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보며 문득, 초등학교 때 거의 누구든지 가졌던 '전과'가 생각이 났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두께에 압도 당했다고나 할까? 넓적한 크기에 글씨도한 빽빽하다. 오래 전부터 제법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빌 브라이슨을, 나는 이제야 이 책으로 접하게 됐다.  사실, 빌 브라이슨은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백과사전적이며, 전방위적 글쓰기를 해 온 작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 특유의 입담도 한몫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그가 이번엔 (내가 평소 관심이 많았던) '집'을 주제로 책을 썼다.  

그는 현재 영국의 어느 목사관을 빌려 살고 있는가 본데, 책 첫 페이지를 펼치면 그 목사관 집 1층 평면도가 나온다. 배열 순서에 따라, 쓰레기통, 우물, 홀, 부엌, 거실, 보라색 방(일종의 또 하나의 거실), 또 아래는 식료품실, 설거지실, 또 하나의 부엌(그 안쪽엔 식료품실과 설거지실을 포함), 식당 (그 구석엔 종복의 저장품실)과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집무실로 되어있다.  

일단 이렇게만 보면, 우리나라엔 없어도 되는 몇 개의 방과 시설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식당이나, 보라색 방, 집무실은 없거나 있어도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엔, 보라색 방이 또 하나의 거실로 쓰였다면, 그건 얼핏 우리나라에서 사랑방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저자는 처음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그곳의 벽이 보라색이었기 때문에 그냥 보라색방이라고 한다. 거기에 600권 가량의 책이 있었다고 하니 우리나라고 치면 서재용도는 아니었을까 싶다. 집무실은 우리나라에선 사랑방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썼을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민의 집은 이렇게 문화적이지마는 않다. 아주 단출하게 있어야 할 것만 있을 뿐 이런 문화 주택이 어디 흔하겠는가? 

그렇다고  저자의 집을 마냥 부러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살고 있는 집도 지어진지는 제법 오래된 모양인가 본데, 몇백 년을 이어 온 우리나라 고택도 알고보면 나름의 용도와 운치와 멋을 지닌 문화주택이란 걸 금방 실감할 수 있을 테니.  

내가 집에 관심이 있는 건,  순전히 드라마와 살면서 점점 알고 싶어지는 우리나라의 한옥 때문일 것이다. 전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란 혐의 때문이고, 후자는 한옥이야 말로 사람에게 맞춘 집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오늘 날의 현대식 집은 사람에게 맞추었다기 보단, 사람이 집에 맞추어진 형태가 아니던가?  순전히 드라마 때문이란 건, 특히 사극을 말하는 것인데 드라마가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인만큼 무대 세트도 현대식 감각을 아주 배제할 수만은 없을진데, 보다 보면 과연 저 시대 실제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집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다.  특이하게도 집의 세부 구조를 소재로 그 안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나를 미시사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읽다보면, '정말 이런 일이 있었어?' 기절초풍할 일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내가 집을 다룸에 있어서 관심있어 한 쪽은 화장실이고 다음이 침실인데,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가장 들어나지 않는 곳이고, 은밀한 곳이기도 하니까. 그나마 화장실은 최근에 속속들이 많이 들어나긴 했다. 적어도 하이힐이 왜 발명되었는지, 18세기 이전만하더라도 프랑스나 영국의 거리가 온통 분뇨 천지였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모를 건 옷에 관한 미스테리다. 그토록이나 거리가 더러워 하이힐을 만들어 신고다닐 정도였다면, 당연 옷도 좀 짧아져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시대 여자들의 옷은 짧아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분뇨가 많았던 거리에서 그 치렁치렁한 옷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빌 브라이슨옹이 다음 번엔 인간의 복식에 대해 다루어주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나의 바람을 그가 알리 없겠지만).  

사실 이 책은 미시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는 하나, 읽다보면 인간 더러움의 역사, 또는 인간 미련함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이럴수가...?!"가 저절로 나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게 만드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빌은 일부러 이런 역사만 알아가지고 짖궃게 우리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같다. "늬들이 인간의 역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그래 알게 되니까 어떠냐? 재밌지? 히히히"  조금 맛보기를 해 볼까? 기왕 화장실 얘기가 나왔으니(화장실 얘기는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항상 흥미진진하다) 좀 더 얘기해 보자. 현대의 화장실이 그래왔듯이, 목욕실과 변소를 같은 공간에 두듯이, 저자 역시 그렇게 다루고 있다.     

