪽)
‘무소유’와 ‘산방한담’에서 그랬듯 스님에게 자연은 깨우침을 주는 스승이다. 정채봉을 잃을 슬픔을 갈무리하는 방법 또한 꽃에게서 배운다. ‘서로의 향기로써 대화를 나누는 꽃에 비해 인간들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꽃이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낀다. 인간인 우리는 꽃에게서 배울 바가 참으로 많다’(140쪽)
스님은 세상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대해 안타까운 충고도 잊지 않았다.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걸치고 적게 갖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이 폭력과 인간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서 자제와 억제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199쪽)
이 책은 2001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맑고 향기롭게’의 회지에 썼던 글을 모은 것이다. 3년을 기다려 책 한 권을 냈다. 스님은 ‘말과 글도 삶의 한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새로운 삶이 전제됨이 없이는 새로운 말과 글이 나올 수 없다.…할 수만 있다면 유서를 남기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144쪽)는 말로 자신의 글 무게를 달았다.
두 달에 한 번씩 해온 길상사 법문도 “그동안 말이 많았다”며 봄 가을 한 차례씩으로 줄인 스님은 다만 “한꺼번에 사라지면 궁금해하니까 차츰 줄여나간다”는 말로 세속과의 가는 끈을 잇고 있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