변소(privy)라고 해서 애초부터 이름처럼 사적인 공간은 아니다. 로마인은 특별히 배설과 대화의 조합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로마의 공중화장실은 대개 20개 남짓의 좌석이 서로 상당히 가깝게 놓여 있어서, 그곳을 이용하는 로마인은 십중팔구 버스를 이용하는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여기서 불가피하게 제기될 법한 문제에 미리 답변하면, 각 좌석 앞의 바닥에는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고 있어서, 사용자들은 막대기 끝에 달린 스펀지를 거기 담가서 뒤를 닦는 데에 사용했다). 화장실에서 낯선 사람과도 편하게 어울리는 관습은 현대에 와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428p)

역사상 대(大)문화인일 것만 같은 로마인이 변소를 이렇게 사용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한때 화장실 꿈을 잘 꿨던 (지금도 아주 가끔씩 꾸는) 나는 그다지 놀랍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실제로 저 광경이 있었다는 게 놀랍긴 놀랍다(오늘밤 꿈에 나올까 겁난다ㅜ).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고 한다면 좋다. 조금 급수를 높여서, 

가구목수이자 자물쇠공인 조지프 브라마가 최초의 현대식 수세식 변기를 가지고 1778년에 특허를 얻었다. ...... 그러나 초창기의 변기는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았다. 때로 역류가 일어나서 애초에 없애고자 했던 오물보다 더 많은 오물이 방 안을 채우는 바람에 사용자가 혼비백산하기도 했다.(433p)  

가히 어떤 모양새였을지는 알 것도 같다. 뭐 이 정도는 수위조절이라 해 두자.  600년 간이나 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니 그에 대한 각종 전염병의 역사를 우리의 빌 브라이슨옹은 참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그 밖에 "헉"소리 날만한 장은 많으니까 지면상 생략한다.  

그래도, 우리의 빌이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잘 다룬 장이 있다면, 홀을 다뤘던 3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걸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한때를 풍미했던 외화들, 이를테면 '초원의 집'이나 '뿌리' 같은 드라마 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의 배경이 됐던 집의 구조물들이 보기에만 그럴듯할뿐 실제로는 화려하지도 않으며, 허술하기 짝이없는 것이라는 걸 이 책을 보면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안락하고, 문명스러워 보이는 벽난로도 그다지 따뜻한 것이 아니며 애물단지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집은 처음부터 사람 완벽히 지켜주던 구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의 온돌이 언제부터 있어 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서양의 그것보다 훨씬 몇 배는 더 우수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튼 이런 웃지못할 역사의 한 단면들을 빌 브라이스는 끊임없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장을 보든지, 이것 말하고 있는가 보다 싶으면 또 금방 저걸 얘기하고 있고, 저 얘기가 또 언제 끝났지 싶게 새로운 이야기들을 굴비 엮어내듯 엮어내고 있다. 과연 이 사람의 백과사전적 지식의 끝은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얼마 전에 읽었던 <토머스 페인>의 작가 폴 콜린스를 연상하게도 된다.  

이 책은 솔직히 역사적인 사실만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읽을 수만은 없는 책이다.  그렇다면 빌은 뭐 때문에 이런 걸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내는 것일까? 뭐 지적 과시?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오늘 날 하나도 쓸모도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이 역사의 어느 한 시대에선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정말 웃음이 나올 정돈데, 또 그렇게 읽어가다 보면, 과연 우리 시대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앞으로 50년 또는 100년 뒤에 어떻게 평가를 받을까? 생각하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인생이란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 놓고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역사도 그런 것이 아닐까? 특히 미시사는 더더욱.  게다가 인간이란 종은 어쩌면 그리도 척박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명백을  지켜올 수 있었을까? 신기하다 못해 경외감을 가질 정도다. 또 그러면서 인간이 왜 그렇게 극악스럽게 자연을 해쳐가면서까지 살고자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저자는 바로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선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은 지식을 쏟아내고 있어 때론 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강추 하기 보단, 독자의 선택에 맡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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